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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간 한국에 할리우드를 심다

중앙일보 2021.01.28 00:03 종합 18면 지면보기
박효성 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사장은 “영화는 정답 없는 문제풀이 과정”이라며 “31년이란 긴 시간이 지금은 마치 영화같다. 제 지식과 경험을 필요한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했다. 사진 배경은 그가 배급했던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 포스터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박효성 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사장은 “영화는 정답 없는 문제풀이 과정”이라며 “31년이란 긴 시간이 지금은 마치 영화같다. 제 지식과 경험을 필요한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했다. 사진 배경은 그가 배급했던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 포스터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990년대를 풍미한 ‘죽은 시인의 사회’, ‘귀여운 여인’, ‘보디가드’부터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천만 영화 ‘인터스텔라’까지 흥행의 중심엔 이 남자가 있었다. 할리우드 영화 직배사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출범 이듬해인 90년 입사해 지난달 은퇴할 때까지 31년간 일한 박효성(65) 전 사장이 주인공이다.
 

박효성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전 사장
‘원더우먼1984’ 등 영화 352편 배급
“톰 크루즈 처음 한국 방문했을 때
전투기 타고 싶다 해서 태워줬죠”

지난 6일 중앙일보와 만난 그는 지난 31년을 “도전의 연속”이라고 했다. 지난달 개봉한 마지막 작품 ‘원더우먼 1984’까지 그간 배급한 영화가 352편. 스크린쿼터, 한국 멀티플렉스 시대를 거치며 ‘매트릭스’, ‘해리 포터’, ‘배트맨’ 시리즈 같은 프랜차이스 영화 신드롬을 일으켰다.
 
아홉 번 내한한 할리우드 스타 톰 크루즈의 최초 방한을 성사시킨 것도 그다. 94년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때다. “일정을 마치고 갑자기 전투기를 타고 싶다고 해서 미 대사관까지 백방으로 알아봐 미군 오산비행장에서 태워줬죠. 친필로 ‘고맙다. LA 오면 연락하라’고 편지를 주더군요.”
 
직배사 초기엔 지금으로선 상상도 못 할 일이 많았다. 영화 제목에 영어를 못 쓰던 시절,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풀 메탈 자켓’의 원제를 지키려고 진땀을 뺐다. 공연윤리위원회가 ‘국민 정서에 안 맞다. 잘라라’고 하면 잘라야 했던 엄혹한 검열의 시대도 지나왔다.
 
영화 디지털화도 큰 사건으로 꼽았다. “그전엔 미국에 가서 20㎏짜리 필름 수백개를 들고 와선 하나하나 자막까지 쳐야 했죠. 필름을 갖고 온 마지막 영화가 2013년 ‘잭 더 자이언트 킬러’이니 디지털화가 된 지도 얼마 안 지났어요.”
 
박 전 사장은 입사 4년만인 94년 사장 승진 후 매해 본사와 한국시장에 맞는 영화를 상의하고 개봉전략을 짰다. 워너브러더스는 또 김지운 감독의 ‘밀정’(2016)을 시작으로 ‘마녀’, ‘장사리:잊혀진 영웅들’, ‘조제’ 등 한국 영화 11편의 투자·배급도 했다.
 
2007년 딕 파슨스 타임워너 회장이 방한했다.
“설립 초기 워너브러더스 코리아는 글로벌 마켓에서 미미했다. 2000년대 들어 전 세계 15위에 들었고 지금은 5위까지 성장했다. 파슨스 회장이 방한해 특별한 전달사항 없이 ‘앞으로도 잘해달라’고 했다. 직원들이 선물한 소주 한병이 지금도 파슨스 회장의 서재에서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놓여있다고 들었다.”
 
한국이 세계적 영화시장으로 주목받은 계기는.
“멀티플렉스가 등장하고 많은 자본이 영화에 투입됐다. 관객이 더 편하게, 더 좋은 시설로, 가까이서 영화를 즐기게 만든 점이 결정적이다.”
 
놀런 감독의 영화는 한국에서 특히 사랑받았다.
“놀런 감독이 ‘인터스텔라’ 성공 이유로 ‘한국 관객 수준이 매우 높아서’라고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동의한다.”
 
워너 시리즈물 중 최고 흥행작은.
“‘해리 포터’다. 모든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수익이 좋았다.”
 
지난해 2월로 예정했던 은퇴를 연말로 미룬 건 코로나19 때문이다. 지난해 관객이 급감하면서 워너브러더스 코리아도 매출이 약 70% 줄었다. 그는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를 떠올렸다. “한 사람이 세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고 그 사람이 다시 세 사람에게 친절을 베푼다면 결국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죠.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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