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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좋소기업’ 조충범을 아시나요?

중앙일보 2021.02.01 01:21 종합 30면 지면보기
권석천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권석천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조충범, 29세 취업준비생이다. 그에게도 드디어 서광이 비치는 걸까. ‘정승 네트워크’에서 전화가 걸려온다. “지금 면접 가능하실까요?” 면접은 사무실 한쪽 소파에서 진행된다. “내가 삼전에 있을 때….” 사장은 제 자랑만 늘어놓다 문득 이력서를 훑어본다. “취미가 노래라고? 한번 들어볼 수 있을까요?”
 

코로나 취업난에 절망한 청년들
세대 전체가 미아 될 수 있는데
한국 정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첫 출근을 하자 과장은 청소도구 사용법부터 가르쳐준다. 환영 회식이 끝난 뒤 선임이 충범에게 충고 한마디를 한다. “빨리 그만둬.” 업무 지시는 꼭 퇴근 무렵에야 내려온다. 정부 사업을 따내기 위해 야근하며 PPT를 만드는데 선임은 “안 될 게 빤하니까 사장님 입맛에만 맞추면 된다”고 한다. 다음 날 늦잠 자다 지각했지만 과장은 “도망간 줄 알았다”며 오히려 고마워한다. 그뿐인가. 사장이 이사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키자 이사가 구시렁거린다. “삼촌은 맨날 나한테만….”
 
유튜브 채널 ‘이과장’이 최근 선보인 웹드라마 ‘좋좋소’ 시리즈다. 직장인들 사이에 ‘미생의 유튜브 버전’으로 불리는 이 드라마, 정말 웃기는데 웃을 수가 없다. 가슴을 더 짠하게 하는 건 회당 수천 개씩 달리는 공감의 댓글이다. ‘온몸에 소름 돋았어. 진짜 똑같아.’ ‘리얼리티 갑이네요.’ ‘가슴을 데인 것처럼….’
 
‘좋소기업’. 열악한 근무 여건에 사장님 마인드까지 후진 일부 기업을 가리킨다(눈치채셨겠지만 좋소의 ‘좋’은 욕설에 들어가는 유사 발음의 단어를 순화한 표현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취업난 속에서 끝없이 눈높이를 낮출 수밖에 없는 청년들의 현실을 말해 준다. 좋소기업에 다녀야 하는 이유도 댓글 속에 있다. ‘좋소의 장점은 사회 초년생들 경력 채워주는 거임.’
 
그렇다. 경력직 채용이 일반화하면서 어디서든, 어떻게든 경력을 쌓아야 한다. 신입사원 채용에도 2~3년 차 경력을 지닌 ‘중고 신인’들이 넘친다. 인턴 경험은 무조건 필수다. 문제는 인턴 되는 게 정규직 되기보다 어렵다는 거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이런 뜻이었을까. 이제 취준생들은 기간을 길게 잡고 중소기업에서 인턴을 시작한다. 중소기업 인턴을 해야 대기업 인턴 지원서에 넣을 스펙이 생기기 때문이다.
 
여기에 코로나19 한파까지 채용시장을 덮쳤다. 기업들의 선발 방식은 ‘대규모 공채’에서 ‘소규모 수시 채용’으로 바뀌고 있다. 기업은 “필요한 인재를 적기에 뽑을 수 있다”고 좋아하지만, 취준생들은 울고 싶다. 전체 채용 규모가 줄어드는 데다 해당 계열사, 해당 직무에 맞는 ‘핀셋 스펙’을 갈고 닦아야 한다. 부모님의 전화번호부는 더욱 빛을 발할 수밖에 없다. “어디 작은 데라도 인턴 할 회사 없을까요?” 능력자 부모님이 없는 사람은 누굴 탓해야 할까.
 
이 중요한 현안이 왜 정치 쟁점에서 빠져 있는 것인가. ‘좋좋소’를 보면서 한 대학교수의 말이 떠올랐다. “요즘 젊은 친구들, 정치·경제 이슈를 잘 모른다고들 하지 않나. 그런데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들 얘기는 뉴스에 안 나오거든. 진영과 진영이 부딪치는 이슈들만 나오고….” ‘이과장’은 ‘피해야 할 중소기업 유형’에서 ▶회사에 있는 개 사료를 직원이 챙기는지 ▶면접에서 “힘든 일 해봤냐”는 질문이 나오는지 ▶직원들이 면접자에게 얼마나 관심을 보이는지 같은 체크 포인트를 콕콕 짚어 준다. ‘이과장’의 눈부신 콘텐트 경쟁력에 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경의를 표한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의 조충범들은 -금수저·은수저들 빼고는- 세대 전체가 미아(迷兒)가 될지 모른다. ‘청년 네 명 중 한 명은 코로나19 이후 극단적 선택의 충동을 느낀 적이 있다’는 조사 결과(경향신문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대통령 집무실 ‘일자리 상황판’엔 청년들의 절망감이 어떻게 수치화돼 있을까. 인턴 되기가 얼마나 힘든지는 통계로 잡혀 있을까. 혹시, 국회의원과 장관님들도 ‘좋좋소’의 사장님이 하신 말씀을 되풀이하고 있진 않을까.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끈기가 없냐?”  
 
권석천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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