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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가족에게는 사연이 있다

중앙일보 2021.02.11 00:02 종합 3면 지면보기
메인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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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설이다. 다가올 시간들이 영 낯설어 설날이라 했을까, 아니면 나이 먹는 게 서러워 설날이라 했을까. 그도 아니면 새날들에 대한 설렘으로 설날이라 했을까. 무엇이 되었건 첫 시작을 다시 한번 할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설은 좋다.
 

원영 스님의 ‘언택트 설’ 연하장
똑같은 추억을 반복해도 좋은 설
어떤 사연도 나눌 수 있는 가족들
달라진 현실에는 새 해답이 필요
지금은 가족의 건강이 가장 중요

“설에 스님들은 뭐 하세요?”라고 묻던 사람들도 올해는 묻지 않는다. 물어보나 마나 별수 없는 상황일 테니 궁금하지도 않은 게다. ‘거미줄도 천 겹이면 호랑이를 잡는다는데, 이 징그러운 코로나19도 언젠가는 잡힐 날이 있겠지’. 오늘도 나는 부처님 전에 향 한 자루 사루며 답답한 마음을 쓰다듬어 본다.
 
절집에선 설날 아침 일찍 부처님께 세배를 올린다. 일명 통알(通謁)이라 부르는데, 삼보(三寶, 佛法僧)에 감사하며, 나라는 평화롭고 국민은 평안하기를, 모든 중생이 불보살님의 가피로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한다.
 
아침 공양(식사) 후에는 어른 스님들께 세배를 올리는데, 이는 통알과 구분해 세알(歲謁)이라고 한다. 어른 스님들께 올리는 세배에는 항상 줄이 길다. 대중스님이 많은 처소라면 더욱 그렇다. 사람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실은 세뱃돈을 타기 위해 한두 바퀴씩 더 돌면서 세뱃돈을 받기 위함이다.
 
어린 스님에게는 일 년 중 어른 스님들이 가장 좋아지는 순간이랄까. 한두 바퀴쯤 돌고 나서 키득키득 웃다가 얼굴이 탄로 날 즈음, 이번엔 각방을 찾아가 세배를 올린다. 덕담이 오가고 세뱃돈 봉투가 두둑해질수록 기쁨은 곧 두 배가 된다.
 
원영 스님

원영 스님

허나 이를 아는 어른 스님들도 나름 계획이 있다. 대중 인사가 끝나면 개별적으로 찾아오는 병아리 스님들을 피해 멀리 산행을 나서거나 얼른 신발을 감추고 방에 들어가 없는 척하기도 한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아서다. 명절에 절집에서 무슨 재미난 일이 일어날까 싶지만 세배나 성불도놀이(성불하는 게임) 등 이곳은 이곳대로 즐거운 새해맞이 풍경이 펼쳐진다.
 
하지만 이러한 풍경들도 올해는 보기 어렵게 됐다. 멈춤의 시간이 길어지고, 찾아오는 인적도 드물어 문풍지를 흔드는 바람 소리만 크게 들린다. 그래서일까? 우울한 날은 문득 예고 없이 찾아온다. 해마다 아무렇지도 않게 보낸 명절이 올해만큼은 유난히 쓸쓸하고, 떠나온 지 30년이 넘은 고향 하늘도 마음에 붉은 노을을 드리운다.
 
아, 생각해 보면 출가 이래로 부모님과 함께 식사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헤아려 보니 채 열 번이 되지 않는다. 세네카의 말처럼 “우리 인생이 짧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시간을 낭비한 것이다”. 살아 계셔야 뭐라도 해볼 텐데, 황천길로 떠나간 지 너무나 오래돼 이젠 어찌할 도리가 없다.
 
얼마 전, 어머니 기일이었다. ‘회귤유친(懷橘遺親)’이라 했던가. 중국 오나라의 여섯 살 난 육적이란 아이가 아버지와 함께 원술에게 갔다가 귤을 대접받고 몰래 귤 두 개를 챙겨 오다 들켰다. 아이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어머니가 좋아하셔서 가져다드리고 싶어 그랬다고 한다. 어린아이의 효성이 갸륵해 원술은 귤을 더 주었다는 이야기가 삼국지의 ‘회귤유친’이다. 그 귤이 떠올라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홍시를 생전에는 한 번도 사드리지 못하고, 얼굴도 가뭇가뭇 잊혀가는 이제야 겨우 영단에 하나 올려 드렸다. 울어본 지 오래된 사람처럼 굳은 표정으로.
 
출가한 우리들은 서로에게 사연을 묻지 않는다. 아니, 누가 물어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다. 부질없는 이야기라 여겨서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기막힌 사연 하나쯤 다 가슴에 담고 산다는 것을. 설령 그렇다 해도 향로의 식은 재처럼 덤덤하게 살아간다.
 
출가자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 말 못 할 사연이 하나쯤은 있다. 소설가 살만 루슈디는 “모든 가족에게는 사연이 있다. 어떤 사연은 자랑스럽고, 어떤 사연은 쑥스럽고, 어떤 사연은 남부끄럽다. 이 사연을 안다는 것은 그 가족의 일원이라는 증거다”고 말했다.
 
설에 귀경하면 대체로 비슷한 이야기들이 오간다. 전을 부치면서, 밤을 치면서, 제수를 준비하면서 각자 유년 시절의 추억, 어른들께 야단맞던 일, 형제 간에 싸웠던 일들을 이야기한다. 비슷한 추억을 해마다 반복해 이야기해도 명절만큼은 당연하다 여긴다. 그야말로 명절이니까. 어쩌면 사람들이 명절 때마다 귀경하고자 하는 것은 자랑스럽기도, 부끄럽기도 한 가족과의 사연을 함께 나누며, 가장 단단한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함이 아닐까.
 
허나 세상이 바뀌었다. 늘 편안하게 진행되던 일도 쉽게 해내지 못하는 세상. 고정된 틀과 양식 위에 비슷한 흐름을 가지고 살아 왔어도 새로운 현실은 이전의 틀을 깨고 있다. 역시 달라진 현실에는 새로운 틀과 해답이 필요한가 보다.
 
혈연이든 아니든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가족이다. 오순도순 살기 위해 일도 하고, 돈도 벌고, 선물도 하는 가족이다. 좌절하고 슬픈 일이 있어도 모두 품고 편안하게 받아주는 이가 바로 내 가족 아니겠는가. 멀리 있어도 서로의 사연을 알고 울고불고하며 마음 아파했다면 누가 뭐래도 서로에게는 애틋한 가족인 것이다.
 
잠시 잠깐 함께하지 못한다고 해서 가족의 인연이 끊어지는 게 아니다. 지금은 가족이 건강하게 살아 있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러니 “명절에 고향에 못 간다고 너무 애달아 하지 마시고, 찾아오지 않는다고 오래 속상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원영스님 청룡암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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