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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시대 개막도 전에…美·EU 앞다퉈 '자국 우선주의'

중앙일보 2021.01.31 07:00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지난 25일 연방정부 관용차를 미국산 전기차로 제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지난 25일 연방정부 관용차를 미국산 전기차로 제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AP=연합뉴스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의 3위 추락.'

 
글로벌 자동차 조사업체 슈미트 오토모티브 리서치는 며칠 전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 폴크스바겐이 1위를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물론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 곳곳의 전기차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던 테슬라를 3위로 밀어낸 주인공은 폴크스바겐과 르노였다. 두 회사는 물론 피아트까지 유럽의 자동차사들은 EU의 CO2 배출 규제와 각국의 전기차 보조금을 발판삼아 ID.3(폴크스바겐)·조에(르노)·500e(피아트) 같은 전기차 판매를 끌어올렸다. 특히 3위로 주저앉은 테슬라는 판매 순위 1~5위를 차지한 제조사(폴크스바겐·르노·테슬라·현대차·PSA) 중 유일하게 2019년보다 판매 대수가 감소했다. 
 
지난해 유럽 시장, 제조사별 전기차(BEV) 판매 순위. 사진 슈미트 오토모티브 리서치

지난해 유럽 시장, 제조사별 전기차(BEV) 판매 순위. 사진 슈미트 오토모티브 리서치

 

유럽은 규제와 보조금으로 보호  

전기차 시대의 개막을 앞두고 EU나 미국, 중국 등에서 자국 회사를 보호하고 육성하기 위한 자국 우선주의 바람이 거세다. 각국 정부들이 규제와 보조금이라는 카드를 적절히 혼합해 자국 회사에 유리한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9일 "유럽연합 집행위(EC)의 경우 내연기관 차량에 대해선 배출가스 규제를 높여 과징금을 부과하고, 그 과징금을 전기차 충전소나 배터리산업에 투자하는 식으로 전기차를 육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프랑스 등은 현재 4만~6만 유로 이하 전기차에 보조금을 준다. 테슬라 차량도 보조금 지급 대상이지만 소비자는 보조금에 조금만 더 보태면 구입할 수 있는 유럽산 전기차를 대거 구매했다. 유럽 각국의 보조금 정책이 결국 테슬라의 질주를 멈춰 세우는 '비관세 장벽' 역할을 한 셈이다. EC는 2020~2021년 판매된 차량을 대상으로 배출가스 기준(95g/km)을 초과한 경우 1g당 95유로(약 12만원)의 과징금을 2022년부터 부과한다. A업체가 2년 동안 전기차를 한 대도 팔지 않고, 기준을 5g 초과한 '100g/km' 내연기관차를 100만대 팔았다면 4억7500만 유로(5*95유로*100만대, 약 6400억원)를 내야 한다. 
 

미국도 '바이 아메리칸'   

미국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연방정부의 관용차를 미국산 전기차로 전면 교체하겠다는 내용의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또 미국산 부품을 더 많이 쓰는 차량이 연방정부의 구매 대상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금은 50% 이상이다. 미국 정부가 대놓고 자국산 전기차를 우대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올 것이 왔다"고 말했다. 
 
정은미 한국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 본부장은 "정책의 수혜자가 해외 기업이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라며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밸류 체인을 자국 중심으로 하겠다는 의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 첫 사례"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미국·중국 등 각국은 신 유망산업 정책에서 자국 우선주의 경향이 짙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네바다주에 들어설 테슬라 기가팩토리 조감도. 사진 테슬라기가팩토리

미국 네바다주에 들어설 테슬라 기가팩토리 조감도. 사진 테슬라기가팩토리

 

미국산 부품을 채용한 미국 전기차만 조달하겠다는 건 자유무역협정 취지에 어긋난다. 그러나 미국은 세부 규정을 들어 이를 피해갈 것으로 관측된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친환경, 중소·여성기업 우대, 노동 관련 등 세부 조항을 통해 보다 까다롭게 장벽을 칠 것"이라며 "생산 규모가 크지 않은 테슬라를 비롯해 미국의 다양한 전기차 스타트업이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미래 산업 분야에서 '자국 우선주의'를 전 세계 시장으로 확대할 것으로 관측된다. 또 자국 우선주의 배경엔 "미국 제조업 재부흥 전략"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송기호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미국산 관용차 조달은 '바이 아메리칸'의 서막일 뿐이다. 앞으로 미국은 전기차 안전 규범 등 자국 정책을 한국이 받아들이도록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며 "(미국산) 테슬라가 전 세계 전기차의 기준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1만1000대를 팔아 국내 승용 전기차 시장 35%를 차지한 테슬라는 한국의 자동차 안전기준을 따르지 않는다. 한·미 FTA 규정에 따라 '판매 대수 5만대 이하 제조사'는 예외이기 때문이다. 이 규정은 2007년 한·미 FTA 당시엔 '6500대'였으나, 계속 확대돼 5만대가 됐다. 이항구 선임연구위원은 "전기차는 ICT·자율주행·로보틱스 등 미래 산업의 핵심"이라며 "미국의 자국산 전기차 우선 정책은 미래 산업 쟁탈전의 성격을 띠고 있어 앞으로 더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출국인 한국은 밸류체인 다시 짜야  

'우리도 미국처럼' 대응하기는 당장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미국·중국·유럽처럼 커다란 내수 시장을 갖고 있어야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울 수 있지 우리처럼 수출국에게는 자칫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은미 본부장은 "'미국 가서 만들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러면 부가가치도 미국이 챙긴다"며 "한국 완성차업체는 글로벌 밸류 체인을 좀 더 정교하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 단순히 물자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가치 사슬을 전 생산 공정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핵심 역량을 배분하는 방식 등이다. 이어 "과거 현대차는 '자기완결형 기업 생태계'를 고수했는데, 최근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기술 혁신)'을 확대하는 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덧붙였다.
 
또 정부의 '리쇼어링(해외로 나간 기업의 복귀)' 정책도 공장 부지와 보조금을 지급하는 과거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산업 지능화·스마트팩토리 등 생산 공정을 혁신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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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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