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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재정이 화수분이냐” 자영업 ‘손실 보상제’ 브레이크

중앙선데이 2021.01.23 00:43 721호 3면 지면보기
정세균 국무총리(오른쪽)와 홍남기 부총리가 지난 12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며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정세균 국무총리(오른쪽)와 홍남기 부총리가 지난 12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며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당·정이 강력하게 추진 중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 자영업자 손실 보상제 법제화에 대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22일 또 다시 반기를 들었다. 홍 부총리는 이날 페이스북에 손실 보상 제도화 방안과 관련 “부처 간, 당·정 간 적극적으로 협의하고 지혜를 모으겠다”면서도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기 때문에 재정 상황, 재원 여건도 고려해야 할 중요한 정책 변수 중 하나라는 점을 늘 기억해야 할 것”이라는 요지의 글을 남겼다.
 

여당 법제화 속도전에 반기
“가보지 않은 길 짚어볼 것 많아
내년 국가채무 1000조원 넘어”

“기재부 나라냐” 정세균 질타에 반박
민주당 “국민들 피눈물 외면” 발끈

재정 지출에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여당 의원들의 비판을, 특히 전날(21일)엔 정세균 국무총리로부터도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는 질타를 받은 상황에서 나온 반박이었다. 22일은 더불어민주당이 최고위원회의에서 연내에 손실 보상제 입법을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은 날이기도 하다.
 
홍 부총리는 “영업 제한 손실 보상에 대한 입법적 제도화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미 몇몇 의원님께서 입법 초안을 제시한 상태이기도 해 기재부도 어떠한 형태로든지 대응이 필요하다고 보고 내부 점검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이와 관련해선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어서 정말 짚어볼 내용이 많았다”고 적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사실 국가 재정은 녹록하지 않다. 지난해 500조가 넘는 수퍼 예산에다 4번에 걸친 추가경정예산까지 더해 국가채무는 147조3000억원 늘며 역대 가장 큰 증가폭을 보였다. 올해도 코로나19 피해 복구를 위해 558조의 예산을 편성했다. 홍 부총리는 “적자 국채 발행이 지난해 약 104조원, 올해 약 93조5000억원, 내년에도 10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고 국가채무 총액은 내년 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홍 부총리는 또 “국가채무의 증가 속도를 지켜보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 국가신용등급 평가기관들의 시각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며 “과도한 국가채무는 모두 우리 아이들 세대의 부담이고 나중을 위해 가능하다면 재정 여력을 조금이라도 축적하는 것도 지금 우리가 유념해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홍 부총리는 어려운 재정 상황을 이유로 들어 법제화 과정에서 재정 당국의 입장을 반영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가능한 도움을 드리는 방향으로 검토하겠지만 혹여나 입법적 제도화와 관련하여 재정 당국으로서 어려움이 있는 부분, 한계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 알려드리고 조율하는 노력을 최대한 경주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21일까지만 해도 기재부는 여권 기세에 눌렸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가능하면 상반기까지 (손실 보상제 관련) 입법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한 데 대해 김용범 기재부 제1차관은 “해외에서 (자영업자 손실 보상제를) 법제화한 나라는 찾기가 쉽지 않다”고 난색을 표했다. 그러자 정 총리는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 “기재부는 저항 세력”이라며 거세게 몰아붙였다. 2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정 총리는 아예 법제화를 검토하라며 기재부에 공식 지시하기도 했다. 이에 김 차관은 “제도화 방안을 상세히 검토해서 국회 논의 과정에 임하겠다”며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런데 하루 만에 기재부 수장인 홍 부총리가 재정 부담을 이유로 “어려운 부분, 한계를 알리고 조율하겠다”며 다시 ‘브레이크’를 걸었다.
 
정 총리나 민주당 측에서 홍 부총리 글에 대한 공식적인 대응은 없었다. 총리실 관계자도 “글의 전체 맥락을 보면 홍 부총리도 결국은 제도화를 하겠다는 것 아닌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 등 자극적인 표현에 여당 내부는 많이 불편해했다. 화수분은 재물이 끝없이 나오는 설화 속의 보물단지를 뜻하는데, 홍 부총리가 ‘나랏돈을 무한정 쓸 수 없다’는 의미로 이 표현을 계속 반복하자 민주당 내부에선 발끈하는 분위기다. 허영 대변인도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손실보상제는 대통령·국무총리·여당·야당 모두가 공감을 이뤄 법제화를 하는 중인데 기재부가 재정만을 우려해 피눈물 흘리는 국민들의 고통을 외면하려하니 정말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손실 보상제 법안을 냈거나 발의 예정인 의원들도 비판을 냈다. 이날 국회에서 손실보상제 입법 관련 기자회견을 한 민병덕 민주당 의원은 회견 후 홍 부총리 화수분 발언 관련해 “국가 재정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걸(손실 보상) 하는 건 시혜가 아니라 국가의 의무”라고 반박했다.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지사 측 기류도 비슷했다. 이 대표와 가까운 호남 지역구 다선 의원은 “코로나로 다들 워낙 힘드니 손실 보상을 하자는 것이지 정부 재정이 충분하다고 판단해 추진하는 게 아니다. 소상공인들이 당장 숨 넘어가기 직전인데, 홍 부총리가 사려 깊은 판단을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지사와 가까운 한 수도권 초선 의원도 “기재부가 계속 국가재정 살림을 자기들만 생각하는 것처럼 말한다. 전 세계가 코로나 대응을 위해 재정확대 정책을 펴고 있는데 우리 기재부만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주장했다.
 
현재 여야에선 10개 가까운 자영업 손실 보상제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다. 민병덕 민주당 의원이 발의할 안에 따르면 손실 매출액의 50%(일반 업종)에서 최대 70%(집합 금지 업종)까지 보상하는데 4개월 기준 98조8000억원이 든다. 올해 보건·복지·고용 예산(199조7000억원)의 절반에 이른다. 강훈식 민주당 의원은 최저임금·임대료의 20%를 지원하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인데, 이 역시 한 달 1조2370억원, 연간으로는 14조8440억원이 소요된다.
 
홍 부총리가 일단 제동을 걸었지만 오는 4월 지방자치단체장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여당이 법제화 추진 자체를 덮을 가능성은 작다. 결국 재정 당국의 요구가 얼마만큼 반영될지가 관건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자영업 지원금의 경우 상황에 따라 신속하고 탄력적으로 유연하게 지급하는 게 맞는데, 위법 상황을 피하려고 법제화 과정에서 경직적으로 짜일 우려가 크다”며 “피해 상황에 따라 정확히 지원할 수 있도록 소득·매출을 파악하는 게 우선인데 법제화만 너무 서두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조현숙·김남준 기자, 김준영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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