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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승리 이끈 미 과학 영웅 부시, 실리콘밸리 씨 뿌려

중앙선데이 2021.02.06 00:21 723호 27면 지면보기

디지털 걸리버여행기

버니바 부시(왼쪽 셋째)는 미국이 과학기술의 힘으로 2차 대전에서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준비된 영웅’이었다. 그가 1945년 공개한 ‘과학, 그 무한한 프런티어’ 보고서는 미국의 전후 과학발전의 큰 그림을 담았다. [사진 차상균]

버니바 부시(왼쪽 셋째)는 미국이 과학기술의 힘으로 2차 대전에서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준비된 영웅’이었다. 그가 1945년 공개한 ‘과학, 그 무한한 프런티어’ 보고서는 미국의 전후 과학발전의 큰 그림을 담았다. [사진 차상균]

2020년 초 인류에게 닥친 팬데믹은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세계 전쟁이다. 우리는 많은 희생을 낸 이 전쟁을 그냥 보낼 수 없다. 지난 1년은 세계 각국이 통제와 절제, 돈 풀기를 통해 위험을 억제하기에 급급한 시기였다. 그러나 2021년은 이 전쟁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비전과 남보다 앞서기 위한 혁신 체계를 대학과 기업 등 각계에서 만들어야 한다.
 

29세에 MIT 전기공학과 교수
카네기과학재단 최고 책임자 맡아
페니실린·원자탄 등 개발 주도

전후 연구재단 세워 신제품 개발
미국을 세계 최강 국가로 만들어
MIT 제자 터만, 실리콘밸리 일궈

전쟁은 과학기술의 압축된 발전과 세계사적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일으킨다. 유럽에서 발발한 2차 대전을 과학기술의 우위로 종지부를 찍은 미국은 전후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수준으로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세계 최강국이 됐다. 승리한 전쟁에 영웅이 없을 수 없다.
  
전쟁 연구 경험이 실리콘밸리 기반
 
스탠퍼드대 ‘젠슨 황 공학센터’ 내부의 터만도서관 안내 표지. [사진 차상균]

스탠퍼드대 ‘젠슨 황 공학센터’ 내부의 터만도서관 안내 표지. [사진 차상균]

한국에서 3·1 운동이 일어난 1919년 버니바 부시(Vannevar Bush)는 29세에 MIT 전기공학과 교수가 됐다. 1916년 전기공학 분야에서 MIT와 하버드대학의 공동 박사 학위를 받은 부시는 현실 세계의 문제를 연구하고 응용하는 데 관심이 컸던 엔지니어였다.
 
물리 시스템의 동적 특성을 표현하는 미분방정식을 풀기 위해 전기적으로 작동하는 아날로그 컴퓨터를 발명했으며 디지털 컴퓨터가 나오기도 전에 ‘월드 와이드 웹(WWW)’의 근간인 하이퍼텍스트 개념을 발표했다. 정보 이론을 만든 제자 클로드 섀넌과 디지털 회로 이론을 만들고 가르쳤다. 사이버네틱스를 개척한 노버트 위너는 MIT 동료였다.
 
부시는 1922년 MIT 교수가 된 지 3년 만에 현존하는 미국의 대표적 군수업체 레이시온을 공동 창업했다. 이렇게 연구를 실세계에 적용하면서 얻은 부 덕분에 부시는 이후 재정적으로 구애받지 않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수 있었다.
 
1930년 MIT에 새 총장이 부임해 교수의 외부 자문활동을 제한하자 부시는 그와 충돌하였지만 곧 같이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해 신설된 부총장직을 맡았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워싱턴 DC 소재 카네기과학재단의 최고 책임자가 된 부시는 미국이 과학기술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준비된 영웅이었다.
 
부시는 워싱턴 DC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설득해 전시 과학개발을 총괄하는 과학연구개발국 OSRD를 세워 그 책임자가 됐다. 적기의 공격을 조기에 탐지하기 위한 레이더와 부상병 치료에 필수적인 페니실린, 대잠수함 무기, 일본의 항복을 받아낸 원자탄이 부시가 이끈 OSRD에 의해 만들어졌다.
 
1945년 7월 19일 워싱턴 DC에서는 부시가 루스벨트 대통령이 사망하기 전 요청한 미국의 전후 과학발전 방안에 대한 34페이지의 보고서 ‘과학: 그 무한한 프런티어(Science, the Endless Frontier)’를 공개했다. 2차 대전 이전 미국 대학의 과학기술 연구는 주로 개인의 기부금과 기업 자금에 의해 수행됐다. 정부는 공공목적과 국가안보에 필요한 최소한의 연구 개발 예산을 지원했다. 전쟁이 끝났으니 전시 과학연구개발비를 없애고 당장 필요한 다른 용도로 쓰면 간단한 문제였다. 그러나 전쟁 승리를 위해 미국의 과학기술을 짧은 시간에 빠른 속도로 세계 정상에 끌어 올린 부시는 미국이 전후 폐허가 된 유럽의 기초과학에 의존할 수도 없는 만큼 OSRD 등이 쓰던 전시의 과학연구개발 예산을 평화시의 기초 연구비로 전환하고 이를 국가적으로 관리할 기관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비록 5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지만 미국연구재단 NSF가 1950년 출범했다. 부시가 원하던 바는 아니었지만 NIH와 같은 여러 연구비 지원 기관들이 분야별로 생겨났다. 기초 연구비 덕분에 과학자들이 시간 압박에서 해방되어 신제품으로 양질의 신산업 일자리를 만들고, 신무기를 개발해 국가 안보를 증진하며, 각종 질병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했다. 이 정부연구비가 오늘날 미국이 세계 최강의 국가의 지위를 누릴 수 있게 만들었다.
 
부시는 또한 전후 과학, 공학 전문 인력 부족을 예상하고 인재 양성 시스템을 정비하도록 권고했다. 미국의 과학기술 원천 경쟁력은 미국 대학이다. MIT, 스탠퍼드, 하버드 등 세계 5대 대학이 미국에 있다. 부시는 미국이 2차 대전을 승리하도록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지난 75년간 세계를 주도하는 토대를 만든 인물이다.
 
프레드릭 터만. [사진 위키피디아]

프레드릭 터만. [사진 위키피디아]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미국 과학기술의 중심축은 동부였다. 현재의 실리콘밸리가 있는 샌프란시스코 아래 지역은 과수원과 채소밭으로 덮여 있었다. 서부의 이 농촌 지역을 세계 최고의 혁신 생태계로 바꾼 사람이 스탠퍼드대 부총장 프레드릭 터만이다. IQ 테스트로 유명한 심리학자 루이스 터만 스탠퍼드대 교수가 그의 아버지이다. 스탠퍼드대에서 화학 학사와 전기공학 석사를 마친 터만은 박사 공부를 위해 MIT 전기공학과로 진학했다.
 
터만이 실리콘밸리의 대부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터만의 MIT 박사 지도교수가 바로 버니바 부시였다. 1925년 스탠퍼드대 전기공학과 교수가 된 터만은 2차 대전 중에는 부시가 이끌던 OSRD의 지휘를 받는 하버드대에서 레이디오 엔지니어링 연구소장을 맡아 적의 레이더를 교란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850여 명의 기술자를 이끌며 그가 사용한 예산이 당시 스탠퍼드대 예산보다 컸다.
  
과학으로 성공한 혁신가들 많은 기부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 본사는 스탠퍼드대 연구공원에 자리 잡았다. [사진 차상균]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 본사는 스탠퍼드대 연구공원에 자리 잡았다. [사진 차상균]

전후 스탠퍼드대로 돌아온 터만은 마이크로웨이브 연구소를 세우고 NSF 설립을 도우면서 스탠퍼드대에 정부 연구비를 크게 끌어왔다. 연구에 참여했던 휴렛, 팩커드, 바리안 같은 제자들이 HP, 바리안 같은 회사를 창업하도록 독려했다. 전쟁 승리를 위한 대규모 실전 연구 개발 경험이 무에서 실리콘밸리를 일으키는 기반이 됐다.
 
1951년 터만은 스탠퍼드대 캠퍼스 남쪽의 페이지밀 도로를 중심으로 연구공원을 조성했다. 이 연구공원이 실리콘밸리의 시작이다. HP, 바리안이 아직도 입주해 있는 스탠퍼드대 연구공원에는 현재 테슬라 본사와 SAP 팔로 알토 연구소, VMWare 같은 기업은 물론 실리콘밸리 최대의 벤처 로펌 WSGR이 입주해 있다. 한때 비트맵 스크린, 마우스,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LAN 기술, 레이저 프린터 등을 발명해 실리콘밸리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제록스 팔로 알토 연구소도 축소된 형태로 남아 있다.
 
터만은 1960년대 초 스탠퍼드대에 최고의 컴퓨터과학부를 세우기 위해 당시 최고의 두 석학을 초빙했다. 컴퓨터과학의 근본을 세운 천재 도널드 크누스 교수와 인공지능의 선구자 존 매카시 교수다. 이 두 사람이 오자 우수한 연구자들이 스탠퍼드로 몰려 왔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75년이 지난 2020년 2월 26일 워싱턴 DC에서 미국 과학 한림원은 카블리 재단과 슬론 재단의 후원을 받아 ‘무한한 프런티어: 과학의 다음 75년’ 심포지엄을 열었다. 부시의 혜안이 담긴 75년 전 보고서와 그간의 미국 과학 발전의 역사를 돌이켜 보고 미래 75년의 과학을 위해 무엇을 바꾸어야 할 것인지 토론하는 심포지엄이었다.
 
부시가 초석을 놓은 정부의 기초연구 지원은 이제 세계적으로 보편화했다. 세계적인 데이터 기반 디지털화,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 기후 변화, 미국과 중국의 충돌은 지금까지 해온 과학정책만으로 세상의 문제를 풀 수 없음을 확인해 줬다. 인문사회 분야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들이 한 운동장에서 함께 소통하고 연구하고 교육하는 실험이 과감하게 일어나야 할 때이다.
 
정부의 딱딱한 공적 자금만으로는 과학을 발전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 미국은 과학기술로 사업에 성공한 혁신가들이 과학과 교육 발전을 위해 많은 기부를 한다. 터만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스탠퍼드 터만 엔지니어링 빌딩이 안전 문제 때문에 철거되자 공대 본부가 젠슨 황 NVIDIA 창업자의 기금으로 세운 빌딩으로 옮겨졌다.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장
서울대 전기공학사, 계측제어공학석사, 스탠퍼드대 박사. 2014~19년 서울대 빅데이터연구원 초대 원장. 2002년 실리콘밸리에 실험실벤처를 창업했다. 이 회사를 인수한 독일 기업 SAP의 한국연구소를 설립해 SAP HANA가 나오기까지의 연구를 이끌고 전사적 개발을 공동 지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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