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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본능 꽉 채운 류승우 전성기 꿈꾸다

중앙일보 2021.02.05 00:03 경제 6면 지면보기
류승우는 ‘제2의 손흥민’ 별명에 걸맞은 선수로 성장하겠다는 각오다. [사진 제주 유나이티드]

류승우는 ‘제2의 손흥민’ 별명에 걸맞은 선수로 성장하겠다는 각오다. [사진 제주 유나이티드]

2013년 겨울. 프로축구 제주 유나이티드 신인 공격수 류승우(당시 19세)는 독일 분데스리가 명문 바이어 레버쿠젠으로 이적했다. 그는 그해 7월 터키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2골을 터뜨리며 한국을 8강으로 이끌었다. 손흥민처럼 스피드와 골 결정력이 돋보였다. 도르트문트(독일),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등 빅클럽도 러브콜을 보낼 만큼 그 시절 최고 유망주였다. 당시 레버쿠젠에서는 분데스리가 정상급 공격수 손흥민이 뛰고 있었다. 독일 축구계는 “제2의 손흥민”이라며 흥분했다.
 

8년 세월 돌아온 ‘제2의 손흥민’
2013년 큰 기대 속 레버쿠젠 행
부상·임대 반복 후 2017년 귀국
제대 후 제주 핵심 선수로 복귀

류승우는 ‘잊힌 천재’가 됐다. 2013~14시즌을 거의 벤치 신세로 보냈다. 같은 포지션에 손흥민, 그리고 독일 차세대 에이스 율리안 브란트(당시 17세)가 있었다. 2014년 1월 프라이부르크전에 손흥민 대신 교체돼 뛴 7분, 같은 해 4월 함부르크전에 역시 교체돼 손흥민과 함께 뛴 4분이 전부였다.
 
주전 경쟁에서 밀린 류승우의 떠돌이 생활이 시작됐다. 2014~15시즌 브라운슈바이크(독일 2부)에 임대됐다. 새 팀에서 출전 기회는 얻었지만, 부상에 발목 잡혔다. 오른쪽 무릎 부상으로 시즌 절반을 쉬었다. 2015~16시즌 레버쿠젠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반년 만에 다시 빌레펠트(독일 2부)로 임대됐다.
 
류승우는 2016년 리우올림픽 조별리그 첫 경기 피지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그렇다고 바뀐 건 없었다. 유럽 분위기는 여전히 냉랭했다. 2016~17시즌 헝가리 리그 페렌츠바로시(1부)로 임대됐다. 또 리그 절반을 뛰고는 어깨 부상으로 시즌 아웃됐다.
 
레버쿠젠 시절 한국에서 열린 유소년 클리닉에 함께 참가한 손흥민(왼쪽)과 류승우. [사진 제주 유나이티드]

레버쿠젠 시절 한국에서 열린 유소년 클리닉에 함께 참가한 손흥민(왼쪽)과 류승우. [사진 제주 유나이티드]

 
잊히는 듯했던 류승우는 2017년 7월 친정인 제주로 돌아왔다. 반전이 시작됐다. 우선 플레이 스타일을 바꿨다. 최전방에서 득점을 노렸던 유럽 시절과 달리, 한 단계 처져 패스에 집중했다.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그는 “유럽에서는 골을 넣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돌이켜보니 축구는 마무리인 골을 넣는 선수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사람도 필요하더라. 내가 그 사람이 되어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혹독하게 노력했다. K리그 복귀 시즌, 팀 훈련이 끝난 뒤 텅 빈 그라운드에 혼자 남아 킥 훈련을 했다. 몇 시간이 걸려도 만족스러울 때까지 했다. 운동장에 나가지 않을 땐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 안드레스 이니에스타(고베) 등의 패스 영상을 팠다. 그렇게 부족한 실전 감각을 보완했다.
 
사실 K리그 선수 중 외국 선수 플레이 영상을 보는 경우가 흔치 않다. 당장 상대할 팀 분석만 해도 시간이 부족해서다. 류승우는 “레버쿠젠에서 경쟁하던 브란트는 독일 대표팀에서 10번을 달고 뛴다. 그와 출발선이 같았지만, 나는 늦게 출발했다. (따라잡으려면) 24시간을 다 투자해도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류승우는 지난해 12월 박현아 씨와 결혼했다. 더 열심히 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사진 제주 유나이티드]

류승우는 지난해 12월 박현아 씨와 결혼했다. 더 열심히 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사진 제주 유나이티드]

류승우는 화려함 대신 효율성이 돋보이는 선수로 바뀌었다. 2018시즌 제주 선수 중 키패스 1위(출전시간 대비)였다. 48분마다 1개씩 성공했다. 당시 제주 사령탑 조성환 감독은 “현대 축구는 공격수에게 득점 외에도 많은 걸 요구한다. 최전방에서 수비수 역할도 해야 하고, 동료에게 공간도 만들어줘야 하며, 2선 연계 능력까지 갖춰야 한다. 그런 점에서 류승우는 가치가 높다”고 평가했다. 그는 “유럽에서 생존 본능 하나는 확실하게 깨웠다”고 말했다.
 
2년간 군(상무)에 다녀온 류승우는 제주에서 새 시즌을 맞는다. 이제 나이도 27살이다. 그는 활동량이라는 신무기를 장착했다. 지난 시즌 직후 훈련과 수면 시간 외에는 웨이트 트레이닝장에서 살았다. 휴식일에도 혼자 러닝머신 위를 달렸다. 지난달 31일 연습경기에서 팀 내 가장 많은 11㎞를 뛰었다. 남기일 감독은 “소년 같았는데 건장해졌다. 지치는 법이 없다. 올 시즌 우승 도전에 있어 꼭 필요한 선수가 될 것”이라고 칭찬했다.  
 
류승우는 “최근 흥민 형과 통화했는데 격려해줬다. ‘제2의 손흥민’이라는 타이틀이 부끄럽지 않은 선수가 되겠다. 잘 뛰고, (패스) 잘 주고, 잘 넣는 게 목표다. 올해는 전성기라는 걸 경험하겠다”고 다짐했다. 
 
서귀포=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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