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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와 팬을 꽁꽁 묶어라, K팝 팬덤 플랫폼 ‘쩐의 전쟁’

중앙일보 2021.02.02 00:03 종합 20면 지면보기
K팝 팬덤 플랫폼을 둘러싼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달 27일 각각 브이라이브와 위버스를 운영해온 네이버와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손잡고 ‘위버스컴퍼니’를 만들겠다고 발표한데 이어 28일에는 NC소프트가 만든 신규 플랫폼 ‘유니버스’가 134개국에 동시 출시됐다. IT·게임업체 등이 잇따라 엔터 산업에 뛰어들면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의 일정을 공유하던 ‘팬카페’가 기획사의 체계적인 관리로 운영되는 ‘팬클럽’을 넘어 콘텐트가 제작되고 소비되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K팝이 세계 음악 산업의 주류로 떠오르며 생긴 변화다.
 

네이버, 빅히트에 4000억 투자
NC소프트, CJ와 합작법인 예고
IT·게임업체 플랫폼 짝짓기 경쟁
AI로 팬과 일대일 통화 등 서비스

빅히트에서 운영하는 위버스. 아티스트별 영상 등 다양한 콘텐트를 즐길 수 있다. [사진 각 기획사]

빅히트에서 운영하는 위버스. 아티스트별 영상 등 다양한 콘텐트를 즐길 수 있다. [사진 각 기획사]

네이버는 빅히트에 주도권을 넘겨줬다. 빅히트 자회사인 비엔엑스에 4118억원 투자해 지분 49%를 인수하고 비엔엑스는 네이버 브이라이브 사업부를 양수한다는 조건. 2015년 9월 서비스를 시작한 브이라이브는 채널 수만 1397개에 이르고 지난달 이용자 수 1억명을 돌파한 ‘터줏대감’이지만 2019년 6월 출시한 위버스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빅히트의 방탄소년단(BTS)을 필두로 플레디스의 세븐틴, 쏘스뮤직의 여자친구 등 빅히트 레이블즈 소속 외에도 FNC의 피원하모니부터 영국 보이밴드 뉴호프클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내외 아티스트 15팀이 합류하면서 빠르게 기반을 마련했다. 양사는 1년 동안 현재 서비스를 유지하며 통합 플랫폼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메가 IP(지적재산권)로서 방탄소년단이 갖는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브이라이브는 영상 콘텐트 제작에 주력했지만 위버스는 아티스트와 팬들의 직접 소통을 통해 트위터·유튜브 등 기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자리를 채워나갔다. 2018년 유튜브 레드에서 첫 다큐 ‘번 더 스테이지’를 공개한 이후 ‘브링 더 소울’(2019)과 ‘브레이크 더 사일런스’(2020)는 위버스 독점 공개로 중심축을 옮겼다. 2019년 6월 네이버 브이라이브로 생중계된 웸블리 공연은 14만명이 관람해 티켓 매출 46억원을 기록했지만, 이듬해 10월 위버스에서 방영한 온라인 공연은 이틀간 99만명, 491억원에 이른다. IP를 가진 쪽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실탄을 확보한 빅히트와 비엔엑스가 각각 300억, 400억 등 총 700억원을 YG플러스에 투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위버스로서는 또다른 메가 IP인 블랙핑크 등 YG 소속 아티스트를 잡는 것이 시급하고, YG플러스로서는 빅히트의 음반·음원 유통 및 MD 사업을 맡게 돼 실익을 챙겼다. 지난해 1000만장을 판매한 방탄소년단 외에도 더블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세븐틴 등 빅히트 레이블즈 소속 아티스트의 앨범 판매량은 가온차트 톱 100 판매량의 37%를 차지했다. 커머스 플랫폼 위버스샵을 보유한 빅히트로서도 나쁘지 않은 선택. 글로벌 팬들이 K팝 굿즈를 바로 구매하는 플랫폼으로 더 큰 시장을 확보할 수 있어서다.
 
NC소프트에서 출시한 유니버스. AI 기술을 활용해 1:1 대화도 가능하다. [사진 각 기획사]

NC소프트에서 출시한 유니버스. AI 기술을 활용해 1:1 대화도 가능하다. [사진 각 기획사]

반면 NC소프트의 자회사 클렙이 선보인 유니버스는 IT 기술을 전면에 내세운다. 몬스타엑스·우주소녀 등 11개 팀의 영상·화보 등 오리지널 콘텐트를 공개하면서, 인공지능(AI)에 기반한 팬과 스타의 일대일 통화 등 개인화 서비스까지 제공했다. 앨범 구매 등 다양한 팬덤 활동을 인증하고 기록으로 남기면 이에 대해 보상하고, 해당 재화를 응모권으로 교환하면 오프라인 팬미팅 등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달 콘텐트 및 디지털 플랫폼 분야 사업 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한 NC소프트와 CJ ENM은 연내 합작법인 설립을 예고했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이런 협업은 더 가속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국 조지메이슨대 이규탁 교수는 “개별 아티스트와 팬덤의 힘이 세지면서 한동안 음원 유통권을 쥔 통신사에 있던 음악산업의 헤게모니가 다시 기획사로 넘어가고 있다”며 “이를 잃지 않으려 플랫폼 확보에 더 공을 들이게 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플랫폼은 자체적으로 팬덤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웹툰, 웹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콘텐트를 확보하는 동시에 그중에서도 가장 행동력이 뛰어난 K팝 팬덤을 잠재적 소비자로 영입하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상황이 길어진 것도 플랫폼의 중요성을 키웠다. 팬덤 결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꾸준한 콘텐트 공급이 필요해졌다. 지난해 6월 음악 스타트업 스페이스오디티에서 출시한 블립은 아티스트가 아닌 팬을 위한 앱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여러 플랫폼에 분산된 콘텐트를 한데 모아 보여주는 서비스다.  
 
김홍기 대표는 “팬덤 데이터 관측기 ‘케이팝 레이더’를 운영하며 팬의 소비 활동을 쫓다 보니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은행 송금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토스가 나온 것처럼 팬덤 앱 시장이 커지면 보다 다양한 서비스가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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