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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리 "감추고 싶던 나", 장윤주 "큰언니 생각에 눈물" 영화 '세자매'

중앙일보 2021.01.22 15:00
왼쪽부터 장윤주·문소리·김선영이 뭉친 가족영화 ‘세자매’. [사진 리틀빅픽처스]

왼쪽부터 장윤주·문소리·김선영이 뭉친 가족영화 ‘세자매’. [사진 리틀빅픽처스]

27일 개봉하는 이승원 감독의 가족 영화 ‘세자매’는 한국영화론 드물게 40대 자매들의 속사정을 새겨낸 작품이다. 러시아 문호 안톤 체호프가 1901년 발표한 동명 희곡에서 격동의 시대 속에 무기력한 인물들을 꿰뚫었던 시선을 닮았달까. 5년 전 전작 ‘소통과 거짓말’로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넷팩상‧올해의 배우상(장선) 등을 수확한 이승원 감독이 당시 올해의 배우상 심사위원이던 문소리(47)에게 작품을 제안해 문소리가 공동 프로듀서도 맡았다.
 

전주·부산영화제 화제작 ‘세자매’ 개봉
아버지 생신날 폭발한 40대 자매들
문소리·김선영·장윤주…현실 자매 호흡
제작 겸한 문소리 “그 옛날 가부장 되짚어
다른 세대 고통 이해하며 같이 살아가야”

주연을 겸한 문소리는 “감독이 연출한 연극까지 전작을 다 봤는데 굉장히 급진적인 작품이었지만 그 속에 상처받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함을 느꼈다. 자매들의 이야기로 전작보다 더 관객한테 다가간다면 좋을 것 같다는 믿음이 있어 선택했다”고 했다. 이 감독과 함께 극단을 이끌어온 아내이자 배우 김선영(45), 첫 영화 ‘베테랑’(2015)이 1000만 관객을 모았던 모델 출신의 장윤주(41)가 문소리와 현실 자매인 양 호흡 맞춰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에 잇따라 초청됐다.  
 

아버지 생신날 폭발한 중년 세자매 민낯

영화는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던 자매들이 아버지 생신 모임을 앞두고 터져 나오는 과거 상처를 그렸다. 어딘가 존재할 듯 생생한 중년 자매들의 민낯은 우리 각자가 감춰온 삶의 지리멸렬함을 까발리는 듯하다. 자매 없이 남동생 뿐이라는 문소리마저 “이 캐릭터가 내면적으론 굉장히 저 같은 면이 있었다. 감추고 싶은 부분이었다. 처음엔 반갑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캐릭터와 실랑이를 벌였지만 나중엔 나오기가 조금 힘들 만큼 깊이 들어갔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19일 화상 인터뷰에서다.
그가 연기한 둘째 미연은 교회 집사이자 성가대 지휘를 하며 교수 남편, 두 아이와 번듯한 아파트에서 행복을 과시하듯 산다. 늘 “괜찮다” “미안하다”는 말로 상처받은 본심을 감추는 첫째 희숙(김선영)은 매번 돈만 뜯어가는 남편에겐 자신이 암이란 말도 못 하고 같이 사는 딸에겐 자해하는 모습까지 들키고 만다. 거의 백수인 극작가 셋째 미옥(장윤주)은 매일 술에 취해 언니 미연한테 “나는 쓰레기”라 푸념한다.  
 

장윤주 “실제 세자매…큰언니 생각나 울었죠”

장윤주는 이번이 '베테랑'(2015)에 이어 단 두 번째 출연한 영화다. 이혼남과 결혼한 셋째 미옥 역을 맡아 남편이 전처와 낳은 고등학생 아들에게 다가가려 애쓰는 엄마를 연기했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장윤주는 이번이 '베테랑'(2015)에 이어 단 두 번째 출연한 영화다. 이혼남과 결혼한 셋째 미옥 역을 맡아 남편이 전처와 낳은 고등학생 아들에게 다가가려 애쓰는 엄마를 연기했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20일 화상 인터뷰로 만난 김선영‧장윤주도 이 영화가 바늘처럼 꿰뚫어낸 저마다의 기억을 털어놨다. “저한테는 거의 엄마 같은 네 살 위 친언니가 있다. 이 영화의 희숙은 짐이 되는 첫째인데도 동생들을 만나면 무한히 걱정하고 사랑하고 표현이 그렇게 되더라. 연기하며 ‘우리 언니가 나를 이렇게 사랑하는구나’ 느꼈다. 눈물 날 것 같았다”(김선영) “저는 실제로도 세자매인데 큰언니가 영화 속 첫째처럼 답답한 면이 있다. 항상 삭이고 사는 것 같아서 한번은 ‘좀 분출하면서 살라’면서 싸웠는데, 처음으로 언니가 소리를 질러 놀란 적 있다. 한시간 넘게 울고 이틀 뒤 제가 사과했는데 그때 감정이 살아나 영화 마지막 (가족이 모인) 식당 장면에서 진짜 눈물이 났다”(장윤주)고 했다.
 

가정폭력 생존자가 껴안은 트라우마

영화 '세자매'에서 가정불화를 무표정에 감춘 첫째 희숙에겐 기댈 곳이 없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영화 '세자매'에서 가정불화를 무표정에 감춘 첫째 희숙에겐 기댈 곳이 없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영화는 아버지 생신날이 다가오는 후반부로 갈수록 묵직한 주제를 드러낸다. 자매들은 남보기엔 아무렇지 않은 척 살지만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싶을 정도다. 그나마 여느 자매처럼 속내를 나누는 미연‧미옥과 달리 희숙은 영화 중반부가 돼서야 이들의 큰언니란 게 확연해진다. 심지어 이들은 세자매가 아닌 사남매다. 서걱대고 뒤틀린 관계의 뿌리로 거슬러가면 아버지의 외도와 가정폭력에 얼룩진 유년기 기억이 가시처럼 박혀있다. 어쩌면 지금 자매들의 불행이 어릴 적 가정폭력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자의 트라우마 같기도 하다.  
이 감독은 “사실 가정폭력이나 외도문제는 영화나 여러 이야기에서 너무 많이 쉽게 소모돼온 문제들인데 좀더 깊게 들여다보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면서 “사과를 좀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관계는, 특히 가족 간에 관계에서 진정한 사과는 많은 걸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문소리 “다른 세대 이해 안 간다고 고개 돌릴 순 없어”

신실한 교회 집사 역을 맡은 문소리는 "실제론 교회문화를 잘 몰라서 영화를 위해 교회를 다니며 성가대 지휘 등을 배워나갔다"고 했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신실한 교회 집사 역을 맡은 문소리는 "실제론 교회문화를 잘 몰라서 영화를 위해 교회를 다니며 성가대 지휘 등을 배워나갔다"고 했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문소리는 최근 사회문제로 대두된 아동학대와는 조심스레 선을 그었다. “미묘하고 어려운 문제지만 저희 영화는 심각한 아동학대를 소재로, 주제로 삼으려 한 영화는 아니”라면서 “그 옛날에 이런 아버지들이 꽤 많았다, 말할 수 있을 만큼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요즘과) 달랐던 아버지들, 가부장적 문화가 강했던 시절 이런 것들을 보편적인 측면에서 되짚었다”고 했다.  
또 가족에의 연민과 연대를 강조하는 결말에 대해선 “저분들은 왜 저런지 모르겠어, 생각할 때가 있어도 그렇게 다른 세대가 다 같이 살아가는 사회다. 이해 안 간다고 고개를 돌려버릴 수 없다”면서 “그분들 나름대로의 고통도 이해하면서, 아 그래도 이 마음을 서로 공감하는 자매들이 있으니 그래도 좀 낫지 않을까. 우리에게 앞으로 남은 숙제이기도 하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장윤주 “모델 내려놓고 과자 맘껏 먹었죠”

영화 '세자매' 촬영 현장에서 왼쪽부터 이승원 감독과 제작을 겸한 주연 배우 문소리, 배우 장윤주가 모니터 앞에 모였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영화 '세자매' 촬영 현장에서 왼쪽부터 이승원 감독과 제작을 겸한 주연 배우 문소리, 배우 장윤주가 모니터 앞에 모였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최근 독립영화 ‘메기’, 시네마틱 드라마 ‘SF8-인간증명’ 등 새 도전에 나선 문소리에 더해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동백꽃 필 무렵’, 영화 ‘내가 죽던 날’ 등 신스틸러로 주목받은 김선영의 진득한 감정연기도 볼거리다. 특히 캣워크를 걷던 화려한 모델의 모습을 내려놓고 과자를 달고 사는 지지리궁상 미옥으로 변신한 배우 장윤주는 이번 영화의 큰 수확이다. 직접 머리를 탈색하고 노란 점퍼 등 의상을 구해 캐릭터를 빚어냈다. “이렇게 큰 역할을 맡아도 될지. 나를 어디까지 내려놓을 수 있을지” 출연을 고민했다는 그는 이번 영화에서 “언니(문소리‧김선영)들과 연기의 즐거움, 캐릭터를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됐다”고 했다. 차기작인 영화 ‘1승’에선 아마추어 배구 선수, ‘시민덕희’에선 주연 라미란과 코믹하게 변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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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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