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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2인자는 없다는데…‘좌’용원 ‘우’용해 운명은

중앙일보 2021.02.11 00:02 종합 12면 지면보기
조용원

조용원

북한 권력 내부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단어 하나를 꼽으라면 ‘2인자’라는 표현일 것이다.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거머쥔 노동당과 군부의 파워엘리트라도 ‘권력서열 2위’로 불리거나 간주되는 순간 정치적 명운을 다할 수밖에 없다. 십중팔구 그 위세는 물론 생명까지 잃고, 가족·친지와 추종 세력까지 철저하게 몰락한다. 김정은의 후견인을 자처하던 고모부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 하루아침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건 대표적이다. 혈족도 예외가 아니란 얘기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은 ‘포스트 김정은’ 체제의 대안으로 떠올랐지만 4년 전 45살 나이에 독살당했다. 국가정보원이 지난해 8월 김정은 위원장이 여동생 김여정에게 ‘위임통치’를 하고 있다고 국회 정보위에 보고한 이후 그녀의 공개석상 등장은 뜸해졌고, 지난달 노동당 8차 대회에서는 당내 지위가 격하됐다. “뭔가 중요한 직책을 맡길 것”이란 관측을 일각에서 제기하지만, 책벌이나 힘빼기용 근신 조치라는 분석이 현재로서는 더 설득력 있다. 올해 들어 ‘총비서’ 직책 부여 등 권력기반 강화의 고삐를 죄고 있는 김정은 체제에서 2인자들은 어떤 생존전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짚어본다.
  

흙수저 출신 모범생 조용원
올초 정치국 상무위원 수직상승
현지지도 수행하다 권력 핵심에
김일성대 물리학 전공 엘리트

금수저 출신 원로그룹 최용해
국가수반 대우 받지만 힘 없어
‘권력 아웃사이더’로 안분지족
김정은 후견인 5인 중 건재 유일

조용원, 열병식 때 김정은과 같은 롱코트
 
최용해

최용해

조용원(64)은 이름처럼 ‘조용한 남자’였다. 김정은의 군부대 방문이나 공장·협동농장 방문 등 이른바 현지지도에 단골 수행했지만, 사진에서 조용원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늘 카메라 앵글의 반대편에서 김정은과 핵심 간부의 모습을 지켜보며 알 듯 말 듯 한 미소만 짓고 있다. 어쩌다 등장한다 해도 김정은과 몇 걸음 떨어진 구석에서 수첩에 메모하는 장면만 목격됐다. 김정은 옆에 한걸음이라도 더 다가서려 애쓰는 여느 간부들과 달랐다.
 
그랬던 조용원이 큰일을 냈다. 신년 벽두 개최된 당 8차 대회(1월 5~12일)에서 북한 권력의 핵심 중 핵심인 당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된 것이다. 정치국 후보위원이 정(正)위원을 거치지 않고 상무위원으로 수직 상승하는 건 극히 이례적이다.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사실상 북한 권력을 움직이는 최고 협의체라 할 수 있다. 북한 헌법 11조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노동당의 영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고 못박고 있다. 당(黨) 국가 체제의 북한에서 김정은 당 총비서, 최용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이병철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김덕훈 내각 총리와 함께 권력을 쥐락펴락할 5인방에 조용원이 전격 진입한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

정치국 상무위원 조용원은 더이상 만면에 웃음을 머금거나 다소 수줍은 듯 표정 짓던 그가 아니다. 김정은의 두터운 신임을 배경 삼아 거침없고 당당한 행보를 드러낸다. 지난달 14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8차 당 대회 기념 열병식은 이를 확인케 한 무대였다. 이날 김정은 위원장은 검은색 가죽 롱코트를 입었다. 백두산 등정을 비롯한 고도의 상징성을 드러낼 때 입던 옷이다. 그런데 조용원도 김정은과 같은 소재와 스타일의 코트 차림으로 주석단에 등장했다. 김정은의 특별 지시 또는 배려 없이 최고지도자와 같은 반열의 옷차림을 하고 공개석상에 선다는 건 북한 체제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날의 드레스코드는 조용원이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북한은 같은 부서에 여러 명의 제1부부장을 두고 있음)에서 김정은의 최측근에 등극했음을 대변했다.
 
조용원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시기만 해도 낯선 인물이었다. 2011년 말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이후에야 현지지도 수행을 도맡아 하면서 주목받았다. 하지만 출생과 성장, 과거 주요 경력 등은 베일에 싸여져 있었다. 취재 결과 대북 정보 당국의 비공개 인물 파일에는 조용원의 출신 성분(부모나 친가·외가 등의 성향이나 배경)과 관련한 특이사항 기록이 없다고 한다. 대북 정보 관계자는 “장인이 군 전차교도지도국장을 지낸 원명균 상장(북한군 계급상 별 셋으로 우리의 중장에 해당)인 것으로 파악돼 있다”고 말했다.
 
2013년 12월 반역죄로 처형된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 국가안전보위부 특별재판을 받는 모습. [중앙포토]

2013년 12월 반역죄로 처형된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 국가안전보위부 특별재판을 받는 모습. [중앙포토]

조용원은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1995년 강원도당 조직부의 지도원으로 배치됐다. 특이한 건 그의 전공이 물리학이란 점이다. 조용원뿐 아니라 당시 같은 과의 졸업생 7~8명이 노동당 중앙과 지방 조직의 조직지도부 사업에 투입됐다고 한다. 물리학 분야의 인재들이 노동당 사업에 배정된 이유는 뭘까. 고위 정보 당국자는 “김정일이 1980년대 초 ‘앞으로 당 간부는 이공계 출신으로 육성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당 축성 시기(권력기반을 다지던 기간)에는 노동자·농민의 혁명성으로 투쟁했지만, 이제는 조직 일꾼들 사이에 자연과학으로 준비된 간부가 많아야 한다”는 지침이다.
 
강원도당에서 5~7년 일한 조용원은 평양의 중앙당 조직부 종합과 지도원으로 발탁돼 북한 권력의 핵심 기구 중 하나인 조직지도부에 발을 들여 놓게 된다. 책임지도원과 부과장, 과장직을 차례로 거치며 잔뼈가 굵은 조용원은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이제강(2010년 6월 교통사고로 사망)의 말년에 부부장으로 임명됐다. 그리고 김정은 집권 이후 시찰 담당 부부장으로 전담 수행하는 중책을 맡았다.
 
조용원이 수직상승을 통해 권력 핵심에 진입했다면, 최용해(71)는 노회한 방식으로 2인자 지위를 확고히 굳힌 경우. 김정은 체제 출범 직후인 2012년 4월 당 4차 대표자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에 오른 그는 9년 동안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2019년 4월에는 김영남의 뒤를 이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자리를 차지했다.
  
최용해, ‘진짜배기 충신’ 최현의 아들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은 2017년 2월 말레이시아에서 독살당했다. [중앙포토]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은 2017년 2월 말레이시아에서 독살당했다. [중앙포토]

최용해는 북한에서 항일 빨치산으로 찬양되는 최현(1982년 사망)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이다. 그 시기 최현은 김일성보다 상관이었고, 북한 당국은 최현을 중심으로 김일성과 다른 간부가 나란히 찍은 사진을 없앴고, 김일성과 최현의 자리를 바꿔 선전에 활용하고 있다. 최현도 유일 체제가 확립된 이후 김일성에게 깍듯하게 대했고, 북한은 김정은 체제 들어 최현을 ‘진짜배기 충신’으로 치켜세우며 빨치산 2~3세대들의 충성을 강조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최용해는 비교적 순탄한 길을 걸었다. 김정은 후계추대를 결정한 2010년 9월 노동당 3차 대표자회 직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어린 아들(당시 29세)에게 대장 칭호를 주며 장성택·김경희 등 후견인 역할을 할 5명도 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지금까지 온전한 건 최용해 뿐이다.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 [중앙포토]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 [중앙포토]

이처럼 최용해가 건재할 수 있는 배경을 ‘권력의 아웃사이더’란 측면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대 정치경제학부를 나온 최용해는 1980년대 사로청(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 국장과 부위원장, 위원장을 거치며 청년 조직의 간판으로 자리를 굳혔다. 비리 혐의로 해임된 그는 평양시 상하수도관리소 당비서로 좌천됐다가 2006년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로 밀려난다. 김정은 시대 들어 군 총정치국장 등 요직을 맡았지만 한계가 있었다. 고위 탈북인사는 “오랜 청년조직 생활로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다른 파벌에 위협이 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조직 파워는 별로지만 300명의 식구에 ‘국가수반’ 대우를 받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자리는 최용해에게 안성맞춤일 수 있다.
 
북한 간부와 주민을 옥죄는 규율은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이다. 제6항에는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면서, “개별적 간부들에 대한 환상, 아부·아첨, 우상화를 배격”할 것을 촉구한다. 2500만명 북한 인구 가운데 김정은만이 예외다. 파워엘리트들도 이를 모를리 없지만 한순간 오만이나 방심, 혹은 모함 때문에 몰락을 맞는다.
 
변변치 않은 배경에도 불구하고 비상한 머리와 탄탄한 경륜에 힘입어 혜성처럼 뜬 조용원. 든든한 출신 성분을 바탕으로 산전수전 다 겪으며 원로그룹의 대표주자로 자리한 최용해. 김정은 위원장은 이들 두 사람으로 투톱 체제를 짰다. 2인자는 어김없이 몰락하거나 비참한 말로를 걸어야 했던 패턴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들이 어떤 생존전략을 펼칠지 주목된다. 
 
● 조용원(64)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 당 중앙위 조직 담당 비서, 김정은 시찰 담당 부부장, 조직지도부 검열과 담당 부부장, 중앙당 조직부 종합과 지도원, 노동당 강원도당 조직부 지도원, 김일성대 물리학부(1995년 졸업), 출신성분 파악 안돼(장인이 군 고위층)
 
● 최용해(71)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 북한군 총정치국장, 
북한군 대장, 차수, 평양 상하수도관리소 당비서,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 국장, 위원장, 
김일성대 정치경제학부,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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