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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탈진실의 시대, 내면적 전체주의의 덫

중앙일보 2021.01.28 00:31 종합 31면 지면보기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쳔 대학교·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쳔 대학교·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한 사회에서 스스로 사유하지 않고 고립감에 빠진 개인들, 또한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힌 개인들은 어디로 가는가. 사유하기를 포기한 고립된 대중은 전체주의적 운동이 뿌리내리게 하는 자양분이 된다. 한나 아렌트의 분석이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많은 이들이 한나 아렌트의 사상에 더욱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선거 한 달 후,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은 보통 때보다 6배가 더 팔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현대 미국이나 한국이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전체주의 사회는 아니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서 이러한 전체주의적 분위기가 태동하게 되는 전제조건들이 감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아렌트의 분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진실을 외면하는 ‘탈진실’
사유 부재의 고립된 이들
내면적 전체주의의 자양분
사유하며 진실·정의 모색해야

인터넷 시대에 가짜 뉴스와 허위정보는 트럼프와 같은 정치가를 비롯하여 세계 곳곳의 언론과 미디어를 지배하고 있다. 많은 사람은 진실과 사실이 무엇인가에 관심을 두지 않으며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소위 ‘탈진실(post-truth)의 시대’를 사는 것이다. 진실과 사실이 아니라, 오직 자기 편의 주장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다수로 자리 잡게 될 때, 한 사회는 표면적으로 민주주의 사회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전체주의의 덫이 곳곳에 드리우게 된다.
 
아렌트에 따르면, 전체주의적 운동의 자양분이 되는 것은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고립감과 분노에 빠진 사람들의 존재다. 사유부재의 고립감은 이 세계에 자신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며, 그 고립된 삶을 구원해줄 것 같은 정치적· 종교적 서사들에 빠지게 만든다. 트럼프의 큐아논(QAnon), 태극기 부대, 또는 전광훈식의 종교집단은 고립된 사람들을 끄집어 내어서 공동체적 소속감을 경험하게 해 준다. 고립되었던 개인들은 정치적·종교적 선동에 따라서 집단행동을 하면서 비로소 소속감을 느끼며, 존재 이유를 찾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진실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탈진실’과 의도적 거짓 정보의 혼돈 세계에 발을 내디딤으로써, 내면적 전체주의적 사회로 이양하게 된다.
 
큐아논과 같은 트럼프의 열광적 지지그룹이나, 태극기 부대, 또는 전광훈식의 종교집단이 지닌 공통점이 있다. 각종 음모론과 가짜 뉴스, 그리고 거짓 정보를 퍼나르며 자신들과 생각을 같이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악마화에 의해서 집결된다는 것이다. 2021년 1월 6일 미국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트럼프 열광주의자들은 바로 이러한 탈진실과 의도적 거짓에 의하여 선동되는 내면적 전체주의 사회의 구성원들이다. ‘선거가 도둑맞았다’는 가짜뉴스와 거짓정보에 의하여 선동된 이들 폭도는 현실 세계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고 있다. 개별인이 아닌 집단으로만 존재하면서, 스스로 사유하지 않고, 오직 선동될 뿐이다.
 
전체주의적 사유방식의 강한 특징은 강력한 혐오와 차별의 서사다. 이러한 혐오와 차별의 서사는 ‘우리(선)-그들(악)’ 이라는 대립적 이원론의 파괴성에 의해 작동된다. ‘우리’에 속하지 않은 이들을 모두 파괴해야 할 ‘적’으로 간주하면서, 혐오와 독설의 서사를 서슴지 않고 표현한다. 이러한 내면적 전체주의 세계 속에 발을 디딘 이들은, 선동가들에 의하여 재현된 현실만을 맹신하게 되며, 결국 전체주의의 감옥에 자신을 집어넣는 악순환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된다.
 
진실과 사실이 아니라 ‘탈진실’과 거짓 정보, 그리고 가짜뉴스가 범람하고, 이것들을 카톡으로 확산시키고 있는 이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한국의 현실은 내면적인 전체주의 덫에 빠진 이들의 양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정치 체제로서의 전체주의가 아니라, 스스로 사유하지 않고 외적 선동들에 의하여 조종됨으로써 비로소 소속감을 느끼는 고립된 이들이 스스로 인간됨을 파괴하고 있다. 그들을 선동하는 이들 입장에선 사유를 포기한 고립된 개인들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잉여 존재이며, 단지 정치적·종교적 도구일 뿐이다. 정치, 종교, 미디어 등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이러한 내면적 전체주의는 언제나 등장하게 된다.
 
악을 ‘비판적 사유의 부재’라고 규정한 아렌트의 통찰은 지금 한국 사회에도 절실하게 필요하다. 사유의 부재를 통해서 작동되는 의식 속에서의 전체주의는, 혐오와 음모의 정치학을 확산시키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유하는 행위는 외로움과 고립감을 넘어서서 한 개인을 사유 주체(thinking subject)로, 판단 주체(judging subject)로, 그리고 행동 주체(acting subject)로 자리 잡게 한다. 정치적 또는 종교적 선동에 의해서 집단화되어 움직이게 되는 전체주의의 덫에 빠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민주사회에 있으면서도 전체주의적 사고를 하는 이들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는 이 ‘탈진실의 시대’에 우리가 더욱 치열하게 추구해야 하는 것은, 바로 비판적 사유하기를 포기하지 않고 ‘진실과 정의’를 모색하는 것이다. 아렌트가 2021년에 살아있다면 무엇이라고 할까. 나는 다음과 같이 말 할 것이라고 본다. “사유하라, 사유하라, 사유하라.”
 
강남순 텍사스 크리스천 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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