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통령은 탈원전, 공무원은 북 원전 건설 궁리…말이 되나”

중앙일보 2021.02.03 00:02 종합 8면 지면보기
이중재 전 한수원 사장

이중재 전 한수원 사장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의 아이디어 차원이었다면 왜 문건을 지웠는지, 대통령은 탈원전을 강조하는데 공무원들은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려고 궁리했다는 건지 도무지 설명되는 게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이중재 전 한수원 사장
대북경수로 사업 참여한 전문가
“산업부 문건 자세하고 구체적
단순 아이디어란 해명 납득 안 돼”

이중재(75·사진)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2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산업통상자원부의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 문건과 이를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고서다.  
 
2004~2007년 한수원 사장을 역임했던 그는 어지간한 원자력발전 관련 직책을 모두 거친 원자력 전문가다. 1999년과 2000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업처장과 원자력건설처장을 지내면서 대북 경수로 건설 사업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지금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면서 2017년 창립된 원자력정책연대의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관련기사

 
이 전 사장은 “단순히 아이디어 정리 차원의 문건이었다”는 산자부 해명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 전 사장은 “산업부 문건 내용을 살펴보니 비교적 자세하고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대한 식견을 가진 공무원이 작성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문건은 원전 건설 시나리오로 함경남도 신포의 옛 KEDO 부지(1안) 또는 비무장지대(DMZ·2안)에 건설하는 방안과 신한울 3·4호기 건설 후 북한 송전 방안(3안)을 제시하고 이 중 1안이 설득력이 있다고 적었다. 한국과 미국·일본·유럽연합(EU)은 1994년 미·북 제네바 협의에 따라 신포에 핵 포기 대가로 경수로 2기를 지어주기로 했다. 하지만 2002년 10월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개발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업은 중단됐다. 사업에 투입된 1조3744억원은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이 전 사장은 이와 관련해 “원전은 암반 등을 갖춘 곳에 지어야 하므로 부지 선정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며 “신포는 러시아가 원전을 짓기 위해 부지 검토를 끝낸 곳이어서 비교적 쉽게 추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당시 시설은 이미 폐허가 됐을 것”이라며 “원전 건설 비용도 20년 전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고 덧붙였다.  
 
2안에 대해서는 “당시에도 일부 전문가가 개인적으로 DMZ 건설 방안을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고, 3안에 대해서는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송전선로가 DMZ를 통과해야 하는 등 난관이 많고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내용들은 결코 허무맹랑한 게 아니다. 산업부 간부가 상당한 노력을 해서 (문건을) 만든 것 같다”고 추정했다.
 
문건이 은밀히 작성된 이유에 대해서는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 왔기 때문에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는 문제를 공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탈원전하면서 북한에 원전을 지어준다는 게 말이 안 되기 때문에 공론화도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1999년에도 북한을 간신히 설득해 경수로 건설사업을 성사시켰지만, 북한이 핵 동결 약속을 지키지 않아 결국 무산됐다”며 “대북 경수로 건설사업은 물론이고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사업 등 북한과 일해서 성사된 게 하나라도 있느냐”고 지적했다. 이 전 사장은 “탈원전 정책으로 국내 원전 관련 산업이 죽어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원전 산업이 망가졌기 때문에 북한에 원전을 건설해 주려 해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전=김방현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