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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반도체, 기술 초격차로 중국 따돌리고 대만에 맞서야”

중앙선데이 2021.01.30 00:29 722호 11면 지면보기

반도체 세계대전 - 전문가 진단 

절대로 무너질 것 같지 않던 인텔 제국에 빈틈이 보이고 퀄컴의 아성도 흔들리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전쟁의 새로운 양상이다. 바이든 시대에도 이어질 미·중 패권전쟁 속에서 반도체 경쟁구도는 어떻게 바뀔까. 지난 27일 한양대 서울캠퍼스 한양종합기술원(HIT) 건물에서 만난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는 “반도체의 ‘수퍼 사이클’이 다시 찾아왔다”며 “기존 강점을 살리고 약점은 보완해가면서 효율적으로 승부할 때”라고 진단했다. 그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생존 조건으로 “기술 초(超)격차를 유지해 중국을 따돌리고, 미국 시장에서 선전하면서 미·중 패권전쟁의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는 대만과 맞서야 한다”고 제시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
D램·낸드플래시 ‘수퍼 사이클’
구글·아마존, 팹리스 강자 가능성

미, 대만 TSMC에 몰아주기 뚜렷
삼성, 파운드리 과감히 투자하길

정부선 팹리스 스타트업 키우고
파운드리 발전 선순환 만들어야

박재근 교수는 "국내 팹리스 생태계를 발전시켜 파운드리 산업도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전민규 기자

박재근 교수는 "국내 팹리스 생태계를 발전시켜 파운드리 산업도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전민규 기자

반도체 수퍼 사이클 얘기가 나온다.
“한국의 경우 2018년 1267억 달러어치 반도체를 수출하며 정점을 찍었다가 이후 다소 부진했다. 그러다 지난해 다시 1000억 달러 가까이를 벌어들인 것으로 추산되고, 올해 전망치도 1093억 달러(약 122조원)다. 세계 경제가 위기라는데 반도체 시장은 예외인 이유는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비대면 경제 활성화 덕이 크다. 스마트폰·PC 수요가 다시 늘고 있고 클라우드 등의 성장세도 만만찮다. 이런 데서 업그레이드 필요성이 커지다 보니 반도체 수요가 많이 늘었다. 한국의 주력 수출품은 데이터 저장용 메모리 반도체인데, 그중 D램 시장이 특히 호황이라 가격이 많이 올랐다. 글로벌 D램 시장의 올해 성장률은 전년 대비 17%로 추산된다. 낸드플래시도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의 호황이 예상된다. 이러다 보니 다시 수퍼 사이클이 왔다고 보는 거다.”
  
7·5 나노 공정 기술력은 TSMC·삼성뿐
 
새로운, 다양한 디지털 수요가 공급자 우위의 기존 반도체 시장을 뒤흔드는 듯하다.
“1980년대 초 미국에서 IBM 등의 PC로 반도체 시장이 처음 확 커졌다. 이후 2007년부터 애플 ‘아이폰’ 등장과 함께 스마트폰 전성시대가 열리면서 다시 반도체 시장의 외연이 확대됐다. 지금은 세 번째 물결이다. 스마트폰 기반의 서비스를 하는 구글·아마존·페이스북·알리바바 등 ‘빅 플레이어’들이 급성장하면서 스마트폰에서 다양한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앱 처리장치(AP)에 대한 어마어마한 수요가 탄생했다. 기존 AP에 5세대(5G) 이동통신이나 인공지능(AI) 신기술을 접목하는 식의 무한한 변주가 일어나고 있다. 자동차 쪽에서도 자율주행차 등 차세대 기술이 부각되고 있다. 레벨 3 이상 자율주행차의 경우 지금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것 이상의 초고속 반도체가 있어야 한다. 새로운 시장은 이처럼 다양하게 열리고 있다. 10여 년간 스마트폰이 AP 기술 발전을 주도했다면, 앞으로는 훨씬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AP의 등장을 요구할 거다. 기업들의 전략도 바뀌고 있다. 예컨대 아마존이라면 물류 서비스에 특화된 고유의 AP를 필요로 한다. 이는 직접 설계하는 팹리스에 적극 나선다는 얘기다. 지금껏 애플이나 삼성전자 등 스마트폰 관련 기업들이 팹리스 시장을 주도했다면, 이젠 구글과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신흥 강자들이 새로운 팹리스 회사로서 급성장 가능성이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반도체 강자인 미국의 현주소는.
“한국으로선 현재는 물론, 미래의 고객까지 대부분 미국에 있다. 인텔과 퀄컴 등 미국 기업이 여전히 세계 위탁생산(파운드리) 시장 판도를 주도하고 있다. CPU(중앙처리장치) 분야 강자인 인텔은 14나노미터(㎚) 공정까진 스스로 개발했는데, 지금보다 고성능의 AP 제조에 필수적인 7㎚나 5㎚ 등의 극자외선(EUV) 공정 개발엔 성공하지 못했다. 최근 CPU는 5G 기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도록 발전이 요구된다. 그러려면 7㎚나 5㎚ 공정을 적용해야 하니 한계가 명확해졌다. 파운드리 물량을 대만의 TSMC에 주느냐, 삼성전자에 주느냐 고심하다가 TSMC에 몰아준 거다. 현재 전 세계에서 7㎚나 5㎚ 공정으로 제조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춘 기업은 TSMC와 삼성전자 밖에 없다. 팹리스 시장도 애플과 엔비디아, 퀄컴 등 미국 기업이 전 세계의 약 70% 비중을 차지하면서 주도하고 있다. 그중 퀄컴은 35% 정도의 시장점유율로 세계에서 가장 큰 팹리스 회사다(애플과 삼성전자가 각각 12%가량 점유). 퀄컴은 AP를 설계해 TSMC에 생산을 맡기고, 세계 모든 휴대전화 제조사에 공급하는 형태로 최강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미국 팹리스 업체들의 최근 최대 고민거리는 반도체 산업에서도 미래 먹거리로 통하는 자율주행차 시장을 자동차 제조사들과 공동 연구해서 어떻게 선점하느냐다. 삼성전자도 이를 알고 있었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하만을 인수(2017년)한 거다.”
 
야심차게 ‘반도체 굴기’에 나섰던 중국은 미국의 제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의 (한국) 추격을 상당히 우려했고, 10년 내로 추월할 수 있다고도 봤는데 미국 덕분에 한숨 돌렸다. 미·중 패권전쟁의 본질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차세대 기술전쟁이며 현재 격전지가 바로 반도체다. 화웨이가 AP 팹리스에서 퀄컴과 비슷한 수준까지 따라오자 미 정부가 제재를 시작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기 위해서다. 그러다 보니 메모리 반도체에서 중국의 추격이 주춤해졌다. 하지만 언젠가는 돌아올 거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은 기술 초격차를 유지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해야 한다. 중국이 다시 돌진하더라도 기술력에 차이가 많이 나서 추격하기 힘들게 계속 격차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미국의 제재는 중국이 만만찮은 기술력을 과시하던 항공 등의 특수 반도체 분야에도 타격을 줬다. 이 때문에 대만이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 중국에서 소화하지 못하게 된 물량 대부분이 대만으로 넘어가고 있다.”
 
한국은 대만과의 파운드리 분야 격차를 따라잡기 어려운가.
“그렇진 않다. TSMC의 연간 파운드리 매출은 약 53조원, 삼성전자는 정확히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18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규모로는 차이가 커 보이지만 파운드리에서도 각자 잘하는 분야나 타깃이 다르다. TSMC는 파운드리 매출의 40% 정도가 AP 등 하이엔드 제품에서 나오고, 차량용 반도체도 만든다. 삼성전자가 어렵더라도 계속 미래 시장이 큰 파운드리에 과감히 투자해야 하는 건 맞다. 안 그러면 나중에 TSMC와의 격차가 더 벌어진다. 다만 차량용 반도체엔 당장은 집중하지 않는 편이 좋다. 안전성이 중요한 분야라 과감한 신규 투자도 필요한데 TSMC는 차량용 반도체도 오랜 기간 만들어왔기에 더 투자할 필요가 없고, 이미 투자한 장비의 감가상각도 충분히 반영된 상태라 경쟁력에서 앞서는 거다. 삼성전자가 이쪽에 집중해서 승부를 걸 순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무리하진 않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반도체 전쟁이 한창이라 삼성전자의 총수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이재용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최근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형을 선고받고 구속 수감됐다).
“지난해 TSMC가 EUV 공정 등에 20조원을 투자할 동안 삼성전자는 10조원을 투자했다. TSMC는 올해 30조원을 더 투자한다고 한다. 파운드리 경쟁의 성패를 좌우하는 생산능력에서도 삼성전자는 2분의 1에서 3분의 1 수준으로 TSMC에 뒤처진다. 물론 단순히 투자액을 늘리는 게 능사는 아니다. 투자했다가 고객을 못 받으면 적자만 쌓인다. 하지만 동일한 기술력을 갖췄다 하더라도 생산능력이 떨어지면 고객 유치가 어렵다는 점에서 투자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전문경영인이 공격적인 투자를 결정하긴 쉽지 않다. 총수라면 예컨대 각 사업부의 실적을 두루 살펴 이익이 더 난 쪽의 여력을 돌려 다른 쪽에 투자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과감한 결정을 할 수 있지만, 각 사업부장이 다른 사업부 사정까지 고려해서 뭔가 결정하긴 어렵다. 이런 부분에서 총수 공백이 우려되는 건 사실이다.”
  
미국 제재로 중국 특수 반도체도 타격
 
한때 ‘D램 왕국’이던 일본은 소재·장비·부품 분야를 빼면 반도체 전쟁에서 뒤처졌다.
“과거 메모리 반도체에서 일본이 미국을 따라잡자 미국이 견제에 나섰다. 그게 ‘수퍼 301조’다. 그러면서 일본이 주춤한 사이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로 일본을 빠르게 추격했다. 이 무렵 후발주자인 한국은 일본과 달리 여러 층의 프로세서를 쌓는 적층식 제조기술로 승부했는데 그게 통했다. 한국은 또 대기업 위주로 산업을 키우다 보니 과감한 선행 투자 결정이 가능했는데,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등 고비 때마다 오히려 과감하게 투자하면서 승기를 쥘 수 있었다. 이후 일본은 사실상 이쪽에서 손을 뗐다.”
 
정부에 바라는 정책이 있다면.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의 동반성장, 이들의 연구·개발(R&D) 성과를 위해 정부가 계속 적극 지원해줘야 한다. 우수 인재 육성에도 사활을 걸어야 한다. 그로써 팹리스 분야 스타트업이 많이 생기고, 이들 기업이 자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거나 대기업에 인수돼서 규모가 커지는 식으로 나아가야 파운드리 산업 전체가 잘 돌아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팹리스 기업들의 자금력 등 기초 체력을 키워주는 일도 중요하다. 이들에 대한 펀드 유치를 해서 자금을 지원해주는 등의 노력을 할 수 있다.”
 
박재근 석학교수
1959년생인 박 교수는 미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재료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85년부터 2001년까지는 삼성전자에서 일하면서 반도체사업부 소재기술그룹장과 생산기술센터 기술고문 등을 역임했다. 이후 학계로 돌아와 연구와 후학 양성에 전념하면서 2004~12년엔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차세대메모리 개발사업단장을 맡기도 했다. 이 때문에 산업 현장과 학계, 정부 정책 등에 두루 정통한 반도체 최고 전문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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