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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직후 ‘기회의 땅’ 동독으로 기업인·사기꾼들 밀물

중앙선데이 2021.02.06 00:20 723호 16면 지면보기

독일 통일 그 후 30년 〈4〉

동독경제 청산 업무를 맡은 신탁관리청이 있었던 베를린 재무부 청사. 원래는 동독 대외경제부 건물이었다. 신탁관리청은 4만5000개의 사업장을 민영화하거나 정리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사진 독일 연방문서보관소]

동독경제 청산 업무를 맡은 신탁관리청이 있었던 베를린 재무부 청사. 원래는 동독 대외경제부 건물이었다. 신탁관리청은 4만5000개의 사업장을 민영화하거나 정리하는 업무를 수행했다. [사진 독일 연방문서보관소]

과거 동독 사람들은 갑자기 표현의 자유가 생기자 통일을 갈망하게 되었지만 당시에 통일은 모두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서독에서는 40년 동안 주요 기념 행사의 연설을 통해 통일을 다짐했다. 특히 1953년 동독에서 일어났다가 실패로 끝난 민중 봉기를 기억하기 위해 6월 17일로 정한 ‘독일 통일의 날’에는 반드시 그러했다.
 

은퇴자·젊은 사업가 속속 동독행
공무원, 행정지원 파견 뒤 정착도

지자체·기관 잇단 사기·편취 피해
특혜받은 구동독 간부들 치부도

동독 투덜이 오씨, 잘난 척 서독 베씨
상호 불신했지만 동독 재건 성공적

하지만 이제는 예전에 그렇게 연설에 단골로 등장하던 것들을 하루아침에 실행에 옮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 동독 동포들을 위한 지원과 사회주의로 인해 피폐해진 사회를 힘을 합쳐 일으켜 세워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넉넉한 보수와 잘 꾸며진 사무실 그리고 좋은 집을 포기하고 전화와 팩스도 제대로 연결되지 않은 구동독 지역에서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된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하는 문제였다. 또한 어떤 기업이 몰락한 산업의 재건을 위해 투자하려 할 것인가? 이미 은퇴한 인사들을 포함한 많은 경영자들이 열의를 지니고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묵묵히 감수했다. 이들은 어릴 때 분단을 경험했으며 구동독 재건에 참여하면서 짊어지게 되는 자신의 몫을 감당할 만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했다.
  
사우나 카르텔, 신탁관리청도 속여  
 
‘동독 투덜이(Jammer-Ossi)’와 ‘잘난 척하는 서독 놈(Besser-Wessi)’과 같은 표현은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 있다. [사진 독일 연방문서보관소]

‘동독 투덜이(Jammer-Ossi)’와 ‘잘난 척하는 서독 놈(Besser-Wessi)’과 같은 표현은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 있다. [사진 독일 연방문서보관소]

젊은 세대에게는 서독에는 존재하지 않던 기회들이 많이 있었다. 종전 이후 45년 동안 서독에는 잘 작동하는 경제가 매우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으며 그 안에서 출세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운신의 폭이 매우 한정적이었다. 중간 관리자 세대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구동독 지역에서 일을 하고 돌아온 후에 예전 일자리가 존속할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졌으며, 존속하더라도 계속해서 경력을 순탄하게 이어 가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졌다.
 
이러한 배경에서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은 은퇴한 경영인들과 아주 젊고 기업가 정신이 있는 사람들이 구동독 지역으로 많이 이주했다. 신탁관리청 초대 청장을 지내다 극좌 테러리스트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데틀레프 로베더, 튀링겐주 총리가 된 베른하르트 포겔, 자신이 태어난 작센주로 다시 돌아가서 주 총리가 된 쿠르트 비덴코프와 같은 정치인들이 이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또한 많은 공무원이 처음에는 행정 지원을 위해 구동독 지역 행정에 ‘대여 형태’로 파견됐다가 그곳에 정착하기도 했다.
 
물론 통일로 이익을 본 사람들도 있었다. 사기성이 있는 사업가들은 통일이 된 직후 몇 년간 구동독 지역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매우 힘든 상황에 처한 사업 파트너들에게 엉터리 자문 활동을 통해 손쉽게 돈을 벌기도 했다. 경제 부문에서는 구동독 지역에 어차피 자본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에 위와 같은 사례가 제한적으로 발생했다. 반면에 지자체나 국가 기관들의 경우에는 기만적인 사업가들이나 심지어는 사기꾼들의 먹잇감이 되곤 했다.
 
서독 기업들의 동독 지역으로의 확장이 항상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바이에른주 출신의 기업가인 라이너 필츠는 튀링겐주에 대규모 CD 제작 공장을 세웠지만 불과 2년 후에 도산했다. [사진 독일 연방문서보관소]

서독 기업들의 동독 지역으로의 확장이 항상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바이에른주 출신의 기업가인 라이너 필츠는 튀링겐주에 대규모 CD 제작 공장을 세웠지만 불과 2년 후에 도산했다. [사진 독일 연방문서보관소]

바이에른주에 뿌리를 둔 한스 자이델 재단은 뮌헨 인근 도시의 시장을 역임했던 게르하르트 미헬스를 초빙해 통일 직후 2년 여 동안 구동독 지역인 작센주와 튀링겐주의 지자체들을 도와줬다. 이들 지자체들은 통일 직후에 하수종말처리장 시설을 마련하는 데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지불했거나 산업지구 설계를 잘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신탁관리청이 하루아침에 4만5000개의 사업장을 민영화하거나 정리해야만 했던 당시와, 동독 재건 프로젝트에 따라 신연방주들의 사회·경제기반시설에 대한 강력한 지원 사업을 수행하던 때에는 신용이 없는 업체들과 마주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모두는 아니었지만 상당수가 서독 출신이었던 계약 파트너들은 충분한 준비가 부족했던 신탁관리청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지불 능력에 관해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투자 약속이나 일자리 유지와 관련된 약속도 잘 지켜지지 않았다. 보조금과 관련된 사기는 자주 발생했으며 조금이라도 취할 가치가 남아 있는 구동독 기업들을 모두 수탈한 뒤 도산시키기도 했다.
 
구동독 지역의 전형적인 음울한 산업도시로서 미래에 대한 전망이 어두워 보였던 할레에 위치했던 ‘가노펜 유한회사’의 사례는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이 회사의 처리를 논의하기 위해 신탁관리청 할레 지부 담당 직원들은 매일 저녁 서독 출신의 기업인들과 구동독 출신의 옛 간부들과 면담했다. 슈파르카세 은행은 담보도 확실치 않은 자금 지원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었다.
 
‘빅 보스가 장악한 농촌’이라는 제목을 단 슈피겔 표지.

‘빅 보스가 장악한 농촌’이라는 제목을 단 슈피겔 표지.

처음에는 성과가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신탁관리청이 1992년 할레의 사업진척 현황을 발표할 때에는 민영화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이 지난 후 24억 마르크의 투자 약속과 7만 개의 일자리 확보는 서류상으로만 존재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서독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출신의 기업인인 볼프강 그라이너는 주로 다이믈러-벤츠에 부품을 납품하는 자신의 회사인 벨리노를 활용해 구동독 지역에서 무려 21개의 회사를 인수했다. 그라이너는 서독에서 진 빚을 갚기 위해 인수한 동독 회사들로부터 3400만 마르크를 빼돌린 혐의로 후에 기소됐다. 뮌헨 출신의 한 변호사는 8개의 동독 업체를 인수했으며 2400만 마르크를 부당하게 편취했다.
  
남북통일 대비 탈북자 미리 교육할 만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또 다른 스캔들은 소위 ‘사우나 카르텔’이었는데, 사업가들이 신탁관리청을 속이기 위한 가격 담합을 위해 사우나에서 정기적으로 만났던 사건이다. 그런데 사기꾼은 서독 출신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알짜배기 사업을 가능하게 했던 내부자 정보를 지닌 구동독 공산당 간부들도 부정한 짓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농업 분야 민영화와 관련하여 구동독 시절의 집단농장 관리인들이 교묘하게 특혜를 받아서 ‘구동독 사회주의 간부 출신 빅 보스’라는 새로운 집단이 생겨나면서 이들이 갑자기 대규모 토지 소유주로 변모한 사례가 심심치 않게 생겨났다.
 
서독에서 의심스러운 기업인들이 이렇게 몰려드는 것에 대해 구동독 주민들은 애초부터 달가워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가지 않아 체계적으로 모든 것을 빼앗아 가고 마치 모든 것을 아는 양 잘난 척하는 서독 사람들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늘 불평만 하는 동독인이라는 뜻의 ‘동독 투덜이들(Jammer-Ossi)’이라는 말과 ‘잘난 척하는 서독 놈(Besser-Wessi)’이라는 말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 깊이 뿌리내렸다.
 
그러나 전체 국가경제를 민영화하는 것과 같은 거대한 과제를 진행함에 있어서 위와 같은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사회주의 붕괴 이후 소련에서 신흥 부호들이 생겨나고 이들이 마피아와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있었던 상황을 감안하면 구동독 지역에서의 통일 이후 전개 현황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당시 동서독 대다수의 사람들이 실제로 구동독 지역 재건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재건 작업은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매우 잘 진행된 편이었다.
 
한반도에서 유사한 상황이 도래하는 경우에는, 북한 주민들의 이해관계를 물질적 측면에서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상징적 측면 또한 감안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의사결정 직위를 모두 남한 사람들로 교체하는 것은, 남측 인사들이 북측의 옛 간부들과 비교했을 때 과제수행능력에 있어서 더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니다. 추후 남북한 간의 협력 시 어려움을 줄이기 위해 탈북자들과 같이 북한 내부 사정을 아는 사람들을 지금부터 체계적으로 교육시키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번역: 김영수 한스 자이델 재단 사무국장
 
베른하르트 젤리거 한스 자이델 재단 한국 사무소 대표
독일 킬대학 경제학 석·박사, 파리1대학 경제학 석사, 1998~2002년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학대학원 전임강사, 2004~2006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겸임교수, 2007년부터 독일 비텐-헤르데케대학 객원교수. 2002년부터 한스 자이델 재단 한국 사무소 대표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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