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우성 경희대 명예교수
자기변화는 세상 바꿀 지름길
문 대통령은 반대파도 섬기고
국민은 ‘너 속에 나’ 지혜 얻길
자기변화를 잘 보여주는 시 한편이 있다. 베트남 스님 틱낫한이 지은 “부디 진정한 이름으로 나를 불러주오”라는 시다. 뒷부분만 적어본다.
나는 작은 배로 조국을 떠나/ 피난길에 올랐다가 해적한테 겁탈당하고
푸른 바다에 몸을 던진/ 열두 살 소녀다.//
그리고 나는 바로 그 해적이다./ 볼 줄도 모르고 사랑할 줄도 모르는
굳어진 가슴의 해적이다.// [. . . . . ]
부디 진정한 이름으로 나를 불러주오./ 그러면 잠에서 깨어나
내 마음의 문을, 자비의 문을/ 활짝 열게 될 것이오.//
시인은 1978년 파리에서 베트남 평화대표단으로 활동하던 어느 날 끔찍한 뉴스를 들었다. 해적들이 보트에 올라 어린 소녀를 겁탈했고, 소녀는 스스로 푸른 바다에 몸을 던졌다는 뉴스였다. 40년이 흐른 뒤에도 이렇게 적고 있다. 그날 밤 슬픔, 자비심, 연민 때문에 잠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수행자로서 분노와 무력감에 빠질 수 없어서, 걷기명상과 마음챙김 호흡을 하면서 상황을 이해하려고 했다.
틱낫한은 명상을 통해 태국의 가난한 소년과 하나가 되고, 그 소년과 비슷한 환경 속에서 태어나는 수백 명의 아이들 모습을 떠올렸다. 그들을 돕지 않는다면 이들은 자라서 해적이 될 것임을 알았다. 그러자 분노는 사라지고, 마음은 자비와 용서의 에너지로 가득 찼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 소녀만이 아니라 그 해적까지도 품에 안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 안에서 내 자신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공(空)과 공존(interbeing)을 숙고한 열매입니다.” 그는 공과 공존의 명상으로 자비의 문을 열고 소년과 소녀를 모두 포옹할 수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나 최측근 인사들이 이 시를 읽으면 좋겠다. 대통령 취임사에 아름다운 약속이 나와서다.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분 한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이 말은 반대하는 국민도 ‘우리의 국민’으로 섬겨 국민통합을 이루겠다는 약속, 자기변화와 자기확장의 약속이다. 이 약속은 정녕 허공으로 사라졌는가?
반대파 국민들은 세상을 바꾸려고 광장으로 몰려갈 수 있다. 한국인의 몸에는 이제 자유와 민주를 억압하는 전제(專制)정치라면, 그것이 군부독재든 유사 일당독재든 참지 못하는 성향이 생긴 것 같다. 광화문 집회와 함성이 세상을 뒤집는 것도 보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만이 차곡차곡 쌓여 인내의 끝에 도달하면, 수십만 명이 광장으로 나가 문 대통령의 퇴진을 외칠지도 모른다. 피차 두려운 일이다.
나라는 이렇게 극단적인 분열로 사느냐 죽느냐 하는 엄중한 상황에 놓여있다. 하지만 우리는 문 대통령이 전지전능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런 지도자는 이 지상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많이 늦었지만 너무 늦지 않았다. 부디 저 아름다운 약속을 소환해서 반대파도 섬겨라. 그들과 협치하여 공존·상생하는 길을 찾기를 바란다. 그런 길이 보이자마자 국민들은 편안해지고, 대통령은 선한 힘이 생겨 권력 상실에 대한 불안이나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다.
대통령이 국민 모두를 섬기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면, 열렬지지자와 반대파는 서로에게 아픈 조롱과 혐오, 분노를 퍼붓는 대신, ‘너 속에 나’라는 공존과 사랑의 지혜를 터득할 것이다.
베트남 전쟁과 그 이후, 그리고 한국정치에서만이 아니라 신문·방송과 소셜미디어, 직장과 가정에서도 ‘나’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은 수시로 만난다. 그 사람을 떠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부디 진정한 이름으로 나를 불러주오’라고 속삭여 보자. 이 시구를 부적으로 삼아 분열의 시대를 건너가자.
허우성 경희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