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오끼 - 전북 전주

700여 채 한옥 지붕이 고요히 파도를 이루는 한옥마을. 전주 관광의 일번지다. 한옥마을은 물론 인근 남부시장 안쪽으로 순대국밥·콩나물국밥 등 다양한 먹거리가 있다. 유행이 빠르게 바뀌는 한옥마을에서는 요즘 디저트 가게가 많이 보인다.
값싸고도 든든한 콩나물국밥
선지·찹쌀·채소 듬뿍 피순대
삐뚤빼뚤 정감 가는 초코파이
44년 내공 전국구 칼국수 맛집도
전주는 역시 비빔밥이다. 전주비빔밥은 세계로 뻗어 나간 원조 ‘K 푸드’다. 그때 그 시절, 월드 스타에게 “두 유 노 김치?”라 물으면 으레 “비빔밥을 먹어 봤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내한한 마이클 잭슨이 전주비빔밥에 매료돼 재료 구입처와 조리법까지 알아 갔다는 일화는 워낙 유명하다.
경남 진주에도 비빔밥이 있다. 육회를 중심으로 고사리·무나물·숙주나물 등 일곱 가지 재료만 올리는 진주비빔밥과 달리 전주비빔밥에는 대략 15가지 이상의 재료가 올라간다. 양이 푸짐하고 모양새도 화려하다. 차림이 옹색하면 전주비빔밥이 아니다. 숟가락 대신 젓가락을 써야 겨우 비빌 수 있다.

화려하고 푸짐해야 전주비빔밥이다. ‘갑기회관’의 비빔밥에는 육회·황포묵·콩나물·대추·은행·표고버섯·밤 등 15가지 재료가 들어간다.
놋그릇에 오방색 화려한 꽃이 피었다. 샛노란 황포묵을 비롯해 콩나물·대추·밤·은행·잣·표고버섯·당근 등 15가지 재료를 넣은 전주비빔밥(1만5000원)이 상 위에 차려졌다. 맛과 향, 빛깔 모든 게 넉넉했다.
걸쭉하게, 개운하게
긴 세월 우리는 콩나물국밥으로 속을 달랬다. 콩나물국밥은 값싸고 든든한 한 끼 식사이자, 숙취 해소용으로도 효험이 막강한 음식이다.

‘왱이집’의 콩나물국밥에는 삶은 오징어와 김치가 들어간다. 얼큰하고 개운하다.
‘왱이집’의 문을 두드렸다. “손님이 주무시는 시간에도 육수는 끓고 있습니다”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유대성(60) 사장이 육수를 내기 위해 북어·밴댕이·다시마·표고버섯·대파 등을 가마솥에 붓고 있었다.
국밥과 깍두기 그리고 김과 수란. 콩나물국밥(7000원)의 상차림이다. 일단 수란에 국물을 적당히 붓고, 김을 잘게 부수어 얹은 다음 후루룩 마셨다. 고소한 들기름 냄새가 확 퍼졌다. 뜨끈하게 데운 모주(2000원)까지 한입에 털고 나니 식욕이 확 돌았다. 오징어와 묵은김치를 넣어 끓인 콩나물국밥은 얼큰하고도 시원했다. 지금도 침이 고인다.
넉넉히 취하고 싶을 때
통영에 ‘다찌’, 마산에 ‘통술집’이 있다면, 전주에는 막걸리 골목이 있다. 막걸리를 주문할 때마다 대여섯 가지 안주가 덤으로 깔리는 방식. 그들만의 넉넉한 술 문화다. 전주 삼천동·서신동·경원동이 이름난 막걸리 촌이다. 한때 삼천동 막걸리 골목 안에 마흔 곳이 넘는 막걸리 집이 있었다. 지금도 스무 곳이 줄지어 서 있다.

서신동 ‘옛촌막걸리’의 가족상 차림. 12개 안주가 올라간다.
예전엔 술 단위로 주문을 받았지만, 최근엔 주점 대부분이 ‘커플상’ ‘가족상’ 따위의 세트로 술상을 차린다. 술은 약해도 안주는 푸짐하게 먹고 싶은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생긴 변화다. 불평하는 손님도 있지만, 가게를 탓할 일도 아니다. 술집에 주당보다 미식가가 많은 시대다. 술 문화는 그렇게 달라져 간다.

삼천동 막걸리 골목 ‘용진집’ 선반에 막걸리 주전자가 빼곡하다.
옛 맛 사라진 한옥마을?
이성계가 왜구를 무찌른 뒤 승전고를 울렸다는 언덕 오목대. 이곳에서 한옥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풍남동 일대 700여 채 한옥 지붕이 고요히 파도를 이룬다.
한옥마을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달리 오랜 전통의 먹거리를 찾기 쉽지 않다. 관광객을 상대하는 상점이 워낙 많고, 유행도 빠르게 바뀐다. 전주 사람은 한옥마을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일이 거의 없다. 서울 사람이 명동 가기를 꺼리는 것과 비슷한 심리다.

44년 내력 ‘베테랑’의 칼국수. 들깨를 듬뿍 올린다.

피순대 넣은 순대국밥. 남부시장 대표 먹거리다.
달콤한 추억

‘PNB풍년제과’ 수제 초코파이. 버터크림과 딸기 잼이 들어간다. 녹차·복분자 맛도 있다.
수제 초코파이가 뜬 건 2000년대 이후. 사실 빵집의 오랜 스테디셀러는 이른바 ‘센베(전병)’ 과자다. 일흔을 훌쩍 넘긴 기술자가 빵 공장 한편에서 30년 넘게 센베를 구워오고 있다. 완주산 봉동 생강으로 맛을 낸 ‘생강 센베(8000원)’를 찾는 어르신이 많다.
객사 주변 일명 ‘객리단길’ 일대엔 젊은 디저트와 베이커리가 많다. 이를테면 웨딩 거리의 ‘평화와평화’는 휘낭시에로 유명하다. 바삭한 식감에 달콤 짭짤한 소금휘낭시에(2700원)가 인기 메뉴다. 베이커리 카페 ‘나잇나잇’은 펌킨 파이(6500원). 카페 ‘노트릭’은 파운드 케익(6000원)으로 소문이 났다.
전주=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