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에디터 프리즘] 부동산 정책의 인지부조화

중앙선데이 2021.01.23 00:26 721호 31면 지면보기
김창우 사회 에디터

김창우 사회 에디터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는 1957년 유명한 인지부조화 실험을 했다. 참가자에게 전혀 의미가 없고 지루한 일을 시킨 뒤 다음 실험 대상자에게 재미있는 일이라고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한 그룹에는 보수로 1달러를, 다른 그룹에는 20달러를 줬다. 실험을 마치고 단순 반복작업이 정말로 재밌었는지 물었다. 놀랍게도 1달러 그룹은 20달러 그룹보다 ‘사실 꽤 의미 있고 재밌었다’라고 답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지겨운 작업이었다는 ‘인지’와 재밌다고 설명한 ‘행위’가 일치하지 않자 자신의 거짓말을 인정하는 대신 실제로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스스로를 설득한 것이다. 인지부조화를 극복하기 위한 자기합리화다.
 

정부의 현실 부정이 시장을 흔들어
실패 인정한 대통령, 대책 내놓을까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은 인지부조화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 2017년 서울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자 총부채상환비율(DTI)과 담보인정비율(LTV) 강화(6·19 대책)한 데 이어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와 분양가상한제를 도입(8·2 대책)했다. 김수현 당시 청와대 사회수석은 다주택자를 겨냥해 “집 팔 기회를 드리겠다”고 말했다. 지지자들은 “이니형 고마워, 상투 잡을 뻔했어”라고 기뻐했다. 아파트 공급이 막혀 오히려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전문가의 지적은 무시했다.  다주택자 때리기는 이어졌다. 이듬해 9·13 대책(종합부동산세 강화, 공시지가 현실화), 2019년 12·16 대책(보유세, 양도소득세 강화)을 통해 중과세가 이뤄졌다. 공급물량 부족이라는 현실을 인정하는 대신 ‘투기꾼’이라는 프레임으로 다주택자를 겨냥한 것이다. 징벌적 과세로 물량만 잠겨 폭등을 부를 수 있다는 전문가의 우려는 역시 묵살했다. 잘못된 진단 탓에 아파트값 상승세는 서울에서 수도권으로, 고가 아파트에서 중저가 주택으로 번져 나갔다. 하지만 정권의 인식은 바뀌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지금 부동산 시장은 상당히 안정되는 것 같다”(2020년 1월 신년사)고 말했다.
 
인지부조화는 지난해 6·17 대책에서 절정을 이뤘다. 종부세를 더 강화하고 전월세상한제(임대료 상승폭 5%로 제한), 계약갱신청구권(계약 종료 후 2년간 더 살 권리)을 도입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고가 주택 주인들이 세금 인상을 세입자에게 전가하는 것을 막으려면 임대차 3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7월 30일 국회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본회의를 통과하자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매물이 자취를 감추면서 전세값이 급등했고, 오른 전세는 매매가를 자극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부동산 정책을 비웃는 작전세력이 있고,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어떤 정책도 뒷북이 될 수밖에 없다”며 “부동산 급등을 전적으로 정부 탓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라고 주장했다.
 
변화가 시작되는 것일까. 지난 18일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투기 차단에 역점을 두었지만, 결국 부동산 안정화에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번 정부 들어 처음으로 부동산 정책 실패를 인정한 것이다. 그 원인으로 인구가 감소하는데도 61만 세대가 늘어난 점을 꼽았다. 중과세와 규제만 언급하던 과거와는 달리 ‘특단의 공급대책’과 이를 위한 ‘인센티브 강화’를 대책으로 언급한 부분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기존의 투기억제 기조와 공공 주도의 역세권 고밀도 개발을 유지하겠다는 대목에서는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시민들이 원하는 ‘역세권 대단지 신축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 대신 원룸형 임대주택만 잔뜩 짓겠다는 얘기 아닌가. 다주택자를 마녀로 몰고, 실수요를 투기로 몬 결과가 지금의 아파트값 급등, 전세 대란을 불러왔다는 아픈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설 전에 내놓는다는 특단의 대책은 또 하나의 공염불이 될 것이다.
 
김창우 사회 에디터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