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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과학기술 강국 넘어 과학문화 강국

중앙일보 2021.02.04 00:04 경제 4면 지면보기
조율래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조율래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한정된 사회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은 정치의 핵심 영역이다. 정치란 다양한 집단·계층·세대 간 이해를 조정하고 합의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다. 정치를 조율의 예술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가장 직접적인 것은 정부와 국회에서 분야별로 재원을 할당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다. 나라 예산안을 편성하고 심의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문제는 한정된 국가재정에서 미래를 대비한 투자의 비중이 줄어들기 쉽다는 것이다.  
 
고령화와 고용 불안 사회로 급속히 옮아가면 복지·고용·환경·건강 등 기본적인 고정 지출의 비중이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급하지 않은 과학기술과 인재 양성 등 미래 대비 투자가 소홀해질 수 있는 이유다.
 
지금까지 한국은 과학기술 투자에 대한 국민적 정서가 관대한 편이었다. 아마 학문과 지적 탐구를 존중하는 전통적 문화에 기인한 측면도 있는 듯하다. 역설적인 것은 과학기술에 대한 우리 국민적 관심과 이해 수준은 미국의 약 78% 수준으로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는 사실이다. (2020년 과학기술 국민 인식도 조사, 한국과학창의재단)
 
앞으로도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것인가. 우주 개발, 심해저 탐사, 입자가속기 건설 등 거대 과학과 기초 과학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게 되면, 왜 이런 분야에 투자하는지, 어떤 효용이 있는지에 대한 물음은 당연히 따라올 수밖에 없다.  
 
이런 질문과 답변이 제대로 된 공론화 장으로 이어지려면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정치권은 물론 일반 국민도 과학기술에 대한 기본적 지식과 이해가 있어야 한다. 특정 사안에 대해 최소한의 지식과 인식의 공유 기반이 없으면 합리적 토론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유럽은 르네상스 시대와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주류사회의 기본 소양이 됐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과학기술의 잠재력을 확인하고, 이후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과학기술 혁신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지지 기반이 확고해졌다.
 
과학기술이 사회·문화와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 이해와 대중화를 거치면서 과학문화는 형성된다. 과학문화란 과학기술 친화적인 사회 환경으로, 국가 연구·개발(R&D) 투자의 규모와 방향에 대해 국민적 합의의 형성이 가능해지는 사회이다. 우리 사회가 단기간에 이루어낸 세계적 과학기술 강국의 명성에 걸맞은 과학문화 강국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조율래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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