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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 됐고, 주식으로" 40대 은퇴 '파이어족' 꿈꾸는 2030

중앙일보 2021.01.31 08:00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월급 빼곤 집값도 주식도 다 올랐어요. 노동가치가 떨어지는 거 같아 회사 일보다 주식 투자에 집중하게 돼요”

 
20대 회사원인 김민아(29) 씨 얘기다. 그는 지난해 마이너스통장을 만들고 모아둔 돈까지 합쳐 8000만원을 주식에 투자해 1년여 사이 2400만원(30%) 수익을 손에 쥐었다. 그는 “투자로 돈을 벌어보니 예전만큼 업무에 몰두하기 어렵다”며 “요즘은 주식뿐 아니라 미국 국채를 비롯해 금ㆍ곡물 등 원자재 시장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월급보다 주식ㆍ부동산 소유에 따른 자산소득으로 눈을 돌리는 20·30세대가 늘고 있다. 세계적으로 넘쳐나는 유동성에 부동산ㆍ주식 등 자산 가격은 급등하는 데 월급을 모아선 부(富)를 쌓을 수 없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어서다.  
감소한 근로소득.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감소한 근로소득.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근거 없는 생각이 아니다. 근로소득만으로는 집도 살 수 없는 시대가 됐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소득 대비 서울 집값 비율(PIR)은 15.6년으로 나타났다. 서울 사는 중위소득(소득순으로 중간 가구의 소득) 가구가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5년 이상 모아야 주택을 살 수 있다는 의미다.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해 9월 10억원을 넘어섰고, 지난달에는 평균 10억4299만원(KB국민은행)에 거래됐다.  
 
근로소득은 거북이걸음 수준이다. 심지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여파로 줄어들기까지 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근로소득은 347만7000원(통계청)으로 1년 전(351만5000원)보다 1.1% 감소했다. 해당 통계가 작성된 2003년 이후 최대 감소 폭이다.   
 
어려워진 취업에 비정규직 등이 늘어나는 등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근로소득의 증가 폭도 줄어들면서 소득의 압착현상은 심화하고 있다. 서강대 이철승 교수가 『불평등의 세대』에서 지적한 개념이다. 
 
세대별로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소득의 증가율을 보면 20·30세대의 고민을 이해할 수 있다. 1960년대 후반 출생세대의 소득은 90년대 초반 대비 2000년대 후반까지 53% 상승했다. 70년대 후반에 태어난 이들의 소득은 2000년대 초반 대비 2010년대 후반까지 26% 늘어났다. 80년대 후반에 출생한 이들의 경우 2010년대 초반에서 후반에 이르는 시기에 소득이 7.6% 늘어나는 데 그쳤다.   
 

“승진 포기, 빨리 돈 벌고 싶어요"  

개인 신규계좌 크게 증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개인 신규계좌 크게 증가.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제자리걸음인 근로소득을 비웃기라도 하듯, 집값은 엄두조차 낼 수 없을 만큼 치솟자 젊은 층이 눈을 돌리는 곳이 주식시장이다. 
 
코스피 지수가 지난달부터 이달 21일까지 두 달여 만에 21% 치솟자 투자 열기는 달아올랐다. 코스피 3000선이 무너진 지난 29일까지 4거래일간 코스피는 하락세(-164.1포인트)를 이어갔지만 개인투자자는 이 기간 9조3286억원 어치의 주식 순매수를 기록했다. 이들 개인투자자 대열에 적극적으로 합류하는 세대가 20·30이다.
 
실제로 지난해 키움증권에서 20·30세대가 새로 만든 증권 계좌는 117만개로 전년(25만개)보다 5배 가까이 증가했다.  
 
회사원 손관주(28)씨는 월급의 70~80%는 증권계좌에 넣는다.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서학 개미가 되면서 밤에도 바빠졌다. 한국 시각으로 밤 11시 30분에 개장(정규장)하는 미국 증시를 확인하고 거래를 하다 보면 새벽에 잠들 때도 잦다. 손 씨는 “평생직장이란 건 없고 월급도 오르지 않아 항상 불안하다”며 “우선은 월급 이외에 주식으로 매달 50만원씩 월세 낼 만큼 버는 게 목표가 됐다”고 말했다.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양 모(30)씨는 이른바 '임포자(임원을 포기한 사람)'다. 그는 “월급 받아 결혼해서 아이 낳고 잘 살 자신이 없다 보니 승진에 대한 관심은 사라졌다”며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해 집 산 친구들과 자산 격차가 벌어져 마음이 급해져 승진 등을 신경 쓸 여력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가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으로 찾은 게 주식투자다. 지난해부터 주식과 펀드로 2000만원을 굴린다. 여기에 매달 월급의 40%를 떼서 주식을 추가로 사들이고 있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지난해 5월 전국 25~39세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투자 목표 1순위는 주택구매를 위한 재원마련(31%)이었다. 이어 은퇴자산 축적(23%), 결혼자금 마련(15%) 등 순으로 응답자가 많았다. 요즘 대다수 청년층은 결혼보다 집을 사고 노후를 준비에 삶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40살에 은퇴할 테야' 한국판 파이어족 

금리 1% 밑돌때 주식·집값 확 뛰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금리 1% 밑돌때 주식·집값 확 뛰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임포자'를 넘어 조기 은퇴를 꿈꾸는 ‘파이어족(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도 생겨나고 있다. 경제적 자립을 통해 늦어도 40대 초반에 은퇴하는 게 목표인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의 젊은 고학력ㆍ고소득 계층을 중심으로 퍼졌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저축’으로 은퇴 자금을 마련하려 했다면 한국의 파이어족은 주식투자로 은퇴 자금을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헤어디자이너인 최모(30)씨는 10년 안에 4억원을 모아서 은퇴하는 게 목표다. 이후 매달 200만원가량 생활비가 나올 수 있도록 연 5~6% 이상의 고배당주에 투자할 계획이다. 이를 위한 은퇴자금도 주식 투자로 모으고 있다. 2017년부터 매달 수입의 75%를 증권 계좌에 붓고, 값싸고(저평가) 배당수익률 높은 종목 위주로 투자했다. 4년 사이 전체 운용자금은 1억원으로 불어났다. 그는 “딱 40살까지만 고생하고 이후에는 번 돈으로 유능한 경영진이 운영하는 기업에 투자하면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요즘 20·30세대가 근로소득보다 자산소득을 좇는 것은 사회 구조적인 현상”이라며 “집 살 기회조차 잃었다는 박탈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맞물려 주식이 ‘마지막 돈 벌 기회’로 여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자산소득 사다리 오르려 '빚투'까지  

지난해부터 동학개미운동 열풍으로 주식투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14일 대전 서구에서 직장인이 주가지수를 확인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부터 동학개미운동 열풍으로 주식투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14일 대전 서구에서 직장인이 주가지수를 확인하고 있다. 뉴스1

과도한 투자 열기에 ‘빚투(빚내서 투자)’하는 젊은 층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30세 미만이 증권사에 빌린 돈(신용융자 잔고)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4200억원으로 2019년 말(1600억원) 대비 162.5% 급등했다. 같은 기간 전체 연령의 평균 증가율(89.1%)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들의 빚투 행렬에는 ‘빚내서 투자하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불안감과 조바심이 깔려있다. 회사원 편모(30)씨는 “올 초에 3400만원 신용대출을 받자마자 절반 떼서 주식을 샀다”며 “처음엔 망설였는데 친구들이 ‘아직도 빚 안 냈냐’는 반응에 큰마음 먹고 결정했다”고 했다.
 
20·30세대의 빚투에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주식시장 중심으로 대출받아 주식 사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며 “증시가 크게 조정받으면 자산기반이 취약한 젊은 층의 타격이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염지현ㆍ윤상언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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