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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 불행, 또 고아야?" 보호끝난 열여덟 어른의 한숨

중앙일보 2021.01.24 09:00
 
 

[밀실] 2021 신(新) 가족의 탄생
<3회> '보호종료 아동'들의 자립기

보호종료아동 출신 신선씨의 어릴 적 모습. 보육원에서 생일파티를 하고있다. 본인 제공

보호종료아동 출신 신선씨의 어릴 적 모습. 보육원에서 생일파티를 하고있다. 본인 제공

“드라마 〈펜트하우스〉에 보육원 출신 등장인물이 나오는데 범죄에 빠지다가 결국 사람 손에 죽어요. '고아면 살려고 노력해도 불행할 수 밖에 없다'는 식의 이야기 전개가 불편했죠. 드라마에 고아가 나오면 우리끼리 이렇게 말해요. '또 고아야?'”  

 
‘보호종료 아동’이었던 신선(28)씨의 이야기입니다. 아동복지법이 정한 양육시설이나 위탁가정의 보호로 받았던 아이들은 만 18세가 되면 보호시설을 떠나야 하는데요. 
 
보호기간이 끝나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독립해야하는 이들이 바로 보호종료 아동이에요. 일부는 신씨처럼 보호 연장제도를 통해 대학교 졸업까지 마치고 양육보호소를 나오기도 하죠. 
 
보호대상아동 발생 원인. 이시은 인턴

보호대상아동 발생 원인. 이시은 인턴

신씨는 부모의 이혼 후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9살이 되던 해에 보육원에 맡겨졌죠. 밀실팀이 만난 김요셉(24)씨도 조현병을 앓고 계셨던 어머니의 품을 떠나 양육시설에 생활했습니다. 그도 보호종료 아동이죠.
 
이들 모두 “모든 것을 공유하는 보육원에서 나갈 날만 손 꼽아 기다렸는데, 막상 홀로 사회에 나간다하니 두려움이 컸다”고 했어요. 가족없이 홀로서기를 시작한 이들, 보호종료 아동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보호종료 아동'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조언 구할 어른이 없어서…"

김요셉씨가 보육원 시절 친구들과 찍은 사진. 본인 제공

김요셉씨가 보육원 시절 친구들과 찍은 사진. 본인 제공

“응급실에 갔는데 입원치료하려면 보호자의 서명이 있어야한다는 거예요. 너무 아픈데 이 와중에 누굴 불러야할까 고민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자립 3년차, 요셉씨에게 '자립 후 가장 힘들었던 때'를 묻자 이렇게 답했습니다. 당시 그는 병원 측에 "내가 성인인데 동의 서명을 직접하면 안되냐고 물어봤다"고도 전했습니다. 요셉씨는 “성인이라고 사회에 나왔지만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어 갑갑한 마음뿐이었다”고 털어놓더군요.
 
신씨에게도 가족이란 울타리 없이 홀로서는 일은 고단했습니다. 그는 "조언을 구할 어른이 없었다"는 게 아쉬웠다고 해요. “처음 집을 구했을 당시 고지서가 뭔지도 몰랐다. 계약할 땐 없던 관리비를 갑자기 내라고 연락이 오는데 누구한테 뭐라고 물어야하나 난감했다”고 털어놨습니다. 학교도, 양육보호소도 알려주지 않는, 자립을 위한 팁과 노하우를 나눌 누군가가 필요하단 얘기입니다.   
 
밀실팀과 인터뷰하고 있는 김요셉씨. 이진영 인턴

밀실팀과 인터뷰하고 있는 김요셉씨. 이진영 인턴

 
아동권리보장원에 따르면 보호종료아동은 2019년 한해 2587명에 이릅니다. 매년 2500명이 넘는 ‘열여덟 어른’이 사회에 나오는 거죠. 
 
물론 홀로서기는 녹록지 않습니다. 보호종료 시점 이들에게 제공되는 건 500만원가량의 자립정착금과 3년 간 매달 30만원 수준의 자립수당 정도입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주택 임대 등을 일부분 지원하고 있지만, 2018년 기준 보호종료아동의 33.4%만이 주거관련 정부 지원을 받았죠.
 
그러다보니 불안정한 여건에 머무는 이들도 적지 않아요. 한국사회보장정보원 자료(2019년)에 따르면 시설에서 퇴소한 이들 4명 중 1명은 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으로 파악됐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통해 홀로서기 서로 돕기

보호종료아동 출신 신씨는 보육원을 돌아다니며 자립에 필요한 정보를 주는 강의를 하기도 한다. 본인 제공

보호종료아동 출신 신씨는 보육원을 돌아다니며 자립에 필요한 정보를 주는 강의를 하기도 한다. 본인 제공

보다못한 신씨가 나섰습니다. 자립 초기 본인이 겪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정보공유 커뮤니티를 만들었는데요. 블로그를 통해 보호종료 아동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공유하고 고민을 상담했습니다. 대학에 진학한 보호종료 아동을 위해 각종 장학금 프로그램이나 LH 주거혜택에 관한 정보를 모아 올리고 있습니다.
 
'자립지원 활동가'를 자처하는 신씨가 제공한 정보는 실제로 보호종료 아동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신씨의 블로그엔 그가 올린 정보 덕분에 장학금 지원을 받게 됐다는 감사의 댓글이 계속 올라옵니다. 신씨는 "장학재단 신청서 작성에 대해 조언해준 친구가 '합격했다'고 알려올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밀실팀과 인터뷰하고 있는 신선씨. 이진영 인턴

밀실팀과 인터뷰하고 있는 신선씨. 이진영 인턴

요즘 신씨는 아름다운 재단과 함께 팟캐스트와 유튜브 콘텐트도 제작하고 있죠. 'LH청년전세임대주택 신청을 이사 예정일 3달 전에 해야하는 이유', '낯선 보육원생활의 시작'처럼 보호종료 아동의 자립을 위한 꿀팁과 격려가 담겨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요셉씨도 신씨의 도움을 받은 이들 중 한 명입니다. 그도 신씨의 블로그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댓글을 남긴 이들에게 정보와 조언을 주고 있습니다. 요셉씨는 “형보다 더 잘할 수는 없겠지만 형에게 도움을 받았으니 나도 친구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했습니다.
 

"자립 위한 '중간지대' 마련해야"

밀실팀과 인터뷰하고 있는 신선씨와 김요셉씨. 이진영 인턴

밀실팀과 인터뷰하고 있는 신선씨와 김요셉씨. 이진영 인턴

우리 사회엔 보호종료한 이들을 향한 인식도, 이들의 위한 지원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박명숙 상지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자립 경험이 부족한 상태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양육보호소와 자립, 둘 사이에 중간적인 생활지대를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실제로 강원도에 있는 자립기반시설 라움은 보호종료 아동이 사회복지사와 함께 2년가량 무상으로 거주합니다. 박 교수는 "라움과 같은 거주공간을 제공해 자립에 대한 정보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 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밀실팀이 만난 신선씨, 요셉씨는 가족을 대신하는 새로운 울타리를 통해 서로의 홀로서리를 돕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을 "가족이 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가족은 누군가 힘들 때 정신적으로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존재 아닐까요? 그래서 저에게 가족은 친구들과 사회복지사 선생님이라고 생각해요. 제 주변에 가족이 정말 많은거죠.”(김요셉)

 
최연수·박건·윤상언 기자 choi.yeonsu1@joongang.co.kr
영상=이시은·이진영·조예진 인턴, 백경민 
밀실은 '중앙일보 레니얼 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도있는 착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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