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독]'억대연봉' KBS의 숙원···여당도 "수신료 인상 반대"

중앙일보 2021.02.07 05:00
KBS가 "숙원이자 가야만 할 길"(양승동 사장 신년사)로 꼽는 수신료 인상안이 고액 연봉 논란으로 또다시 좌초 위기다.

 
양승동 KBS 사장이 지난달 4일 신년사에서 ″수신료 현실화는 우리의 숙원이자 가야만 하는 길″이라며 수신료 인상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연합뉴스

양승동 KBS 사장이 지난달 4일 신년사에서 ″수신료 현실화는 우리의 숙원이자 가야만 하는 길″이라며 수신료 인상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연합뉴스

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실이 KBS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한 해 억대 연봉을 받은 KBS 직원은 총 4800명 가운데 2226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1억 이상의 연봉을 받는 직원의 비율(46.4%)이 알려져 논란이 됐지만 구체적 숫자가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억대 연봉자 가운데 평직원도 1525명(68.5%)에 달했다. KBS 측은 “(평직원은)현업에서 실무자로 근무하고 있지만 (연말 기준으로) 센터장, 국장, 부장, 팀장(직무대리 포함) 등의 직위를 부여받지 않은 직원”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KBS는 억대연봉자가 많은 이유로 “올림픽, 아시안게임에 맞춰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후반까지 대규모 인력을 채용했다”는 점을 꼽았는데, 2000년대 이후 입사자 중에서도 적지 않은 수가 억대 연봉자로 추정된다.
 

고연봉 논란 갑자기 왜

앞서 KBS 이사회는 현재 월 2500원인 수신료를 월 3500~4000원으로 최대 1500원 인상하는 내용의 ‘수신료 현실화’ 안건을 상정한다고 밝혔다. KBS의 수신료는 방송법에 따라 이사회가 심의‧의결하면 방송통신위원회를 거친 뒤 국회의 승인을 얻어 최종 확정된다.  
 
수신료는 전기요금에 합산되기 때문에 사실상 전 국민이 세금 성격으로 내고 있다. 
이 때문에 KBS가 ‘재정문제’를 이유로 수신료 인상을 주장할 때마다 고액연봉 문제가 제기되며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 서민 호주머니를 턴다”는 비판이 불거졌다. 
최근 한 KBS 직원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밖에서 우리 직원들 욕하지 말고 능력‧기회가 되면 사우가 돼라”고 말한 데 대해 KBS가 빠르게 공식사과를 내놓은 것도 이런 국민적 반감을 의식한 행보로 해석된다.   
 

대국민 약속·총리까지 나섰지만…야당 반대 번번이 좌초 흑역사

2011년 당시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국회 문방위 앞에서 KBS수신료 기습인상처리에 항의하는 긴급의원총회를 열고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11년 당시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국회 문방위 앞에서 KBS수신료 기습인상처리에 항의하는 긴급의원총회를 열고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KBS의 수신료 인상 추진은 ‘4수’째다. 1981년 2500원으로 확정된 이후엔 40년 째 한 번도 인상된 적이 없다. 2007년(노무현 정부), 2010년(이명박 정부), 2013년(박근혜 정부) 등 역대 정부가 모두 인상을 추진했지만 매번 당시 야당과 국민적 비판 여론에 부딪혀 무산됐다.
 
2007년 정연주 사장은 기자회견까지 열면서 “월 2500원의 수신료로는 거대자본과 외국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시청자들의 권익을 지켜내기 역부족”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정 사장은 ▶각 가정 수신환경 개선 ▶세계 최고수준 프로그램 제작 등 10가지 약속을 내세워 인상을 호소했다. 민주당이 지지했지만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이 “불공정 보도”를 이유로 반대해 무산됐다.  
 
3년 뒤인 2010년(김인규 사장)엔 공수가 바뀌었다. 여당이 된 한나라당은 정운찬 국무총리까지 나서 “공영방송 운영 재원을 정상화하고 프로그램 질을 제고하기 위해 수신료 인상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민주당은 “인상의 명분이 없다”고 맞섰다. 당시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KBS 수신료 인상저지 범국민행동’까지 꾸려 적극 저지에 나서면서 인상안은 또 한 번 불발됐다.
 
2013년 길환영 사장도 “재정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수신료 인상을 주장했다. 당시 KBS이사회가 1500원 인상안을 의결, 방통위까지 통과했지만 “공정방송 회복과 지배구조 개선이 먼저”라는 민주당의 반대에 부딪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번엔 여당까지 "공감대 부족"…체질개선 선행해야 

문재인 정부에서도 같은 전철을 밟는 중이다. 야당은 “TV보는 사람도 줄었는데, 세금이나 다름없는 수신료 인상은 공감하기 어렵다(나경원 전 의원)”고 주장하며 인상에 반대하고 있다. 김웅 의원은 연일 페이스북으로 “대통령 생일에 ‘song to the moon(달님께 바치는 노래)’을 방송하는 방송국치고는 지나치게 높은 고액 연봉을 받는다”며 맹공을 펼치고 있다.
 
이번엔 여당인 민주당 내부에서도 “국민적 공감대 부족”을 이유로 반대 목소리가 적지 않다. 지난 달 7일 국회 과방위원장인 이원욱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국민적 동의 없는 KBS 수신료 인상은 안 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코로나19 위기로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수신료 인상은 국민의 방송임을 망각하는 것”이라는 취지다.  
 
결국 “KBS의 체질개선이 필수”라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독립된 수신료 산정위원회 설치 ▶인력 구조조정 ▶현재 수신료를 나눠 받는 EBS와의 배분율 정상화 등의 자구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며 “방만한 경영을 개선하고 수신료가 투명하게 활용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국민들도 수신료 인상안에 공감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