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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삼권분립 훼손하고 국민 속인 대법원장 사퇴해야

중앙일보 2021.02.05 00:07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명수 대법원장이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뉴시스]

김명수 대법원장이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뉴시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이뤄진 법관 탄핵소추와 관련해 어제 공개된 김명수 대법원장의 음성은 귀를 의심케 한다. 지난해 5월 사표를 받아달라고 찾아간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에게 김 대법원장이 “정치적 상황을 살펴야…”라고 말한 것은 사법부의 독립성을 스스로 부정한 행위다. 대법원장이 여당 눈치를 보며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를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고 말하는 나라는 삼권분립이 존중되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대법원장의 자질이 전혀 없다는 걸 스스로의 말로 입증한 것”이라는 원로 헌법학자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의 진단에 우리 사법부의 부끄러운 실상이 응축돼 있다.
 

낱낱이 드러난 김명수 탄핵 발언
사법부 독립보다 여권 반응 의식
몰래 녹음한 임 판사 처신도 충격

김 대법원장이 국민과 국회를 상대로 내놓은 거짓 답변은 더 심각하다. 김 대법원장은 임 부장판사의 ‘탄핵 발언’ 폭로가 나온 직후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자신의 육성이 공개되자 “9개월 전의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해 다르게 답변한 것에 대해 송구하다”고 말을 바꿨다. 그러나 발언 내용을 보면 기억이 안 났다는 해명은 설득력이 없다. 언론을 통해 공개된 녹취록에서 김 대법원장은 ‘탄핵’이라는 단어를 최소 여섯 번 언급했다. ‘정치’ ‘국회’ 같은 어휘까지 합하면 10번 이상이다. 지나가는 말로 던진 얘기가 아니라 임 부장판사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는 이유를 체계적으로 설명했다. 불과 9개월 전 일어난 이례적 사건을 완전히 다르게 기억할 리 없다.
 
범여권이 발의한 지 사흘 만에 통과시킨 임 부장판사의 탄핵안은 여러 측면에서 의구심을 샀다. 탄핵 이유인 ‘세월호 7시간 의혹’ 관련 일본 산케이신문 기자 재판에 관여한 의혹은 비록 1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비난 받을 행위다. 만약 탄핵을 추진한다면 무죄 판결 이후라도 면밀하게 절차를 밟았어야 옳다. 삼권분립 역사에 변곡점이 되는 만큼 국회에서 치열한 논의를 거쳐 결과를 도출할 사안이다.
 
하지만 이번 탄핵안은 임 부장판사의 자진 사퇴를 앞두고 급작스럽게 추진됐다. 의원 발의 방침이 나오자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 등 161명이 순식간에 서명했고 국회 본회의까지 일사천리로 통과했다. 사법부 독립성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졸속이라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최근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무효화 결정과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유죄 판결 등 정권의 심기를 건드리는 판단을 내놓은 법원을 길들이려는 취지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김 대법원장이 지난 5월부터 탄핵을 머릿속에 담아온 사실까지 폭로되자 정치권과 교감을 해온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탄핵을 주도한 이탄희·이수진 의원은 김 대법원장이 만든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이었다. 김 대법원장의 탄핵 발언 파장은 쉽게 잦아들기 어렵다. 당장 시민단체에서 김 대법원장을 직무유기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한편으로는 임 부장판사가 대법원장과 대화한 내용을 몰래 녹음해 갖고 있다가 9개월 만에 세상에 폭로한 행위도 충격이다. 법관 선후배 간에 신뢰가 얼마나 떨어졌길래 임 부장판사가 이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는 상식에서 크게 어긋나는 것이다. 수뇌부의 거짓말로 추락한 사법부 위상을 더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식에서 “국민에게서 진심으로 사랑받고 신뢰받는 사법부를 반드시 만들어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사법부의 역사를 물려주자”고 했다. 그러나 녹취록 공개로 사법부 사상 가장 민망한 기록을 남기게 됐다. 김 대법원장의 자진 사퇴만이 더 이상의 추락을 막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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