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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소녀 시절 아빠 따라간 울산 동굴의 보라빛 추억

중앙일보 2021.01.31 15:00

[더,오래] 민은미의 내가 몰랐던 주얼리(66)

동굴에서는 그저 반짝이는 돌덩이였다가 목걸이, 귀걸이가 된 자수정은 별빛처럼 빛나며 동화 속 공주님의 물건 같아 보였다. [사진 pixabay]

동굴에서는 그저 반짝이는 돌덩이였다가 목걸이, 귀걸이가 된 자수정은 별빛처럼 빛나며 동화 속 공주님의 물건 같아 보였다. [사진 pixabay]

 
서울 아시안게임이 열렸던 1986년 즈음입니다. 무려 35여년 전 그녀는 10대 중반의 학생이었습니다. 토목업에 종사했던 아버지는 전국을 다니셨습니다. 주말이나 방학 기간 현장에 갈 때는 가족을 동반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소녀는 아버지를 따라 울산광역시 언양에 있는 한 동굴에 가게 되었습니다.
 
컴컴한 동굴 안은 조용했습니다.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듯 고요했습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갈수록 무언가가 가득 채운 채 광채를 내고 있는 신비의 세계가 펼쳐졌습니다. 검은 암석이 팬 곳에는 조명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조명을 따라 빛을 받은 투명한 돌이 보라색으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이 동굴은 ‘자수정 광산’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자수정은 그냥 돌이 아닌 진귀한 보석이라고도 하셨고요. 그곳은 보석이 묻혀 있는 동굴이었던 것입니다.
 
동굴을 나오니 입구 옆에 자수정으로 만든 물건을 살 수 있는 가게가 있었습니다. 가게 안은 자수정으로 만든 주얼리, 건강 제품 등이 진열장 안과 벽면에 가득 걸려 있었는데, 자수정은 동굴 안과 달리 상상할 수 없던 모습으로 변신해 있었습니다. 동굴에서는 그저 반짝이는 돌덩이였는데 목걸이, 귀걸이가 된 자수정은 별빛처럼 빛나며 동화 속 공주님의 물건 같아 보였습니다.
 
아버지는 목걸이를 건네 주며 “뭐든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포도같은 열매를 맺는 날이 온단다”고 말했다. [사진 pixabay]

아버지는 목걸이를 건네 주며 “뭐든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포도같은 열매를 맺는 날이 온단다”고 말했다. [사진 pixabay]



자수정 포도목걸이

아버지는 딸에게 광산에 온 기념으로 자수정으로 된 목걸이 하나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포도 모양의 펜던트가 얇은 체인에 매달린 목걸이였습니다. 마치 자수정 여러 개가 포도알이 되어 박혀 주렁주렁 매달린 모양이었죠. 목걸이를 건네주시며 “뭐든 열심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포도 같은 열매를 맺는 날이 온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소녀는 아버지가 사주신 목걸이를 ‘어른이 되면 해야지’라며 생각하고 소중히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된 후에도 자수정 포도 목걸이야말로 그녀에게는 유일한 자연산 보석이었습니다. 특별하고 중요한 날에만 착용하는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그녀는 몇 차례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몇 해 전 그 자수정 포도 목걸이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잘 보관한다고 서랍 속에 두었던 목걸이였는데, 수십 년이 지나면서 그만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자수정 광산을 재현해 놓은 익산보석박물관 전시물. [사진 민은미]

자수정 광산을 재현해 놓은 익산보석박물관 전시물. [사진 민은미]



보랏빛 기억

자수정 광산에서 아름다운 빛과 광채에 매료되었던 소녀가 성장해 보석과 주얼리 세계에 빠진 주얼리인으로 사회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입니다. 어린 시절 경험했던 보석의 신비함이 이끈 결과일지 모릅니다.
 
2015년 설 연휴 직후 아버지가 홀연히 떠나셨습니다. 서늘했던 자수정 동굴 안에서 딸이 미끄러지지 않게 손을 잡아 주었던 아버지의 온기를 더는 느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포도알 같은 결실을 보기 위해 노력하라는, 설 연휴 때가 되면 더욱 보고 싶은 아버지 말씀과 자수정 포도 목걸이는 최고의 보물로 항상 가슴에 새겨져 있습니다.
 
비록 사라졌지만, 용기와 자신감이 필요한 순간마다 항상 목에 걸었던 자수정 포도 목걸이의 보랏빛 기억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주얼리는 ‘반짝이는 사진첩’인 것 같습니다.
 
주얼리 마켓 리서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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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은미 민은미 주얼리 마켓 리서처 필진

[민은미의 내가 몰랐던 주얼리] 주얼리가 좋아서 주얼리회사에 다녔다. 명품회사에서 세일즈 매니저로 18년간 일했다. 주얼리는 소중한 순간을 담는 물건이다. 돌아보면 누구에게나 인생 여정과 함께 해온 주얼리가 있다. 주얼리 박스는 누구에게나 설렘을 안겨준다. 나를 빛나게, 세상을 빛나게 만드는 주얼리 이야기. 창 넓은 카페에서 편안한 의자에 앉아, 차 한 잔 같이 하는 마음으로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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