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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기의 소통카페] 이제는 행간을 읽으려 애쓰지 말아야

중앙일보 2021.02.01 00:18 종합 27면 지면보기
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 교수

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 교수

그녀가 4번째 줄의 끝부분에 서있는 것이 기삿거리였다. 첫째나 둘째 줄에 있었어도 그랬을 것이다. 사진에서 빠졌더라면 더 난리였을 터이다. 지난달 5일~12일에 열린 북한의 제 8차 노동당대회가 폐막된 후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뉴스에서 네 번째 줄로 밀린 김여정이 화제였다. 막스 레닌주의 체제에서 당은 사회주의 혁명의 사령탑으로 정부기관보다 우위이므로 당대회에서 순서는 공식 서열을 의미한다. 그러니 현존하는 인류 중에서 가장 신격화된 김정은 총비서의 후계자설이 오고 가던 그녀가 당의 핵심기구인 11명의 정치국 위원이 못되고 직책이 제1부부장에서 부부장으로 강등된 것은 사건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게 정말 그렇게 우리에게  중요한가.
 

‘특등 머저리’…북한 비난에도
‘과감한 대화 요구’로 아전인수
비상식적 대응, 국민 불안케 해
정체성 위협엔 적극 대응해야

김여정이 누구인가. 대한민국 대통령의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발언에 대해 “철면피함과 뻔뻔함이 묻어 나오는 궤변”이라면서 “항상 연단 앞에만 나서면 어린애같이 천진하고 희망에 부푼 꿈같은 소리만 토사하고 온갖 잘난 척, 정의로운 척, 원칙적인 척하며 평화의 사도처럼 채신머리 역겹게 하고 돌아간다”고 비난했다. 남한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북의 방사포에 대한 청와대의 우려에 ‘겁먹은 개가 요란’ ‘저능한 사고방식에 경악’한다면서 ‘완벽하게 바보스럽다’고 했다. 말 폭탄으로 그치는 게 아니다. “쓸모없는 북남 공동연락 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예고한 지 3일 만에 대한민국의 재산인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소 건물을 폭파해 남한 동포들의 기대도 무너뜨렸다. 북한은 2019년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통령이 평화경제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히자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고 했다.
 
소통카페 2/1

소통카페 2/1

이번 8차 당대회를 마감하면서 북한은 핵기술의 고도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수중발사탄도미사일(SLBM), 초대형 방사포, 전술핵무기의 완성을 단언하며 ‘어떤 난관에도 불구하고 조선 혁명 전통과 선대 수령(김일성·김정일)의 유훈을 계승하여 조국통일과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을 관철하겠다’고 천명했다. 변함없이 남조선을 사회주의 혁명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행동을 다짐하고 있다.
 
지속되는 북한의 공격에 어찌해야 할까. 최소한의 이치(로고스), 신뢰(에토스), 감정(파토스)마저 없는 궤변에 대한 대처는 정권의 입장과 전략에 따라 다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억지 대처나 해석은 피해야 한다. 코로나 백신 접종이 시작되지도 않고 또 어떤 돌발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르는 비상한 상황에서 북한에 백신 공급을 거론하고, 소통 채널을 모두 닫은 북한과 비대면 화상회의를 위해 설비공사를 한다는 통일부는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 정부를 ‘세상 사람 웃길 짓만 골라 하는…특등 머저리’라고 한 비난을 ‘맥락을 고려하면 더 과감하게 대화하자는 북한의 요구’라고 풀이하는 여당 의원의 아전인수식 해몽은 참으로 난감하다. 이제는 행간을 읽으려 애쓰지 말고 폭력에 정면 대응해야 한다.
 
남북한이 서로에게 운명이고 숙명인 것은 한 민족, 한 나라라는 역사성과 평화로운 공존과 통일이 더 나은 미래로 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믿음에 상처를 내는 북한의 안하무인 조롱과 반칙에 대해 상식을 벗어난 대응은 대다수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더 늦기 전에 민주적 공동체로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위해하는 언행에는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통일의 당위성에 대한 여론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하던 때와는 달라졌다. 이런 변화를 고려하지 않는 정책은 사회통합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북한 관련 정보가 정치 이슈 일변도인 점도 탈피해야 한다. 북한 권력층 간에 벌어지는 벼락 서열상승이나 강등과 같은 인사 동정, 군사력 과시 이벤트, 백두혈통 선전 선동은 물론이고 정치인들이 비공개적으로 주도하는 정보는 유령과 같은 어두운 정보다. ‘유령은 현존하지도 부재하지도 않으며 살아있지도 죽어 있지도 않고, 유령 자체로서 막강한 힘을 지니는 존재로 도처에 있으며, 계속해서 출몰한다’(『마르크스의 유령들』, 자크 데리다). 남북의 공존과 통일의 여정이 허상의 유령에 압도될수록 현실과 진실 모두와 멀어진다.
 
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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