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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술값 인상? 내 혈압까지 올라” 반발 크자 하루 만에 말 바꾼 정부

중앙일보 2021.01.29 00:02 종합 10면 지면보기
정세균 국무총리가 28일 서울 목동에서 열린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손실보상제가 법제화되도 소급적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정세균 국무총리가 28일 서울 목동에서 열린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손실보상제가 법제화되도 소급적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월 출간된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복지부 인상 추진안 발표 다음날
서민들 “문 정부선 다 오르네” 성토
정세균 “전혀 고려한 바 없다” 진화
복지부 “정해진 내용 없다” 해명

“담배는 서민들의 시름과 애환을 달래주는 도구이기도 한데, 그것을 박근혜 정권이 빼앗아갔습니다. 담뱃값을 이렇게 한꺼번에 인상한 건 서민경제로 보면 있을 수 없는 굉장한 횡포입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1월 2500원이던 담뱃값이 4500원으로 올랐는데 이를 ‘서민 증세’ 관점에서 비판한 것이었다.
 
4년여가 흐른 지금 담뱃값 문제로 민심이 또다시 요동치고 있다. 지난 27일 보건복지부가 4500원인 담배 가격을 10년 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8000원대로 올리는 내용을 담은 ‘제5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을 발표하자 반발이 거세다. 발표 이후부터 28일 주요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1위는 ‘담뱃값 인상’이 차지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그놈의 OECD 평균. 출산율이나 좀 올려라” “이 정권에선 다 오르네. 집값, 술값, 담뱃값 그리고 내 혈압” 등 정부를 성토하는 비난 글이 줄을 이었다.
 
과거 박근혜 정부는 담뱃값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박근혜 정부는 2014년 9월 국민 건강 증진을 이유로 담뱃값 인상안을 발표했다. 이후 발표 9일 만에 속전속결로 가격 인상이 확정되자 “사실상 꼼수 증세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그러면서 당시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 기준으로 3주 연속 하락하기도 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출마한 문 대통령은 담배 가격 인상 실행 직후인 2015년 1월 8일 전북 군산에서 담뱃값 인상에 불만을 표시하는 당원을 만나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담뱃값 인상은 어느 정부나 쉽게 유혹에 빠지는 카드다. 흡연율을 낮춰 국민 건강을 지킨다는 명분과 세수 증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어서다. 문제는 흡연율 저하보다 세수 증대 효과가 압도적으로 크다는 점이다. 지난해 10월 발표된 ‘2020년도 1~3분기 담배 시장 동향’ 자료에 따르면 담뱃값 인상 전인 2014년 같은 시기에 비해 담배 판매량은 15.1% 줄어드는 데 그쳤다. 반면 제세부담금은 67.1% 늘었다. 정부로서는 짭짤한 수입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담뱃값 인상 추진안에 대해 야당에서는 당장 비판 목소리가 나왔다. 서울시장 보선에 출마한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서민들은 코로나19로 먹고 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이 와중에 담뱃값과 술값마저 올린다니 참 눈치도 없고 도리도 없는 정부”라며 “우리 국민들에게는 너무 가혹한 소식”이라고 적었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도 페이스북 글을 통해 “국민 건강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이지만 마치 고양이가 쥐 생각하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라며 “이런 것을 바로 가렴주구(苛斂誅求)라고 한다”고 주장했다.
 
여론이 싸늘해지자 정부와 여당은 급히 진화를 시도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28일 페이스북을 통해 “담배 가격 인상 및 술의 건강증진부담금 부과에 대해 현재 정부는 전혀 고려한 바가 없으며 추진 계획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했다. 홍익표 민주당 정책위의장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복지부 해명자료를 통해 추진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전날 담뱃값 인상과 주류 건강증진부담금 부과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가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 없다. 단기간에 추진할 사안이 아니다”는 설명자료를 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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