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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기사 예약하고 저녁 먹는다…광화문~용인 6만원 시대

중앙일보 2021.02.04 15:55
대기업 임원인 박모(54) 씨는 최근 곤혹스러운 경험을 했다. 서울 광화문에서 저녁을 먹은 뒤 오후 9시쯤 대리기사를 불렀지만 한 시간 넘게 차 안에서 기다려야 했다. 박씨는 4일 "오후 9시에 저녁 자리를 끝내고 동시에 대리기사를 찾다 보니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며 "그래서 이후부터는 아예 오후 5시쯤 대리기사를 예약하고 저녁 자리도 8시 반쯤 일찍 끝낸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5인 이상 집합 금지·오후 9시 이후 매장 내 식사 금지’가 일상이 되면서 저녁 시간을 소비하는 방식도 크게 바뀌고 있다. 코로나19로 자영업자의 매출 감소는 고질병이 됐고, 일반 소비자의 행동 방식도 완전히 달라졌다.
 

오후 6시에 대리 예약 안 하면 '낭패'  

지난해 11월 서울역 인근 도로에서 승객을 기다리는 택시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서울역 인근 도로에서 승객을 기다리는 택시들. [연합뉴스]

 
박 씨처럼 저녁 약속이 있을 때 대리기사 등을 예약해 두는 건 기본이 됐다. 예약하지 않고 있다간 곤혹스러운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 카카오 T 대리 운영사인 카카오모빌리티에 따르면 최근 2주(1월 18일~31일) 동안 전체 대리운전 호출의 75.5%가 저녁 시간대(오후 6시~오후 10시)에 집중됐다. 지난해 11월에는 이 시간대 호출 비중이 31.7%였다. 당시엔  오후 10시 이후~오전 2시 사이 호출량이 전체의 53.6%를 차지했다. 카카오모빌리티 측은 “카카오대리의 수요가 가장 많은 오후 10시~오전 2시 사이 이용률은 감소하고, 오후 6시~오후 10시 사이의 이동량이 매우 많이 증가했다"며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격상 이후 귀가 시간도 그만큼 빨라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카카오 T 대리 시간대별 호출 비중 증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카카오 T 대리 시간대별 호출 비중 증감.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대리기사 호출 시간이 빨라지면서 비용도 올랐다. 지난 연말만해도 서울 광화문에서 경기 용인 수지까지 3만5000원쯤하던 대리기사 비용이 최근 오후 9시를 전후해서는 6만원까지 치솟기도 한다. 대리운전 업계 관계자는 “콜이 안 잡히는 데 가격을 올리시겠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경우 어쩔 수 없이 응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광화문~수지 요금이 6만원 대로 굳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렇다고 대리기사가 많이 버는 건 아니다"며 "호출이 줄어 잘해야 하루 한 번 받다 보니 이왕이면 아예 멀리 가거나 가까운 거리를 두 번 이용하는 걸 선호한다"고 전했다.  
 

택시 기사 완전월급제도 미뤄질 판

방역 지침상 오후 9시까지 일반 음식점서 식사할 수 있지만 오후 8시를 즈음해 일찌감치 저녁 자리를 접는 분위기도 확산하고 있다. 오후 9시에 맞춰서 나오면 택시를 타기도 어렵고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도 붐비기 때문이다. 택시업계도 이같은 상황에 울상을 짓고 있다. 22년차 택시기사인 김영환 씨는 ”9시에 딱 한 팀 태우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정말 손님이 없다“며 ”오후 8시 30분쯤부터 한 시간가량만 제대로 영업할 수 있다 보니 높은 요금을 받을 수 있는 장거리 손님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택시업계의 매출이 줄면서 택시 기사의 완전월급제 시행도 미뤄지고 있다. 법인택시 기사의 완전월급제는 올해 서울시부터 도입한다는 게 정부나 지자체의 계획이었다. 완전월급제는 주 40시간 이상 일한 택시기사들의 최소 수입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택시회사들의 기초 체력이 약해지면서 를 시행하기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국토교통부는 서울시에 완전월급제 이행을 요구하고 있지만 택시회사 형편이나 시 재정을 고려하면 당장 시행하기가 쉽지 않다"며 "그렇다고 완전월급제를 언제부터 하겠다고 말하기도 어려워 답답하다"고 말했다.  
 
집합 인원이 ‘4명 이하’로 묶이면서 직장인 사이에서는 모임 자체를 세대ㆍ직급별로 따로 하는 분위기도 널리 퍼지고 있다. 기업의 부서 회식은 급격히 줄었고 외부업체와의 업무적인 만남도 직접 실무자들만 참석하는 게 관행이 돼가고 있다. 문성준 SK그룹 부장은 "집합금지 조치로 세대ㆍ직급 간 소통이 사실상 단절되고 있어 고민스럽다"며 "사실 술자리 등을 통해서 젊은 세대와 윗세대가 지식이나 네트워크를 공유하곤 했는데 요즘엔 그런 기회가 자체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밤새 즐길 수 있는 호텔방 패키지 인기  

사진 안다즈 서울 강남

사진 안다즈 서울 강남

 
호텔업계는 이런 변화에 맞춰 새로운 상품을 내놓고 있다. 하얏트 계열의 호텔인 안다즈 서울 강남은 지난해 말 친구나 지인 등이 스위트 룸에 머물면서 술과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레이디스 & 가이즈 나이트 아웃 패키지'로 인기를 끌었다. 패키지에는 보드카를 비롯한 주류와 숙취해소제 등이 담긴 주류 바스켓과 다음날 오전 해장용 라면 등이 포함돼 있다. 오후 9시 넘어까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호텔 방에서 주류를 즐기고 이튿날 아침엔 해장용 라면까지 즐길 수 있는 상품이다. 코로나19로 호텔 투숙객이 급감한 상황이지만 이 패키지는 다음 달 말까지 예약이 거의 다 찼다.   
 
이수기ㆍ추인영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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