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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안 한다 천명해야”…‘지자체장 성범죄’ 차단 숙제 던진 인권위

중앙일보 2021.01.26 13:35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왼쪽), 오거돈 전 부산시장(가운데),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연합뉴스·뉴스1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왼쪽), 오거돈 전 부산시장(가운데),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연합뉴스·뉴스1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5일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희롱 등 직권조사 결과 발표에서 박 전 시장의 성폭력, 동료들의 묵인·방조 여부 등 진상 규명과 함께 자치단체장의 성폭력을 막기 위한 제도 보완이란 숙제를 던졌다. 
 
지역 권력의 정점에 있는 자치단체장의 성폭력 문제가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대두한 것은 2018년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비서 성폭행 사건이 불거지면서다. 안 전 지사는 비서를 성폭행·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돼 2019년 9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선출직이라 상급기관, 제재 규정 없어 

 
 지난해 4월에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여성 공무원 추행 사실을 인정하고 사퇴했다. 오 전 시장은 강제추행 혐의로 불구속 상태에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어 지난해 7월 박 전 시장이 여성 비서에게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고소당했으며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인권위는 지자체장이 성희롱 가해자일 때 당사자 사퇴나 처벌 외에 행위를 제재할 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피해자가 내부 성희롱 고충처리시스템을 이용한다 해도 현실적으로 비밀 유지가 어려우며 공정한 조사를 기대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지난 25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인권위는 전원위원에서 전 서울시장 성희롱 등 직권조사 결과보고를 의결 안건으로 상정해 논의한다. 사진공동취재단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지난 25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인권위는 전원위원에서 전 서울시장 성희롱 등 직권조사 결과보고를 의결 안건으로 상정해 논의한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처럼 특정 집단에서 제왕적 권력과 절대적 인사권을 지닌 지자체장의 성폭력을 막기 위해 인권위가 내놓은 방안은 인권위를 포함해 독립적이고 전문성을 갖춘 외부기관이 사건을 조사하는 것이다. 인권위는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이와 관련한 조처를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또 다른 방안은 자율규제다. 인권위는 “상급기관이 없는 지자체장은 성희롱·성폭력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 성평등한 조직문화 정착을 위한 원칙을 천명하는 선언이나 입장 표명으로 자정 능력을 키워야 한다”며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가 이런 자율규제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도지사협의회 “인권위 의견 검토”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측은 이와 관련해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지만, 협의회장인 송하진 전북지사 측은 “시도지사들과 인권위 의견을 신중히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지자체장에 의한 성희롱·성폭력 사건 매뉴얼을 새롭게 마련했다. 사건을 인지하는 즉시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이 여성가족부의 ‘기관장 사건 전담 신고창구’에 통지해 경찰이 수사하거나 인권위가 조사하게 한다는 방안이다. 
 
 아울러 서울시는 지자체장의 사건 신고 접수 시 직무배제 요건과 절차를 법적으로 마련할 수 있게 중앙정부에 법령 개정을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4월 완료를 목표로 이런 내용을 담은 ‘서울특별시 성희롱‧성폭력 예방규칙’ 제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여가부에 법령 개정을 건의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 등 8개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7월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위력에 위한 성폭력 사건의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 촉구 거리 행진을 벌인 뒤 서울 저동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 등 8개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7월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위력에 위한 성폭력 사건의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 촉구 거리 행진을 벌인 뒤 서울 저동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하지만 현재까지 나온 방안에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도 제기된다. 박 전 시장 사건의 피해자 측은 전날 인권위 발표에 관해 “제도 개선 권고가 구체적이기보다 화두를 던지는 편에 가깝다”며 “예를 들어 지자체장에 의한 성폭력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자율규제’를 든 것은 실효성 있는 권고가 아닐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 “실효성 의문, 조직 인식 개선 중요”

 
 장윤미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변호사) 역시 “자정 능력을 키울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며 “지자체장은 선출직 공무원이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임기가 보장되며 인사권도 갖고 있어 자율에 맡겨 이 문제를 근절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장 변호사는 “이번 사건에서 법적으로 묵인이 아니라고 하지만 피해자는 묵인·방조라고 생각하는 것 아니냐”며 “당연히 제도 마련이 필요하지만, 조직 안에서 성 관련 문제는 인식 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인권위는 박 전 시장의 성적 언동이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발표했으며 여기서 성희롱은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에 따라 언어와 행동, 고용상 불이익을 주는 행위 등을 모두 포함한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인권위 발표에 따른 공식 입장을 26일 오후 밝힐 예정이다. 
 
최은경·김준희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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