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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벼락부자, 벼락거지

중앙일보 2021.02.05 00:14 종합 29면 지면보기
김현예 내셔널팀 기자

김현예 내셔널팀 기자

헬리콥터 한 대가 경북 산골 마을 위를 날았다. 헬기에서 내린 인물은 지금으로 치면 과학기술부 장관. 구경 나온 사람들로 축젯날처럼 인파가 들끓었다. 장관 일행이 향한 곳은 영양군 화천 2리. 자연 동(銅) 광산 발견 소식에 헬기를 띄웠다. 버선발로 나선 군수가 장관 앞에서 장황한 브리핑을 늘어놨다. 난데없는 동광산 발견에 농심도 흔들렸다. 며칠 만에 땅값이 열 배가 뛰었다. 벼락부자 꿈에 부푼 농부는 군청을 찾아 지적도를 확인했다. 1969년 1월, 신문을 장식한 이야기다.
 
지난달 8일 아마존에 사표를 낸 직장인 제이슨 드볼트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 한 줄을 남겼다. “39세에 은퇴한다.” 2013년 미국 전기차 회사인 테슬라 주식을 사들인 뒤 이날 주가가 역대 최고가를 찍자 사표와 함께 자신의 트위터에 우리 돈 약 131억원에 달하는 ‘인증샷’을 남겼다. 테슬라 투자로 부자가 된 사람인 ‘테슬라네어(teslanaire)’에 합류하며 조기 은퇴를 꿈꾸는 ‘파이어족’이 됐다.
 
‘벼락부자’는 시대와 세대·성별을 뛰어넘은 만국 만인 공통의 꿈이다. 지금도 자고 일어나니 돈방석에 올라앉았다는 벼락부자의 탄생은 진행형이다.
 
억세게 운 좋은 사람의 이야기라 치부하기엔 ‘벼락 거지’가 된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너무 크다. 지난해 12월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전년 동기보다 21.3% 오른 10억 4299만원(KB국민은행)이다. 서울 중위소득 가구가 집을 사려면 15년 6개월간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한다. 지난해 코스피는 30.8% 올랐다.
 
성실하게 일하며 저축하고 내 집 마련을 꿈꿔온 이들의 희망은 치솟는 집값과 주가 앞에 무너졌다. 그 대열에서 낙오될까 ‘영혼까지 끌어모아’ 빚을 내 주택을 사들이고, ‘빚투(빚내서 투자)’에 나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30대 이하 국민의 평균 부채 보유액은 7020만원으로, 2017년보다 약 1200만원이나 늘었다.
 
정부가 4일 전국에 83만호에 달하는 집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최대 규모로 연간 공급량의 2배다. 지난 4년간 집값 상승은 공급 부족 때문이 아니라고 손사래 치던 일이 무색한 수치다. 이번엔 제발 벼락거지 탈출을 꿈꾸는 서민들에게 희망 고문이 안 되길 바란다. 
 
김현예 내셔널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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