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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코로나 음압실 모니터에 잡힌 남녀의 낯뜨거운 광경

중앙일보 2021.02.08 09:00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64)

 
코로나19가 우리 삶을 바꾼 지도 벌써 1년. 나는 월급쟁이가 된 이후 역대 가장 많은 세금을 냈다. 연말정산 명세서에 ‘0’이 하나 잘못 붙은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나는 앞으로 석 달간 월급이 없을 예정이다. 올해 유난히 많은 세금을 내게 된 이유는 그만큼 많은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내 주머니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유달리 두둑해졌다. 장사가 안되어 폐업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내 배는 눈치도 없이 불러만 갔으니, 나는 어쩌면 탐관오리인지도 모르겠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다. 병원도 마찬가지다. 환자가 없어 파리 날리는 곳이 지천이다. 하지만 어디나 예외는 있는 법. 코로나19 관련 의료는 수요가 폭발했다. 본디 응급의학은 위기 속에서 빛 나는 법. 나는 작년 한 해 여기저기 밤낮으로 불려 나갔는데,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끝없는 초과근무와 밤 당직은 호랑이 가죽처럼 조그마한 수당을 남겼는데, 그것이 매일같이 반복되더니 티끌 모여 태산이 되었다. 무거운 보호장구 입고 하루건너 날밤을 새우며 부자가 되었으니, 몸 팔아 돈 버는 심정이 아마도 이런 게 아닐까?
 
그래서 오늘은 내 통장을 살찌워 준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려 한다. 죽고 못 사는 어느 커플부터. 1년 전 코로나19 초창기 일인데, 그때는 다들 막연한 두려움만 있었지, 실제 경각심은 부족하던 시기였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돌아다니던 사람도 많았으니까. 아무튼, 여차여차해서 젊은 여자 하나가 응급실에 왔는데, 코로나19가 의심되어 음압실에서 검사를 진행 중이었다. 한참 다른 환자를 보다가 웅성거리는 소리에 돌아봤더니, 한 무리의 의료진이 모니터 앞에 모여있었다.
 
격리실은 보통 밖에서 내부를 들여다보기 어려운 구조다. 카메라로 외부에서 안쪽 상황을 감시한다. 환자의 상태가 언제 나빠질지 모르고, 그럴 땐 응급처치를 위해 급히 격리실로 출동해야 하기 때문이다.[연합뉴스]

격리실은 보통 밖에서 내부를 들여다보기 어려운 구조다. 카메라로 외부에서 안쪽 상황을 감시한다. 환자의 상태가 언제 나빠질지 모르고, 그럴 땐 응급처치를 위해 급히 격리실로 출동해야 하기 때문이다.[연합뉴스]

 
격리실은 보통 밖에서 내부를 들여다보기 어려운 구조이다. 따라서 카메라를 통해 외부에서 안쪽 상황을 감시한다. 환자의 상태가 언제 나빠질지 모르고, 그럴 땐 응급처치를 위해 급히 격리실로 출동해야 하니까. 그 때문에 환자의 생체 신호 모니터는 물론이고, 육안으로도 환자 상태를 확인할 수 있게 설비돼 있다. 즉, 환자 모니터 앞에서 의료진의 웅성거림이 발생했다면 이유는 하나뿐! 안쪽에서 무언가 심각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뜻이다.
 
나는 화면을 보고 단말마의 비명을 질렀다.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분명 한 명을 격리했는데 화면에 잡힌 사람이 둘이었다!
 
감염 전파의 위험이 있는데 대체 저 남자는 왜 격리실에 함께 들어가 있는 거지? 그리고 지금 카메라 밑에서 뭐 하는 수작이지? 코로나가 호흡기 감염이라는 걸 모르는 건가? 나는 화면을 보고 분통을 터트리며 남자의 출입 경위를 물었다. 의료진 중에 실수한 사람은 없었다. 그저 한시도 떨어질 수 없는, 저 죽일 놈의 사랑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비장한, 하늘도 갈라놓을 수 없는 가슴 절절한 사랑이 그가 무단으로 격리실 담을 넘게 했을 뿐. 그러니 대체 그 누구를 탓할 수 있으리오. 무려 사랑 때문이라는데.
 
물론 당시 나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었다. “당장 저 연놈들을 끌어내. 아니 아니. 여자는 감염 위험이 있으니까 내버려 두고, 저 새끼만 얼른 끌어내라고. 아니 아니다. 차라리 밖에서 문을 잠가버려. 아무도 못 나오게. 이렇게 된 거 둘 다 코호트 시켜버려!”
 
복잡한 격리실은 지난 1년간 사연이 끊이지 않았다.의료진이 아무리 만류해도 환자 곁을 지키는 보호자도 있었다. 사진은 에어텐트로 만든 이동식 음압병동 외관. [중앙포토]

복잡한 격리실은 지난 1년간 사연이 끊이지 않았다.의료진이 아무리 만류해도 환자 곁을 지키는 보호자도 있었다. 사진은 에어텐트로 만든 이동식 음압병동 외관. [중앙포토]

 
흥분한 나를 전공의와 간호사들이 열심히 말렸다. 이제는 쓴웃음이 나는 추억이다. 그러고 보니 격리실은 지난 1년간 사연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동방예의지국답게 효심 가득한 가족이 많았다. 아픈 아비를 어떻게 혼자 두겠냐며, 의료진이 아무리 만류해도 기를 쓰고 환자 곁을 고집하던 보호자들. 어디선가 구해 온 의자에 등을 괴고 앉아 환자 침대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들. 그 나른한 오후의 정경. 모니터 너머 그 모습이 어찌나 토속적이고 정겨워 보이던지….
 
때로는 프리즌 브레이크를 찍으려 들던 환자도 있었다. 한때 방 탈출 게임이 유행해서인가? 복잡한 격리실 구조를 대체 어떻게 분석해 탈출하는 건지. 이쯤 되면 병원 격리실을 무슨 쇼생크 급으로 지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한번은 무거운 문을 완력으로 부수고 나간 환자도 있었다. 자기가 왜 갇혀있어야 하냐고 불같이 화를 내면서. 수리비가 수백만 원 넘게 나왔었다. 사건 당시엔 그 모든 사람이 원망스럽고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는데, 지나고 보니 그 모두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죽자고 말 안 듣는 그들 덕분에 코로나19가 1년 넘도록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것일 테니 말이다. 이들이야말로 탐욕에 찌든 ‘나’라는 의사 놈에게 역대급으로 돈을 많이 벌게 해 준 1등 공신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요즘은 교회를 눈여겨보고 있다. 양심상 올해는 헌금을 많이 해야겠다.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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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수 조용수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필진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 의사는 누구보다 많은 죽음을 지켜본다. 삶과 죽음이 소용돌이치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는 특히 그렇다. 10년 가까이, 셀 수 없이 많은 환자의 생과 사의 현장을 함께 했다. 각양각색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며, 이제는 죽음이 삶이 완성이란 말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환자를 통해 세상을 보고, 글을 통해 생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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