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정완 경제에디터
전셋값 34년 만에 최대 폭 상승
서민 위한다며 서민 옥죄는 악법
세입자들 고통 오히려 커졌다
지난해 7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선 야당의 불참 속에 투표에 참여한 의원 186명 중 185명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법안을 의결했다. 찬성한 의원들은 임대차법 시행 이후 예상되는 부작용을 정말 몰라서 일사불란하게 찬성표를 던진 것일까. 아니면 금태섭 전 의원이 당했던 것처럼 당 지도부가 정해준 대열에서 이탈했을 때의 후환이 두려웠던 것일까.
그 후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조금만 기다리면 안정될 것이란 정부·여당의 장담과 달리 전세 시장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올해도 임대차법의 여파로 전셋값이 강세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김성환 건산연 부연구위원은 “특히 임차시장에 신규 진입이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새로 전·월세를 구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이 커졌다는 얘기다. 전셋값 급등은 순식간에 집값 불안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하반기 30대를 중심으로 ‘패닉 바잉’(공황 매수)을 부른 것도 임대차법의 부작용이었다.
임대차 3법 중 아직 시행하지 않은 전·월세 신고제를 제외하면 문제는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의 두 가지다. 세입자가 원하면 집주인의 뜻과 상관없이 같은 집에서 2년 더 살게 하고(계약갱신청구권), 재계약 때는 주변 시세에 상관없이 전셋값 인상률을 5% 이내로 제한했다(전·월세 상한제). 얼핏 보기엔 세입자에게 좋은 제도인 듯하다. 바로 이게 정치적인 ‘함정’이었다. 새 임대차법이 20년 넘게 유지해온 우리나라 전세 시장의 작동 원리를 완전히 헝클어버렸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집주인 입장에선 한 번 세입자를 잘못 들이면 4년간 속수무책으로 기다려야 한다. 세입자 입장에선 야속하겠지만, 집주인으로선 신규 계약 때 전셋값을 최대한 올리고 세입자를 깐깐하게 고를 수밖에 없다.
각종 ‘꼼수’도 판을 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사례는 세입자를 내보내려면 집주인이 웃돈을 줘야 한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전세 시장에 이중가격이 형성된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기존 세입자는 싸게, 신규 세입자는 비싸게 전셋집을 얻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러면 2년의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한 기존 세입자는 행복할까.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2년 뒤에는 꼼짝없이 비싼 전셋값을 부담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현재 사는 집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대안은 이제라도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다. 임대차 3법을 아예 폐지하는 게 어렵다면 최소한 대대적인 보완책이라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책임지고 나설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대차법의 부작용을 별로 심각하게 보지 않는 듯하다. 지난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봄 이사 철을 맞이하면 전세를 구하는 게 어렵지 않으냐는 염려도 한편으로 있을 것”이라고 언급한 정도다. 임대차법 통과를 주도했던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과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차례로 자리를 떠났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은 세입자에게 4년을 넘어 6년의 계약 기간을 보장하자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변 장관이 교수 시절의 주장을 고집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임대차법의 보완에 나설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서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오히려 서민을 옥죄는 역설, 제발 이제는 그만 보고 싶다.
주정완 경제에디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