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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트럼프 만나기 전에 작성…‘북 원전 문건’ 미스터리

중앙선데이 2021.01.30 00:41 722호 4면 지면보기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수행원 없이 도보다리를 산책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김상선 기자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수행원 없이 도보다리를 산책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김상선 기자

산업통상자원부의 ‘북한 지역 원전 건설 추진 방안’ 문건은 만든 배경도 석연치 않지만 삭제한 경위 또한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감사원 감사 대상인 월성 원전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산업부도 사안의 민감성을 잘 알고 있었다는 방증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 가운데 청와대와 제1야당 대표가 북한 원전 관련 문건을 둘러싸고 정면충돌하면서 논란이 정치권으로 확산되고 있다.
 

산업부, 북·미 실무회담 전 만들어
감사와도 무관한데 삭제 궁금증

김종인 “정권 흔드는 이적 행위”
청와대 “터무니없는 북풍 공작”

무엇보다 북한에 원자력발전소를 지어준다는 구상은 국제 비확산 체제 측면에서 볼 때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측면이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자위적 수단으로 이를 사용할 수도 있다고 위협하는 북한에 핵 연료를 제공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북한은 이달 열린 8차 노동당 대회에서 핵잠수함 건조를 공식화하기도 했다.
 
그런 만큼 이 구상은 실행에 옮겨지기도 전에 현실적 제약에 겹겹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장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가 큰 걸림돌이다. 미국의 독자 제재도 원자력 발전에 사용될 수 있는 물질이나 부품의 대북 반입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산업부가 한국의 기술과 장비 등으로 북한에 원전을 건설하는 계획을 추진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당장 한·미 원자력협정의 적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협정에 따라 미국이 한국에 이전한 핵 물질과 감속재 물질 등은 한·미 양국이 합의할 경우에만 제3국으로 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어길 경우 이미 이전된 핵 물질이나 장비를 반환하도록 하는 근거 규정도 담겨 있다. 결국 어떤 경우에도 미국과의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원자력발전소 카드를 대북 인센티브 중 하나로 고려할 수는 있다. 하지만 설사 그렇더라도 북핵 로드맵의 최종 단계에서나 제공할 수 있는 보상이고 그 전에 먼저 비핵화의 최종 목표와 로드맵부터 합의해야 하는데 북한이 이를 거부하면서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도 ‘노딜’로 끝났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도 필수다. 조약에 따라 핵 시설 신고, 핵 물질 목록 작성, 사찰단 복귀 등이 이뤄져야 한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원전은 민감 물자이면서 국제적 수출 통제를 받고 있는 만큼 기준을 모두 준수하면서 건설하는 건 매우 복잡한 문제”라며 “원전 지원이 포함된 대북 지원 로드맵을 만드는 것 자체는 문제될 게 없지만 지금의 비확산 체제를 우회하거나 독자적으로 추진할 생각이었다면 엄청난 국제적 반대에 부딪힐 사안”이라고 말했다.
 
산업부가 북한 원전 건설 추진 방안을 검토하면서 이런 부분까지 고려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삭제된 문건에 전문가 목록과 일부 이력서까지 포함돼 있었던 걸 보면 자문단 구성 등에 대한 상부 결재까지 염두에 두고 구체적으로 문건을 작성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정부 내에서는 문서가 작성된 시점이 2018년 5월 초·중순으로, 1차 북·미 정상회담 의제 조율 등을 위한 실무회담도 아직 열리지 않았을 때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이런 제목의 문서 자체를 처음 본다. 이때는 비핵화 조치와 그에 따른 상응조치를 어떻게 패키지로 구성할지 미국과 논의하는 단계였는데 어떻게 북한에 원전을 지어주겠다는 구상을 제안했겠느냐”며 “이 문제가 남북 간에나 북·미 간에 논의된 적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 관계자도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당시 북측에 건넨 한반도 신경제 구상에 원전 관련 내용은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서울의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은 제네바 합의로 경수로를 지원받을 때도 전력난 해소를 위한 원자력 발전이라고 주장했다”며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현 상황에서 원전 제공이 북한에 큰 인센티브가 될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전후 조성된 평화 분위기를 반영해 산업부가 독자적으로 지원책을 검토하다가 감사원이 자료를 확보할 경우 내용이 외부로 유출될 것을 우려해 관련 문건들을 삭제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파장은 정치권으로 확산됐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이적 행위”라고 비판하자 곧바로 청와대가 “북풍 공작”이라고 맞받아치면서다.
 
김 위원장은 이날 본인 명의로 발표한 입장문에서 “북한에 극비리에 원전을 지어주려 한 것은 원전 게이트를 넘어 정권의 운명을 흔들 수 있는 충격적인 이적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는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탈원전 정책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며 “상상을 초월하는 이적 행위의 실체를 명명백백히 밝히라”고 촉구했다.
 
그러자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적 행위라는 표현까지 썼는데 이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아무리 선거를 앞두고 있어도 야당 대표 입에서 나온 말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혹세무민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강 대변인은 “북풍 공작과도 다를 바 없는 무책임한 발언으로 묵과할 수 없다”며 “김 위원장은 발언에 책임져야 한다. 정부는 법적 조치를 포함해 강력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 출신인 윤건영 민주당 의원도 “정치 소설의 백미”라며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히지만 문재인 정부 때 세 차례 정상회담과 교류 협력 사업 어디에서도 북한 원전 건설을 추진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변인 발언은 청와대의 공식 입장으로 대통령 생각과 다를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야당 대표에 대한 강 대변인의 이례적이고 직설적인 비판엔 문재인 대통령의 뜻이 담겨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날 ‘정부가 극비리에 원전을 지어주려고 했다’는 김 위원장의 발언만 반박했을 뿐 산업부의 파일 삭제 등 나머지 쟁점에 대한 반응은 내놓지 않았다.
 
유지혜·강태화·박현주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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