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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아내와 오늘도 ‘함·또·따’…이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

중앙일보 2021.02.07 09:00

[더,오래] 권대욱의 산막일기(72)   

산막에 눈 온 모습, 서울에서도 다 보인다. 참 좋은 세상. 못 참겠다. 눈 보러 가야겠다.

 
산막에 눈이 왔다. 눈이 온 산막은 시련의 연속이다. 불편하지만 여전히 매력적이다. [사진 권대욱]

산막에 눈이 왔다. 눈이 온 산막은 시련의 연속이다. 불편하지만 여전히 매력적이다. [사진 권대욱]

눈 오는 고속도로를 달려 산막에 도착했다. 눈이 많이 오지는 않았지만 습기가 가득 찬 눈이라 잘 쌓여있는 듯하다. 바람도 많이 분다. 막상 산막에 오니 겨울 산막은 시련의 연속임을 다시 한번 경험한다. 얼고 터지고 새고 막히고 모든 것이 불편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막은 여전히 매력적이고, 나는 변함없이 애정하니 내게 산막은 진정 무엇인지 모르겠다. 보일러실 동파는 이웃집 하 원장을 청해 간단히 해결했고, 밥하고 설거지할 꼭 필요한 물은 집 앞 수도전에서 해결했다. 싸늘한 겨울 찬바람 맞으며 물통 들고 물 받는 재미는 물지게로 물 길어 먹던 옛날을 떠오르게 한다. 그때 비하면 지금은 얼마나 살 만한가. 그러니 바로 집 앞에 아무리 날 추워도 절대 얼지 않는 부동의 수도전 하나 있음은 얼마나 다행인가. 바로 이웃에 이것저것 못 하는 것 없고 아침부터 불러도 싫은 내색 없이 달려와 주는 이웃 하나 있음은 또 얼마나 다행인가. 터진 배관 고치고 물병들에 물 다 채우고 좋은 음악 들으며 닭다리 뜯고 앉았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물은 날 풀리면 절로 녹을 것이고 부서진 수도전은 차차 고치면 될 것이니 이만해도 감사하는 마음 온 세상을 다 가진 듯하다. 모든 것이 마음이다. 마음먹기 달려있다. 아무리 시련이 있더라도, 아무리 절망스러운 상황이 닥치더라도 범사에 고마워하는 마음, 모든 것이 잘 될 거야 라는 긍정의 마인드가 있으면 외롭지 않다. 그러니 왜 감사하지 않을 것이며 왜 긍정하지 않겠는가?
 
산막에 혼자 올 경우 어쩔 수 없이 밥이든 국이든 혼자 끓여 먹는다. 이번 일정엔 갈비탕이 먹고 싶었다. 한우 갈비가 꽤 비쌌지만 2일 6끼를 맛있게 때웠으니, 끼당 1만원 정도 들었다. 유튜브를 참고했고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이제 갈비탕 하나는 확실하다. 역시 직접 해보는 게 최고다.
 
 
아마 아내는 친구들과 여행을 떠난 듯하다. 남편에게 이야기는 했으나 남편은 그 기억을 잘 못 하고 있는 것 같다. 누구라 이야기는 안 하겠다. 다들 짐작을 하시려나.
 
아내: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당신이 고맙고 저녁은 잡수셨나요? 냉장고 밥과 국물 있고 주스도 드세요.
남편: 오늘 저녁을 두 번 먹고 있으니 걱정 붙들어 매고 잘 놀다 오시요.
아내: 감사합니다. 당신 멋쟁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남편: 낼 조찬도 있으니 일찍 일어나면 집에서 챙길 것이오. 늦게 일어나면 밖에서 챙길 것이니 걱정하지 마오. 충전기 집에 있나?
아내: 아 이런 고마울 데가…. 충전기는 이부자리 끝에 있어요.
남편: 오케이.
 
오래된 대화를 꺼내어 본다.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우리는 위임과 자율이라는 굴레 속에, 그리고 그 범위와 재량에 대한 이런저런 갈등 속에 마음 편할 날이 없다. 그 불편함의 바닥에는 위임하는 사람의 믿음과 위임받는 사람 소신의 문제가 있고, 위임받긴 했는데 과연 그리해도 되는가, 또는 하긴 했는데 잘한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도 있다.
 
모 그룹 총수가 “모든 경영권을 위임한다. 앞으로 나에게 어떤 결재도 가져오지 마라”하고 엄명을 내렸지만, 끊임없이 물어보고 떠보고 하더란다. 처음엔 조언도 해주고 대답도 해주다가 언제부턴 가는 아예 묻지도 못하게 했다고 한다. 자율경영이 정착되기까지 그로부터 십여 년이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위임해 놓고서도 무심히 내뱉은 “아 그거 잘 돼 가나” 라든가, “어 그것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왜 그렇게 했어”라는 한마디에 모든 것이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만다. 이후 위임받은 사람은 무슨 일을 못 할 것이다. 눈치 보느라.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하면 갈등이라도 없지, 경영효율은 떨어지고 차라리 위임치 않느니만 못할 경우도 많을 것이다. 맡기되 완전히 맡겨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 자율이 있고 소신과 책임이 수반된다. 보람과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여행 간 아내도 마찬가지다. 여행 간다? 그래 가라 해놓고 찝찝한 표정을 짓는다면 차라리 가지 말라 하는 편이 낫다. 출근하는 남편 놔두고 친구랑 여행 가는 아내의 입장이 뭐 그리 유쾌하겠나. 이왕 보낼 바에는 화끈하게 보내는 편이 간 사람도 맘 편하고 보낸 사람도 기분이 좋을 것이다. 그래야 나도 후일 신나게 나만의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눈을 좋아한다. 펑펑 쏟아지는 눈을 기대하지만 최근엔 그런 눈이 자주 없었던 것 같다.

눈을 좋아한다. 펑펑 쏟아지는 눈을 기대하지만 최근엔 그런 눈이 자주 없었던 것 같다.

 
이토록 이 세상 ‘함·또·따’ 아닌 것이 없다. 산막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우주, 블랙홀, 지구의 역사 보이져를 보고, 곡우는 패러데이 영어 숙제를 한다. 이렇게 오늘도 함께 또 따로다. 삼각대에 폰 얹고 난로 앞에서 우주를 여행하는 기분은 각별하다. 어디서 왔을까 우리는?

 
(주)휴넷 회장·청춘합장단 단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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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욱 권대욱 ㈜휴넷 회장·청춘합장단 단장 필진

[권대욱의 산막일기] 45년 차 직장인이자 32년 차 사장이니 직업이 사장인 셈이다. 일밖에 모르던 치열한 워커홀릭의 시간을 보내다 '이건 아니지' 싶어 일과 삶의 조화도 추구해 봤지만 결국 일과 삶은 그렇게 확실히 구분되는 것도 아니고 애써 구분할 필요도 없음을 깨달았다. 삶 속에 일이 있고 일속에 삶이 있는 무경계의 삶을 지향하며 쓰고 말하고 노래하는 삶을 살고 있다. 강원도 문막 산골에 산막을 지어 전원생활의 꿈을 이뤄가고 있다. 60이 넘어서야 깨닫게 된 귀중한 삶과 행복의 교훈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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