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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감시원 체력시험 중 쓰러졌다, 치킨집 사장 사망 미스터리

중앙일보 2021.02.02 14:00
지난달 15일 광주 북구 문화동 각화저수지에서 치러진 산불예방 진화대·감시원 선발 실기시험에서 지원자들이 등짐펌프를 메고 체력 테스트를 받고 있다. 본 기사와는 관련 없음. 연합뉴스

지난달 15일 광주 북구 문화동 각화저수지에서 치러진 산불예방 진화대·감시원 선발 실기시험에서 지원자들이 등짐펌프를 메고 체력 테스트를 받고 있다. 본 기사와는 관련 없음. 연합뉴스

15㎏ 등짐펌프 메고 가다 갑자기 쓰러져

"농사 지어 가면서 각시는 통닭집을 하고, 그 사람은 산불 감시하다 퇴근해서도 치킨 배달을 나갔어요."

[이슈추적]
전북 장수서 60대 산불감시원 지원자 사망

 
 최근 산불감시원 채용에 지원한 치킨집 사장 A씨(64)가 체력검정 시험 도중 숨지면서 전북 장수군이 뒤숭숭하다. A씨와 가깝게 지냈다는 한 주민은 지난 1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몸이 안 좋으면 산불 감시를 했겠느냐"며 "A씨는 사고 나기 전까지 아픈 데가 없었다"고 했다. 체력검정 시험이 A씨 죽음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 집(치킨집)뿐만이 아니지만, 지난해부터 코로나19 때문에 장사가 안 됐다"며 "겨우 64세인데 얼마나 억울하냐"고 말했다.
 

산림청, 지난해 체력 검정 기준 강화 

 사건은 지난달 29일 오후 2시20분쯤 장수군 장수읍에서 벌어졌다. 당시 한 체육관에서 치러진 산불감시원 채용 체력검정 시험 도중 A씨가 갑자기 쓰러졌다. 15㎏짜리 등짐펌프를 메고 1200m를 13분 안에 완주하는 시험을 보다 600m 지점에서 의식을 잃었다. 체육관 밖에서 대기하던 의료진이 심폐소생술을 하며 A씨를 병원으로 옮겼지만 숨졌다.
 
 앞서 장수군은 이달부터 6월까지 5개월간 활동하는 산불감시원 채용 공고를 냈다.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하는 일당 6만9800원(월 약 200만원)의 기간제 근로자 모집에 A씨를 포함해 69명이 지원했다. 장수군은 당초 44명을 선발할 계획이었다.
 
 산불감시원은 마을 곳곳에 설치된 초소에서 산불을 감시하는 일을 한다. 이상 징후가 있으면 무전으로 지자체와 소방당국에 산불 발생을 알리고 산불진화대와 119소방대가 도착하기 전에 초기 진화 등을 맡는다.  
 
지난달 15일 광주 북구 문화동 각화저수지에서 치러진 산불예방 진화대·감시원 선발 실기시험에서 지원자들이 등짐펌프를 메고 체력 테스트를 받고 있다. 본 기사와는 관련 없음. 연합뉴스

지난달 15일 광주 북구 문화동 각화저수지에서 치러진 산불예방 진화대·감시원 선발 실기시험에서 지원자들이 등짐펌프를 메고 체력 테스트를 받고 있다. 본 기사와는 관련 없음.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창원·군위서 2명 사망 

 A씨는 10년 넘게 산불감시원으로 활동했지만, 체력검정을 받기는 올해가 처음이었다. 장수군 측은 "지난해까지는 서류 심사와 면접만 거쳤다"며 "체력검정은 지난해 산림청에서 내려온 새 기준표에 따라 올해 처음 실시했다"고 밝혔다.
 
 장수군 관계자는 "고인의 죽음은 안타깝고 유족에게는 죄송스럽지만, 체력검정 과정과 응급조치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1200m를 13분 안에 완주하는 것은 1분에 92m, 1초에 1.5m를 이동하는 수준"이라며 "성인이 달리지 않고 잰걸음으로 걸어도 제한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라고 보고 기준을 정했다"고 했다.
 
 앞서 산림청은 지난해 5월 산불감시원 선발 때 등짐펌프(15㎏)를 착용하고 2㎞ 도착 시각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체력검정 기준을 강화했다. 이후 전국에서 체력검정 시험을 받던 지원자 2명이 잇달아 숨졌다.
 

44명 모집, 69명 지원…일당 6만9800원 

 
 지난해 10월 27일 경북 군위군 산길에서 산불감시원에 지원한 50대 남성이 등짐펌프를 지고 1.3㎞ 체력검정을 마친 뒤 호흡 곤란 증상을 보이다가 숨졌다. 같은 달 22일 경남 창원에서도 70대 남성이 산불감시원 체력 시험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산림청은 곤혹스러운 분위기다. 산림청 관계자는 "지난해 5월 산림청 훈령 중 산불감시원 운영 규정을 개정하면서 체력검정 등 선발 기준을 강화한 건 맞지만, 선발 방법과 자격 요건 등 세부 기준은 지자체장이 별도로 정하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체력검정 30점, 직무 수행 능력 50점, 감시 수단 활용 능력 20점 등 직무 수행 능력 평가표가 있지만, 몇 ㎏짜리 등짐펌프를 메고 몇 ㎞를, 얼마 만에 완주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은 없다"는 취지다.
 
 그는 "체력검정이 필수는 아니고, 지역 특성과 지원자 연령대를 고려해 지자체장이 체력검정 기준을 조정하거나 면접을 통해 갈음할 수 있다"며 "현장 의견을 모아 인명 사고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규정을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경찰 "고혈압·당뇨 앓아…내사종결 방침" 

 경찰은 A씨의 죽음을 내인사(內因死)로 보고 있다. 내인사는 내적 원인에 의해 발생한 죽음을 말한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평소 고혈압과 당뇨 등을 앓았다고 한다. 경찰은 지병이 있던 A씨가 체력검정 과정에서 무리하게 힘을 쓰다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장수군이 체력검정 전에 준비 체조를 시킨 점 ▶체육관 밖에 구급차와 의료진을 대기시킨 점 ▶A씨가 쓰러진 뒤 신속히 응급조치를 한 점 등을 토대로 장수군 책임은 없다고 봤다. 장수경찰서 관계자는 "유족 측이 부검을 원치 않아 장례를 치른 상황"이라며 "통상적인 변사사건 처리 절차에 따라 내사 종결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장수=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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