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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구속한 재판부 "이런 계획적·대대적 사표강요 없었다"

중앙일보 2021.02.10 00:07 종합 1면 지면보기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에서 징역 2년6 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김 전 장관이 이날 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에서 징역 2년6 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김 전 장관이 이날 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2017년 7월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환경부 장관에 취임했던 그는 이 정부 장관 중 첫 구속 사례가 됐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1심 2년6월 실형
공기관 임원 사표강요, 직권남용 유죄
법원 “끝까지 직원들에 책임 전가했다”
신미숙 전 청와대 비서관은 집유 3년

재판부 “공무원엔 스트레스 줬다”
정경심 법정구속한 재판부가 판결
김 전 장관 측 “예상못한 결과 항소”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1부(부장 김선희·임정엽·권성수)는 9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장관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그러면서 “김 전 장관은 (혐의를) 일체 부인하며 명백한 사실도 다르게 진술하는 등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된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에게는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김 전 장관은 2017년 12월부터 2018년 1월까지 이전 정권에서 임명됐던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에게 일괄 사표를 내게 하고, 그 자리에 청와대 추천 인사가 임명되도록 채용에 개입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당시 한국환경공단 이사장을 비롯해 공공기관 임원 13명이 사표를 냈다. 김 전 장관은 사표 제출을 거부하는 임원들을 표적 감사한 혐의도 있다.

 
재판부는 이러한 의혹들이 실제로 행해져 공공기관 채용의 공정성을 해쳤다고 판단했다. 청와대가 환경부와 상의해 내정자를 정했다는 검찰의 기소 내용도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내정자를 제외한 지원자 130명은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서류심사와 면접에 임해 이들에게 유·무형 손해를 끼치고 심한 박탈감을 안겨줬다”며 “국민에게는 공공기관 임원 채용에 대해 깊은 불신을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또 김 전 장관이 환경부 직원들에게 ‘찍어내기’ 인사로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업무 수행에 있어 위축감을 느끼게 했다”고 질타했다.

 
김은경 전 장관 혐의별 1심 판결.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김은경 전 장관 혐의별 1심 판결.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런 범행들이 이전 정부에서도 이뤄졌던 관행이었다는 김 전 장관 측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전 정부에서 정권이 바뀌었을 때 일부 기관장이 사표를 제출하기도 했던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이 사건과 같이 계획적이고 대대적인 사표 징구(徵求·내놓으라고 요구함) 관행은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설령 이전 정부에서도 (내정자에 대한) 지원행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명백히 법령에 위반되고, 그 폐해도 매우 심하여 타파돼야 할 불법적인 관행”이라고 못 박았다.

 
오히려 재판부는 김 전 장관이 끝까지 혐의를 부인하고 아랫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를 보였다며 질책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환경부 소속 공무원들이 김 전 장관의 지시나 승인 없이 이와 같은 일을 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고 못 박았다. 이 사건은 앞서 박근혜 정부 시절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이 연루된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비교됐다. 김 전 비서실장은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에게 사표 제출을 요구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유죄를 선고받았었다.

 
재판부인 형사합의25부는 지난해 12월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자녀 입시비리 등에 대한 1심 재판에서도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었다. 소속 판사 3명 모두가 경력 20년 안팎의 부장판사로 이뤄진 ‘경력대등재판부’이기도 하다. 
 
환경부 찍어내기 인사 “국민들 공공기관 채용 불신 불러”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이 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이 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재판부는 다만 사표를 제출한 임원 중 이모 전 국립생태원장의 경우 “다음 자리를 보장받은 후 본인의 의사에 따라 사표를 제출한 것”이라며 그를 제외한 12명의 사표에 대해서만 직권남용죄를 인정했다.
 
아울러 김 전 장관의 사표제출·표적감사 관련 행위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환경부 공무원 등에게 내린 ‘지시 행위’는 무죄가 인정됐다. 직원들이 인사권자인 김 전 장관의 직무집행을 보조하도록 한 것이지 직권남용죄의 구성요건인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해서다.

 
신 전 비서관은 사표 제출 등 혐의 일부에 대해 김 전 장관과 공범으로 볼 만한 ‘기능적 행위지배’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그보다 낮은 형을 선고했다.

 
현 정부에서 장관 출신이 구속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2019년 12월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과 관련해 구속영장이 청구됐지만 법원이 기각했다.

 
이날 법조계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의 변호인은 곧바로 항소장을 제출했다. 이에 따라 김 전 장관은 상급심 법원인 서울고법에서 항소심 판단을 받게 된다. 앞서 변호인은 이날 열린 선고공판에서 김 전 장관이 법정에서 구속되자 “예상 못 한 판결”이라며 “사실관계나 법리 적용과 관련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항소심에서 잘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여당 역시 “아쉬운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오후 “검찰의 선택적 기소와 법원의 판결에 아쉬움이 남는다. 향후 항소 절차가 남아 있는 만큼 최종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내용의 짧은 논평을 냈다.

 
청와대는 말을 아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원칙적으로 재판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며 “구체적인 판결 내용을 확인한 후에 필요하면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했다.

 
반면에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는 민간인 사찰이 없다더니 ‘체크리스트’를 가장한 내로남불 유전자가 다시 한번 확인됐다”고 평가했다. 앞서 2019년 당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산하 공공기관 관리·감독 차원에서 작성된 각종 문서는 (블랙리스트가 아닌) ‘체크리스트’”라고 말한 점을 비꼬았다. 김 대변인은 특히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겨냥해 “조 전 장관이 이제 답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조 전 장관은 민정수석이던 2018년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단언컨대 문재인 정부 민정수석실은 민간인을 사찰하거나 블랙리스트를 만들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김 대변인은 조 전 장관의 이 발언을 겨냥해 “뿌린 대로 거둘 것”이라고 꼬집었다.

 
국민의당은 좋은 시절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사자성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을 들어 청와대를 비판했다. 안혜진 국민의당 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선거철만 되면 얄팍한 술수로 여러 사람을 한자리 꽂아 넣으려고 하다 보니 이런 전횡이 발생했다”며 “우리나라 정치가 국민에게 손가락질받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그는 “양형이 너무 가벼운 점은 아쉽지만 이번 기회를 토대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사라·성지원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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