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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 의절 대신 손절한다, 사람이 자본이 됐으니까

중앙일보 2021.01.28 00:21 종합 25면 지면보기

인간 관계 ‘손절’의 경제학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 : 손절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 : 손절

“손절해야 할 친구 유형 10가지”부터 “부모님을 손절하고 싶다”는 고백까지, 바야흐로 ‘손절’의 시대다. ‘손절’이 주식의 손절매(損切賣, 매입가보다 떨어진 주식을 더 떨어지기 전에 손해를 감수하고 파는 것)에서 비롯된 말임을 알면 어떤 때는 듣기 불편하다. “학대 부모라면 ‘절연’할 수 있지만 ‘손절’한다고 표현하면 이상하지 않아? 친구와도 ‘절교’라는 말이 있는데 왜 맨날 ‘손절’한다고 하지? 사람이 주식도 아니고”라고 투덜거리자 20대 후배가 놀라며 말했다. “손절이 그런 뜻이었어요? 손을 털 듯 관계를 털어내서 손절인 줄 알았어요!”
 

손절은 본래 주식의 손절매
인간 관계에도 투자 수익 따져
사람을 자본으로 보는 세태 반영
‘합리적 결정’ vs ‘인간 도구화’

이제는 ‘손절’의 본래 의미를 모르고 쓰는 사람도 많은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이 단어를 인간관계에 적용한 이들은 그 뜻을 잘 알고 썼을 것이다. 물의를 빚은 정치인이나 연예인의 경우, 그들과의 관계를 일종의 투자처럼 관리해온 당이나 기업이 손절한다는 표현은, 경제학적으로 인적 자본(human capital) 이론을 깔고 볼 때 틀린 표현이 아니다.
 
손절은 경제학의 ‘매몰비용(sunk cost)’ 개념과 관련이 있다. 매몰비용은 이미 지출한 비용으로서 향후 어떤 선택을 해도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가리킨다. 따라서 어떤 결정을 할 때 매몰비용을 따지면 비합리적인 것이 된다.
 
내게 매몰비용을 각인시켜 준 것은 경제학부 시절 친구였다. 우리는 점심시간 후생관 식당에서 긴 줄을 선 끝에 배식대에 접근하고 있었다. 불행히도 내가 노리던 돈가스가 우리 앞에서 똑 떨어졌고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친구는 포기하고 다른 메뉴로 하자고 했고, 나는 “지금까지 줄 서서 기다린 게 아까워서 못 한다”고 오기를 부렸다.
 
그러자 친구는 준엄하게 말했다. “우리는 경제학도다. 지금까지 서서 기다린 건 매몰비용이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앞으로의 비용)와 돈가스의 맛있음(앞으로의 효용)을 비교해서 그래도 더 기다리겠다고 한다면 나도 너의 결정을 따르겠지만, 매몰비용은 고려해선 안 된다.” 그 말에 감동하여, 나는 돈가스를 포기했다. 그 친구는 지금 경제학 교수가 되어있다.
 
그 후 나는 문화 소비에서도 ‘손절의 왕’이 됐다. 처음에 재미있게 보던 연재 웹툰·드라마도 어느 순간 재미가 없어지면 가차없이 끊어버리게 됐다. ‘지금까지 본 게 아까워서 계속 본다’ ‘정으로 본다’ 같은 건 내 사전에 없는 말이다.
 
그러나 인간관계를 매몰비용과 손절의 차원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기에, 몇 년 전 인터넷에서 20년 베프를 절교가 아니라 ‘손절했다’고 쓴 글을 처음 봤을 때 다소 충격적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었고, 친구의 생일과 경조사를 물심양면으로 정성껏 챙겨왔는데, 친구는 전혀 그렇지 않았으므로, 그동안 쓴 시간과 감정과 돈이 아깝지만 ‘과감히 손절’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여기서 ‘손절’의 본래 의미를 알고 사용했다. 그를 포함한 현대인은 인간관계에서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요소를 포함한 투자와 수익을 무의식적으로 따지고 있는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게리 베커(1930~2014)의 ‘인적 자본 이론’과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베커에 따르면 ‘나’라는 ‘자본’에 물질적·비물질적으로 투자해서 얻은 수익은 연봉과 지위부터 주관적 자기 만족까지 포함하며, 그 수익으로 ‘나-자본’은 증대된다. 대학원에 갈 것인가(교육), 헬스클럽을 다닐 것인가(건강 및 외모 관리), 새 소셜 미디어 계정을 열 것인가(인맥 관리 및 자기 홍보) 등등이 ‘나-자본’을 불리기 위한 투자 결정인 셈이다.
 
이 이론을 타인과의 관계에 응용해보면, ‘20년 베프 손절’의 글쓴이는 친구라는 ‘자본’에 시간과 감정 노동과 선물 등을 ‘투자’해서 친구가 주는 정신적 위안 및 물질적·정신적 도움이라는 ‘수익’을 거두고자 했지만 계속 마이너스 수익이 나올 상황이니 지금까지의 투자를 매몰비용으로 생각하고 손절한 것이다.
 
미국에서 인적 자본 이론이 처음 나왔을 때, 유럽의 철학자들은 인간이 노동자인 동시에 ‘나’라는 자본을 경영하는 자본가가 되어 노동 대 자본의 이분법을 벗어나는 것에 흥미를 보이면서도, 이 이론이 인간의 도구화 및 상품화를 조장한다고 우려했다. 특히 현대 철학의 거두 미셸 푸코(1926~1984)는 베커의 인적 자본 이론이 모든 인간 행위와 모든 사회 현상을 경제학과 시장의 영역으로 흡수하는 신자유주의의 신호탄이라고 보았다.
 
‘그게 나쁜 건가’라고 반박할 수 있다. 경제학적 의사 결정은 집단의 관습에 의해, 또는 자신의 관성에 의해, 부당하게 지속되어 온 인간관계를 단호하게 정리하거나 교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얌체 같은 ‘20년 베프’부터 자신을 부당하게 대우하는 연인이나 배우자나 그 친척과의 관계까지. 하지만 문제는 인간관계에서 ‘손절(매)’의 개념을 일상적으로 쓰다 보면, 철학자들이 우려한 대로 은연중에 인간을 물화(物化)하고 도구화하는 사고에 익숙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불교적 ‘절연(絕緣)’이나 유교적 ‘의절(義絕)’ 대신 자본주의적 ‘손절’을 쓰는 시대. 이제 그 명암을 돌아볼 때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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