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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삼성그룹 8개 노조, "임금 6.8% 인상, 성과제 바꿔라"…공동교섭 요구한 속내

중앙일보 2021.02.08 15:35
삼성그룹 산하 노조들이 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1년 임금 인상 및 제도개선 공동요구안'을 발표한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그룹 산하 노조들이 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1년 임금 인상 및 제도개선 공동요구안'을 발표한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삼성그룹 산하 계열사 노조가 삼성그룹에 공동교섭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룹사 전체가 참여하는 통합 임금·단체협상을 하자는 얘기다. 계열사마다 임금과 근로조건이 다른 상황에서 이 요구가 받아들여질지는 의문이다.
 

"정년 60세 보장과 임금피크제 폐지" 요구
목표관리제 등 비인간적 성과 경쟁제도로 규정
고과 낮아도 임금 삭감 없도록 개선 요구
삼성그룹 전체 노조 공동요구안으로 제시

조합원 적어 사업장별 교섭 대표성 한계
파업해도 효과 의문에 협상력 못 끌어올려
공동교섭으로 삼성그룹 전체와 노사관계 재설정 시도
"자체 동력 역부족에 사회이슈화 전략인 듯"

한국노총 산하 삼성그룹 내 8개 노조는 8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1년 임금 인상 및 제도개선 요구안'을 제시하며 삼성그룹에 공동교섭을 요구했다. 한국노총 금속노련 산하 전국삼성전자노조, 삼성디스플레이노조, 삼성SDI울산노조, 삼성에스원참여노조 등 4개 노조와 삼성화재, 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 삼성웰스토리, 삼성생명직원노조 등 4개사 노조가 참여했다.
 
이들은 ▶임금 6.8% 인상 ▶하위 고과의 임금삭감 폐지(전 직원 임금삭감 금지)와 나쁜 경쟁 유발하는 MBO(목표관리제) 폐지 ▶TAI(목표달성장려금)와 OPI(초과이익성과금) 제도 개선 ▶통상임금 정상화 ▶정년 60세 연말 보장과 임금피크제 폐지를 공동 요구안으로 제시했다.
 
8개 노조가 공동교섭을 요구한 속내는 기자회견문에 잘 나타나 있다. "일부 사업장에서 노조를 배제하고, 노사협의회와 임금·노동조건을 협상하고 있다"며 "개별적으로 안 된다면 공동요구안을 중심으로 거대 자본 삼성과 맞서려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사업장별 교섭에선 노조의 동력이 약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토로한 셈이다. 파업으로 맞설 수도 있지만, 쟁의행위를 하더라도 조합원 수가 적어서 조업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오른쪽 두 번째)와 나기홍 삼성전자 부사장(왼쪽 두 번째)과 최완우 DS부문 인사담당 전무(왼쪽 첫 번째) 등 노사 관계자들이 지난해 11월 3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사 상견례 및 첫 단체교섭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오른쪽 두 번째)와 나기홍 삼성전자 부사장(왼쪽 두 번째)과 최완우 DS부문 인사담당 전무(왼쪽 첫 번째) 등 노사 관계자들이 지난해 11월 3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사 상견례 및 첫 단체교섭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더 큰 문제는 노조의 대표성이다. 삼성그룹 산하 각 노조는 조합원 수를 명확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노동계 관계자는 "조합원 수가 전체 종업원 수에 비하면 턱없어 적은 비율이어서 공개를 꺼리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현 정부 들어 출범하기 시작한 삼성그룹 산하 계열사 노조의 조합원 수는 전체 종업원을 대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2019년 11월 출범 당시 500여 명이 가입했다가 1년여만인 지난해 말 1000명 선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종업원이 10만8000명인 것에 비하면 1% 안팎에 불과하다. 계열사 중 조합원 수가 가장 많은 삼성디스플레이도 2000여 명으로 종업원(2만8000여 명) 대비 8% 선이다. 삼성서울병원은 지난해 7월 노조를 설립하려 했으나 가입한 직원이 한 명도 없어 무산됐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의 협상력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표성을 확보하지 못한 데다 파업과 같은 사측을 압박할 수단도 마땅찮은 형국에서 계열사별 교섭으로는 노조가 사측에 우위를 점하기 힘들다. "무노조 경영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은 삼성그룹 전체를 공동교섭이란 이름으로 협상장에 끌어들여 노조의 대표성을 포장하면서 노사관계를 재이슈화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익명을 요구한 경영학부 교수)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삼성그룹이 이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계열사별로 임금과 근로조건에 현격한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 공동교섭으로 일괄 타결하는 방식을 각 계열사의 직원들이 받아들일지도 의문이다.
 
삼성 계열사 임원을 지낸 관계자는 "노조의 요구안은 '임금을 더 올리고, 지금까지 삼성의 성과를 이끌었던 성과 관리형 인사제도를 허물어라. 다만 성과급은 더 달라. 60세까지 임금피크제 없이 이런 혜택을 유지하라'는 것"이라며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노조의 존재 이유는 임금과 같은 근로조건 향상"이라며 "최고의 성과 속에 최고 대우가 나온다는 것에 공감하는 삼성의 직원들이 노조의 요구에 호응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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