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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퍼스펙티브] "그들의 조국은 한국이 아니다, 민주당 586의 망상"

중앙일보 2021.02.10 00:39 종합 26면 지면보기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도박판인가? 여당에서 가덕도 신공항 카드를 내놓자 야당에서 그 위에 한·일 해저 터널을 얹어 되받아친다. 둘 다 진지한 고려에서 나온 정책적 의제가 아니라 지역 민심을 사려고 급조한 선거용 공약일 뿐이다. 해저 터널은 경제성이 불투명하고, 가덕도 신공항은 이미 경제성에서 가장 낮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시대의 독립군으로 친일파 후예에 맞서 투쟁한다는 허위의식
민주당 주류와 지지층이 정치적 신앙 공동체 이루고 있어 가능
‘국민의힘=토착왜구’라는 상상계는 그들 머릿속의 ‘서사’에 불과
그들이 말하는 ‘조국’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이 상상의 민족국가

  
친일이라는 만능열쇠  
 
야당이 몰라서 그러겠는가. 민주당이 선점한 의제를 중립화한 후 해저터널을 새로운 의제로 설정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내 관심을 끈 것은 여당에서 맞불로 내놓은 ‘친일’의 프레임. 히데요시의 ‘정명가도’까지 등장하고 난리가 났다. 총선은 한·일전 만들더니, 보궐선거는 아예 임진왜란으로 치르려나 보다.

 
여당의 친일 프레임은 선거 외에도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가령 징용공 판결로 일본이 경제보복에 나섰을 때 조국 당시 민정수석은 『일본회의』라는 책을 들고 회의에 나왔다. SNS에 ‘죽창가’를 올리기도 했다. 이 문제가 행여 정권 책임론으로 번질세라 민족주의 정서를 소환해 상황을 돌파하려 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용도는 비리를 덮는 것이다. 윤미향 사태는 간단히 “친일·반인권·반평화 세력의 최후 공세”(김두관 의원)로 처리되었다. 그렇게 “친일사관에 빠져있는 세력”(민병두 전 의원)에 이용당하니 일본정부와 친일세력만 좋아하고 있으며, 이것이 “완전하게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나라의 슬픈 자화상”(송영길 의원)이라는 것이다.

 
색다른 용도도 있다. 김원웅 회장의 광복회에서는 민주당의 설훈· 우원식·안민석 의원에게 ‘우리 시대의 독립군상’을 수여했다. 은수미 성남시장은 ‘단재 신채호상’을, 추미애 전 장관은 ‘최재형상’을 받았다. 결국 최재형 기념사업회와 유족이 고인의 독립정신을 훼손한다고 이의를 제기하면서 최재형상 시상이 큰 논란이 됐다.
  
한·일전으로 치러진 총선

 
퍼스펙티브 2/10

퍼스펙티브 2/10

‘조국백서’는 586 세력의 상상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조국) 사태의 시작은 대법원 강제징용 관련 판결이었다.…나라 도처에 친일분자들이 집단적으로 서식하고 있는 현실이 적나라하게 노출된 상황이었다.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자주적 입지를 만들기 위한 민주세력의 역사관을 무너뜨려 보겠다는 자들의 반란이었다.”

 
이것이 그들이 들어 사는 NL(민족해방) 상상계다. “우리는 승리했다고 여겼으나 사실은 포위되어 있었던 것이다. 촛불혁명을 뒤엎으려는 반동의 기세는 만만치 않았다.” 거의 망상의 수준이다. 이 허구를 부정하면 “보통의 시민들이 가진 혁명의 주도권에 대한 이해와 경의가 부재한 탓”이라는 타박을 듣게 된다.

 
유사 종교적 현상이다. 사이비 종교도 물의를 일으켜 교단이 위기에 처하면 그게 다 도처에 서식하는 사탄세력이 자신들을 핍박하는 현상이라 우기지 않던가. 집권층과 지지자들이 이렇게 피포위 의식(siege mentality)에 사로잡혀 있으니 나라가 늘 혁명과 반혁명의 내전 상태에 있는 것이다.

 
공당이 ‘총선은 한·일전’이라는 슬로건을 내건다. 민망한 일이다. 이게 가능한 것은 민주당의 주류와 지지층이 정치적 신앙 공동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하나로 결속시켜 주는 것이 바로 NL 상상계, 즉 자신들이 우리 시대의 독립군으로서 친일파 후예에 맞서 민족 정기를 세운다는 허위의식이다.

  
민주당은 항일 정당인가

 
이 상상계는 물론 현실과 아무 관계없다. 현 민주당의 모체인 한민당은 친일·친미 반공세력의 결집체. 이승만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지지했으니 그들 논리로라면 분단의 원흉인 셈이다. 게다가 상당수가 토지개혁에 반대하는 친일 지주들. 다들 무상몰수·무상분배를 외칠 때 유상몰수·유산분배를 말하던 기득권 세력이었다.

 
홍영표 의원은 이승만 대통령이 반민특위를 가로막았다 하나, 그것은 자신을 돕던 한민당 인사들이 수사대상이었기 때문이다. 한민당은 특위 해산의 공범이었다. 그 당의 조병옥은 미군정 경무부장으로 4·3 사태 당시 강경 진압을 지시해 ‘학살 원흉’이라 불린다. 후에 그는 민주당을 결성했고, 그 아들은 새천년민주당의 대표를 지냈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고생해도 친일파의 후손들은 국회의원이 되어 다들 잘 먹고 잘 살았다. 민주당의 신기남·이미경 전 의원의 아버지는 일본 헌병이었다. 김희선 전 의원의 아버지 가네야마 상은 특무경찰로 이재오 전 의원 아버지를 체포한 인물. 홍영표 의원의 조부는 일제 강점기에 고위직을 지냈다.

 
한편, 친일파라는 이승만은 독도를 빼앗았다고 해서 일본에선 외려 반일인사로 간주된다. 독립기념관을 지은 것은 친일파의 후예라는 민정당 정권이었고, ‘역사 바로 세우기’를 한다며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한 것은 김영삼 정권이었다. 반면 광복회 회장인 김원웅씨는 친일 후예 정당인 공화당·민정당·한나라당을 두루 거쳤다.

  
우리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

 
한마디로 ‘민주당=독립군, 국민의힘=토착왜구’라는 상상계는 역사가 아니라 그들 머리에만 존재하는 ‘서사’일 뿐이다. 그 허구의 이야기 속에서는 체제가 전혀 다른 남한과 북한도 외세에 저항하는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표상된다. 그들이 말하는 ‘조국’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이 상상의 민족국가를 가리킨다.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자주적 입지”(조국백서)라는 말은 결국 외세를 배격하고 우리의 운명을 우리 민족이 결정하자는 뜻이다. 이 낭만적 관념은 상상계의 북한을 현실의 북한으로 착각한 데서 비롯된다. 이 혼동이 북한의 선의에 대한 비현실적 기대감을 낳는다. 이번 북한 원전 사건도 그와 관련 있어 보인다.

 
그 계획을 ‘이적행위’라 부를 일은 아니다. 다만 공무원들이 왜 자료를 삭제하려 했는지는 아직 설명되지 않았다. 아마 윗선의 지시로 당시에 용인되던 수준과 속도를 넘어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려 한 모양이다. 어쩌면 ‘통치행위’라는 윤건영 의원의 말은 탈원전이 아니라 북한 원전을 가리키는지도 모른다.

 
북한과 관련해 민주당 의원들의 실언이 잦은 것 또한 ‘조선은 하나’라는 NL 상상계와 관련이 있다. 태영호 의원을 “변절자”라 부른 문정복 의원의 폭언이나, “미국은 핵 5000개인데 북한은 갖지 말라는 법 있냐”는 송영길 의원의 실언은 그 상상의 공동체와 맺은 정서적 유대감이 무의식적으로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상상은 현실이 아니다

 
소설 『태백산맥』은 NL 상상계의 중요한 일부를 이룬다. 한 세대가 이 소설로 현대사 공부를 대체했기 때문이다. 그 책도 한때는 반공의 터부를 깨는 진보적 역할을 했을 게다. 하지만 그 저자가 “반민특위를 부활시켜 150만에 이르는 친일파를 단죄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그 이면의 반동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말았다.

 
NL 상상계는 여러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방해해 왔다. 위안부 문제도 ‘한·일전’ 프레임으로 양국 시민사회를 갈라놓을 일이 아니었다. 민족이 아니라 세계시민의 관점에 서서 그것을 개인에 대한 국가의 폭력,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에 반대하는 한·일 양국 시민들의 공동 의제로 만들었어야 했다.

 
상상계로 현실을 대체할 수는 없다. 내수용 죽창으로 외교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일. 그 난리를 치더니 강창일 주일대사는 ‘일왕’한테가 아니라 ‘천황폐하께’ 신임장을 받았고, 대통령은 위안부 판결이 “곤혹스럽다”며 일본 자산을 강제집행하지 않겠다는 뜻을 비쳤다. 애초에 민족을 불러낼 일이 아니었던 게다.

  
민족이 너를 부른다

 
걱정스러운 것은 이 철 지난 대립적 민족주의가 다음 세대로 대물림되는 것이다. 비교적 이념에서 자유로운 젊은 세대의 반일은 ‘일본에 먹힌다’는 피해의식보다 ‘이제 해볼 만하다’는 대결의식에 가깝다. 낡은 NL 서사가 그 이념의 공백을 틈타 철없는 ‘국뽕’ 게임에 세계관을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얼떨결에 주체로 호출당한 이들은 뇌용량이 1비트로 축소되어 세상을 흑백의 이분법으로 바라보게 된다. 검찰=사법부=언론=국민의힘=토착왜구. 이 등식은 필요에 따라 임의로 연장된다. 문제는 토착왜구라는 표현에 담긴 인종주의 정서다. 집권당이 나서서 인종주의 편견을 용인하고 조장하니 한심한 일이다.

 
‘해방후 친일청산이 안 돼 아부하는 자들이 출세하고 정의로운 이들이 핍박받는 굴절된 현대사를 갖게 됐다.’ 검찰 인사를 보면 그들의 말이 맞는 것 같다. 과연 권력의 주구들은 영전했고 원칙을 지킨 이들은 좌천됐다. 이렇게 그들은 열심히 현대사를 ‘굴절’시키고 있다. 대체 누가 친일파의 후예란 말인가.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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