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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례 사건’ 억울한 옥살이...국가ㆍ검사 책임 인정

중앙일보 2021.01.28 16:51

“힘 있는 분들은 사과를 안 하시더라고요…진범도 미안하다고 했는데”

 
칼바람이 불던 28일 오후 2시 15분께. ‘삼례 나라슈퍼 사건’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온뒤 피해자이자 유가족인 최성자(56) 씨가 법원 앞에서 눈시울을 붉히며 한 얘기다. 최씨는 두 손으로 마이크를 꼭 잡은 채 “20년 정도 싸운 것 같은데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며 “그동안 너무 많이 울었는데 이런 아픈 이야기가 한국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법원, "삼례 나라슈퍼 사건" 누명 피해자에 배상 판결

 
 
이날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7부(박석근 부장판사)는 전북 삼례 나라슈퍼 강도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최대열(42), 임명선(42), 강인구(41)씨 등 3명이 국가와 당시 수사 검사인 최모 변호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가 1인당 3억2000만∼4억7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함께 소송을 낸 가족들에게도 “국가가 1인당 1000만∼1억3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전체 배상금의 20%는 최 변호사가 부담하도록 했다. 최 변호사가 피해자를 상대로 제기한 반소 청구도 모두 기각했다. 
 
역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한 피해자가 나왔던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에 이어 삼례 사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대리한 박준영 변호사는 재판을 마치고 “자백까지 한 진범을 풀어주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이 억울하게 옥살이하는 일이 다시는 있어선 안 된다”며 소감을 밝혔다. 피해자 최씨의 누나 최수영 씨도 울먹이는 목소리로 “저희 같은 억울한 사람들이 다시는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그간 고생을 너무 많이 했는데 오늘 이날을 (돌아가신) 어머니와 아버지가 봤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삼례 사건 진범 참석해 사과

삼례 사건 진범 이모 씨도 이날 자리에 참석해 “평생 뉘우치고 살아야 할 일이지만 저 대신 징역을 사신 피해자를 보면 여전히 마음이 안 좋다”고 했다. 이씨는 검찰이 해당 사건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릴 당시 범행 사실을 털어놓은 인물이다. 피해자 가족들이 재심을 청구했을 당시에도 “자신이 범행을 저지른 게 맞다”며 증언대에 서기도 했다. 박 변호사는 “이씨가 자리에 나올 수 있었던 건 피해자 유가족이 용서해줬기 때문”이라며 “대립과 갈등으로 삭막한 사회인데 가해자를 용서한 피해자들의 관용이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삼례 3인조' 강도치사 사건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이들에게 국가가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온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피해자 최성자 씨가 심정을 밝히고 있다. 뉴스1

이른바 `삼례 3인조' 강도치사 사건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이들에게 국가가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온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피해자 최성자 씨가 심정을 밝히고 있다. 뉴스1

삼례 사건 피해자의 사위 박성우(58) 씨는 옆에 선 이씨를 바라보며 “살인자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어렵게 재판 때마다 나와서 우리를 도와줘서 고맙다는 뜻 전하고 싶다”며 “이렇게 용기를 내서 나와주신 이분께 진심 어린 용서를 했다””도 했다. 이어 “피해자·피해자 유족·가짜 범인·진범이 모여 입장을 밝히는 아이러니한 소설이 있을 수 있냐”며 “다음에는 우리나라에 이런 소설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이란?

‘삼례 나라슈퍼 사건’은 1999년 2월 3명이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에 침입해 집주인인 70대 노인 유모 씨의 입을 테이프로 막아 숨지게 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지적장애 장애를 앓던 3명(삼례 3인방)을 체포한 뒤 자백을 받고 구속했다. 이들은 각각 징역 3~6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이후 진범이 따로 있다는 첩보를 접수한 부산지검은 용의자 3명을 검거했지만 사건을 직접 처리하지 않고 삼례 3인방을 기소한 전주지검으로 이송했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

삼례 나라슈퍼 사건.

 
당시 전주지검 소속으로 사건을 수사했던 최 변호사는 용의자의 자백이 신빙성이 없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형이 확정돼 만기 출소한 삼례 3인방은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에선 용의자 3명 중 1명인 이씨가 출석해 자신이 진범이라고 양심 선언을 했다. 이에 지난 2016년 삼례 3인방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건이 발생한 지 17년 만에 누명을 벗은 셈이다. 이 사건은 지난해 6월 촬영에 들어간 정지영 감독의 영화 ‘소년들’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이후 삼례 3인방·피해자 가족들은 이듬해 국가와 당시 수사검사였던 최 변호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만큼 경제적·정신적 피해를 배상하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최 변호사는 삼례 3인방과 소송을 대리한 박 변호사가 오히려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3000만원을 배상하라고 맞소송을 냈다. 박 변호사는 이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모자라 책임을 부인해 황당했다”며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많이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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