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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의 시시각각] 정은경 청장의 논문이 던진 질문

중앙일보 2021.01.29 00:54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학교에서의 코로나19 감염 위험성이 낮다는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논문은 당혹스럽다. 논문은 “확진 아동·청소년 중 학교에서 감염된 사례는 2% 정도에 불과해 학교 폐쇄로 얻는 이익보다 손실이 더 크다”고 결론을 내렸다. 아니, 학교가 문을 닫는 바람에 얼마나 고생했는데. 학생들의 학력 격차, 저학년 아동의 사회성 저하, 부모들의 피로도 증가…. 그런 고통이 결과적으로 어리석은 짓이었다? 모두가 박수를 보냈던 ‘K방역 스타’의 뒤늦은 딴소리에 배신감마저 느낄 만하다.
 

우리 방역은 실증에 기반한 건가
경제 틀어막고는 재정 풀기 반복
정치 아니라 과학이 고통 줄인다

논란이 커지자 정 청장은 “코로나가 비교적 잠잠했던 지난해 5~7월의 데이터라서 지금 상황과는 다르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개운치 않다. 국민의 고통을 초래한 방역 조치가 실증적 근거가 아니라 단순히 감염자 숫자에 따라 거칠게 내려졌던 건 아닌가. 최고위 방역 책임자가 논문에 쓸 정도의 실증적인 자료가 실제 방역 조치 결정에는 얼마나 반영되는가. 방역은 정치인가 과학인가. 사실 학교 내 감염 위험성이 낮다는 연구는 세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최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전문가들은 위스콘신과 노스캐롤라이나주 감염자를 조사한 결과 “방역 수칙만 잘 지키면 안전하게 대면 수업을 할 수 있다는 압도적 증거가 있다”는 결론을 냈다.
 
비단 등교 문제뿐이겠나. 자영업자 영업 제한도 마찬가지다. 실증적 자료보다 막연한 추측에 근거한 방역에 의존하고 있다는 의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은 대도시 코로나 감염 상황을 분석한 결과 식당이 카페와 헬스장보다 4배나 위험하다는 논문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식당 영업은 제한적이나마 허용하고, 카페와 헬스장은 사실상 금지했던 얼마 전 우리의 방역 조치와는 정반대 방향이다.
 
실험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나 더 들자. 최근 독일 도르트문트의 한 콘서트장은 입과 코를 통해 에어로졸을 내뿜는 마네킹을 객석 곳곳에 앉혀 공연장 내 감염 위험성을 측정했다. 마스크를 쓴 관객이 객석의 절반을 채운 상태에서 강력한 중앙환기시스템을 가동하면 위험률은 ‘0’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독일 할레의대 연구팀이 지난해 8월 라이프치히 실내 콘서트장에서 했던 실험과 결과가 일치했다. 우리는 어떤가. ‘두 자리 띄워 앉기’에서 ‘2m 거리두기’로 공연장 지침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객석의 30% 정도밖에 채울 수 없다. 사실상 문 닫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물론 조건과 상황이 다른 외국의 실험 결과를 현실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실제 적용은 훨씬 더 보수적으로 해야 하는 것도 맞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합리적인 방역 수칙을 만들기 위해 이런 실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소리는 잘 들어보지 못했다. 심지어 코로나 1년이 지났는데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영업 관련 매뉴얼조차 없다.
 
방역은 봉쇄와 방임 사이 그 어딘가에 있다. 효과만 따진다면 최고의 방역은 봉쇄다. 그러나 현실적인 절충점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역할은 정치와 과학의 몫이다. 바이러스의 정체를 완전히 모를 때에는 정책 책임자들의 정치적 결단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방역의 정치화 논란이 있었지만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시민권 제한의 불편을 국민이 참아준 것은 이 때문이었다. ‘자랑스러운’ K방역의 이면이다. 그러나 모호한 긍지로 버티는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과학으로 설득하지 못하는 방역은 결국 우격다짐이다. 방역에서 정치가 차지했던 자리를 이젠 과학이 넘겨받아야 한다. 어느덧 8만 명 가까워진 누적 확진자가 자랑은 아니지만 실증적 연구를 위한 데이터로는 모자라지 않는다.
 
백신을 통한 집단 면역은 아직 멀었다. 고통의 계곡을 수월하게 건너기 위해서라도 세심한 방역 대책이 필요하다. 거칠게 경제활동을 틀어막고는 재정으로 불만을 달래는 일을 언제까지 반복할 건가. ‘위드 코로나’ 시대 아닌가. 그 동반자는 과학이다.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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