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할인해 36만원, 고통없어요" 낙태죄 사라지자 판치는 낙태약

중앙일보 2021.01.22 05:00
“고객님, 6년 넘게 정품만 취급하는 회사입니다.”
21일 소셜미디어(SNS)인 트위터 등에 ‘낙태약’ ‘미프진’이라고 검색하니 약을 판다는 광고가 여러 건 떴다. 한 판매업체에 익명 채팅으로 상담을 요청하자 임신 몇 주째인지, 산부인과에서 확인은 했는지 등을 묻더니 “7주 전 제품으로 이용하면 된다”며 “할인된 가격으로 36만원”이라고 했다. 부작용은 없는지 묻자 “올바른 복용 방법으로 복용하고 주의사항만 지키면 잘 해결할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약이 정품인지 확인했더니 “6년 넘게 정품만 취급하는 회사다. 절대 이런 일 갖고 장난치지 않는다“고 했다. “잘 해결될 때까지 관리해준다”라고도 강조했다. 

처방전 없이 온라인 구매
정부 “연내 판매 허가될 것”

낙태죄폐지전국대학생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해 11월 7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에서 정부의 ‘14주'와 ‘24주'로 쪼개어 개정안을 만든 ″주수제한 입법예고안의 완전 철회와 낙태죄의 완전 폐지를 요구하며 ″낙태죄 마침표″ 집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낙태죄폐지전국대학생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해 11월 7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에서 정부의 ‘14주'와 ‘24주'로 쪼개어 개정안을 만든 ″주수제한 입법예고안의 완전 철회와 낙태죄의 완전 폐지를 요구하며 ″낙태죄 마침표″ 집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무법 상태 미프진 불법 유통  

낙태죄가 사라진 후로 대체입법이 없는 공백을 틈타 불법 낙태약은 이처럼 암암리에 팔리고 있다. 업체들은 출처와 효능이 검증되지 않은 약을 팔며 “수술 고통 없이 안전하고 조용히 낙태할 수 있다”라고 홍보한다. “낙태가 깔끔하게 끝날 때까지 1:1 상담을 해주겠다”, “여러분의 건강을 지키겠다”며 구매를 유도한다. 
SNS에 올라온 낙태약 홍보 글. 사진 SNS 캡처

SNS에 올라온 낙태약 홍보 글. 사진 SNS 캡처

 
한 판매업체 사이트에는 주문서를 접수한다는 게시글이 줄을 이었다. 이 업체 후기 게시판에는 “인터넷에서 짝퉁이니 사기이니 말이 많아 걱정됐다”며 “여기처럼 믿음 가는 곳이 없어 구매를 결심했다”는 글도 보였다. 
 

“업체 한 곳과 논의 중, 연내 승인 기대”

SNS에서 검색된 미프진 판매 업체에 익명 채팅으로 상담을 요청하자 임신 7주 이내라면 36만원이라고 가격을 제시했다. 사진 SNS 캡처

SNS에서 검색된 미프진 판매 업체에 익명 채팅으로 상담을 요청하자 임신 7주 이내라면 36만원이라고 가격을 제시했다. 사진 SNS 캡처

지난해 정부는 먹는 약을 이용한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입법이 추진되면 미프진 등의 낙태용 약물을 과거와 달리 합법적 절차를 통해 이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미프진은 임신 초기 유산을 유도하는 약으로, 흔히 ‘먹는 낙태약’이라 불린다. 자궁을 수축하고 호르몬 생성을 억제해 인공유산을 유도한다. 그러나 아직 무허가 의약품인 만큼 판매는 물론 구매 또한 불법이다. 낙태약이 정식 유통되려면 신약처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품목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제약사가 수입 허가를 신청해야 하는데 현재까지 신청서를 낸 곳은 없다. 
지난해 대전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적발한 중국산 가짜 미프진. 연합뉴스

지난해 대전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적발한 중국산 가짜 미프진. 연합뉴스

 
식약처 고위 관계자는 “신청을 염두에 두고 있는 한 업체와 논의하는 중”이라며 “바로 허가를 신청할 수도 있고, 허가 심사 시 필요한 자료를 사전에 상담받는 사전 검토제도를 요청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통상 신약은 허가부터 심사를 거쳐 상용화까지 길게는 6개월가량 걸리지만, 최대한 신속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당국은 밝혔다. 앞선 관계자는 “보통 허가 신청이 들어온 순서대로 검토하게 되는데 여러 상황을 고려해 낙태약의 경우 신청되는 대로 다른 것보다 먼저 검토할 것”이라며 “상반기에 신청하면 연내엔 국내 판매 승인이 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낙태약 먹고 응급실 실려 오기도 

이러는 사이 한시가 급한 여성들은 음지에서 정품 여부를 알 수 없는 알약에 건강을 맡길 수밖에 없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의 2019년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를 보면 응답 여성 1만명 중 낙태를 경험한 여성은 756명이었다. 이 가운데 74명(9.8%)은 낙태약을 이용했다고 답했다. 식약처의 ‘의약품 온라인 판매 광고 적발 현황’에 따르면 낙태 유도제 적발 건수는 2015년 12건에서 2019년 2365건으로 200배 가까이 급증했다. 
임신부 이미지. 사진 pixabay

임신부 이미지. 사진 pixabay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응급의학과 의사 A씨는 “최근 극심한 복통과 출혈을 호소하는 여성이 실려 왔는데 검사해보니 임신이었다”며 “환자가 뒤늦게 임신 14주에 미프진을 먹고 낙태를 시도했더라. 제대로 낙태가 안 된 경우였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고 말했다. 한 여성은 인터넷에 “미프진을 복용한 지 10일 정도 지났는데 계속 출혈이 있다”며 “문제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고 썼다. 
 

“전문가 관리하에 안전하게 써야”

임신 초기인 6~10주 이내에 전문가 처방에 따라 안전하게 복용할 경우 수술 없이 낙태할 수 있지만, 부작용 위험이 큰 만큼 투약 결정부터 유산 완료 때까지 산부인과 의사 관리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신정호 고대 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잘 쓰면 기계적 낙태보다 안전할 수 있고, 환자 선택의 폭도 넓힐 수 있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자궁 외 임신 등 비정상 임신일 때 쓰는 것”이라며 “잘못 사용하면 출혈 과다로 심한 경우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 정상적인 진료 과정을 거친 뒤 안전한 주수에 써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9년 발표한 인공임신중절 현황.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9년 발표한 인공임신중절 현황.

 
이영규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수석부회장(산부인과 전문의)은 “낙태약을 먹었는데 유산이 안 돼 병원에 오기도 한다”며 “불완전 유산이 되면 남은 태아 조직이 독성을 분비해 자궁에 굉장히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의학적으로 정확한 진단 하에 쓰고 복용 후에도 완전히 종료됐다는 판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보사연 조사에서 약물로 낙태한 74명 중 53명은 낙태가 되지 않아 추가 수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 등 정식 허가해 판매하는 전 세계 60여 개국도 사용을 엄격히 제한한다. 식약처 고위 관계자는 “대부분 나라에서 9~10주 이내에 쓰도록 허가 나 있다”며 “이를 참고해 환자 안전성에 초점을 맞춰 필요한 사항을 허가 사항에 담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신정호 교수는 “합법화되더라도 병원에 가기 힘든 학생이나 기록이 남는 걸 원치 않는 여성의 경우 진단 과정을 생략하고 우회의 경로를 통해 복용할 수 있다”며 “저절로 유산이 돼 처방받은 약을 쓰지 않고 양도하는 등의 일도 생길 수 있다. 오남용을 막을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