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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국 김치-중국 파오차이 논란에서 놓친 것들

중앙일보 2021.01.22 00:21 종합 29면 지면보기
박종철 순천대 명예교수·전 한국김치협회 회장

박종철 순천대 명예교수·전 한국김치협회 회장

유엔 주재 중국대사가 SNS에 직접 김치를 담그는 게시물을 최근에 올렸다. 김치가 중국 음식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내용은 없었지만, 김치 왜곡 공정(工程) 시도로 의심할 사례들이 계속돼 우려스럽다.
 

중국의 김치 왜곡 배경 꿰뚫어보고
김치 한자 명명과 세계화 고심해야

앞서 지난해 말 관영 환구시보(環球時報)도 중국의 염장(鹽藏) 채소인 ‘파오차이(泡菜)’ 산업의 국제표준화기구(ISO) 인증 소식을 보도하며 ‘김치 종주국의 치욕’이라는 제목을 달아 한국인을 자극했다. 다행히 영국 BBC 방송이 한국 김치와 중국 파오차이는 서로 다르다면서 중국의 오보라고 교통정리 해줬다.
 
한국 농림축산식품부는 당시 환구시보 보도에 대해 “중국의 파오차이에 관한 국제 표준 제정과 한국 김치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반박했다. ‘ISO의 파오차이 문서는 김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부분을 빨간 표시로 강조한 ISO 원문도 공개했다.
 
한·중 김치 논쟁은 한국 김치 산업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계기를 제공했다.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김치는 ‘유엔 산하의 공식기구’에서 국제 표준으로 정해졌지만, 중국의 파오차이는 ‘비정부기구인 ISO’에서 표준으로 삼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차이를 부각하는 데 열을 올리고 이번 사태를 평가절하하는 분위기였다.
 
김치에 관한 식품 규격을 2001년 유엔 국제식량농업기구(FAO) 산하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서 국제 표준으로 정한 것은 사실이다. ISO는 비록 비정부 민간 기구이지만 한국도 정회원으로 활동하며, 165개국이 국제 표준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국제기구다.
 
따라서 김치는 유엔 산하 기구에서 인정받았으므로 중요하고, 파오차이는 민간 기구에서 표준을 제정했으므로 대수롭지 않다는 등식은 위험한 발상이다. 한국 정부와 언론은 ISO의 표준 인증도 국제적으로 영향력이 크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파오차이 논란이 김치와는 직접 관련이 없다지만 김치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번 사태를 소홀히 다루면 한국 김치의 세계화를 위한 밑그림 작업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브리태니커 사전에도 실려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Kimchi’에 대한 오해와 왜곡을 피하기 위해서 김치의 한자 이름 만들기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지금 중국에서 유통·판매하는 한국 김치는 ‘파오차이’라 표기한다. 김치의 한자 이름이 없다 보니 중국의 절임 식품인 ‘파오차이’를 관행처럼 빌려 쓰고 있다.
 
중국 정부의 언어 정책에 따라 중국에서는 반드시 한자 이름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김치를 ‘한국 파오차이’ ‘매운 파오차이’ 등으로 부르며 중국 파오차이와 구별하기도 한다.
 
파오차이의 ISO 인증 논란의 원인에는 김치의 한자 이름 부재가 한몫했다. ISO 원문에는 김치가 아닌 ‘파오차이’로 기재돼 있는데도 중국 언론은 김치의 한자 이름이 없다는 점을 교묘히 이용해 파오차이를 ‘한국 파오차이’나 영어 ‘Kimchi’로 번역했다. 마치 중국의 파오차이 산업이 국제 김치 시장에서 표준이 된 것 같은 뉘앙스를 풍겼다.
 
중국 파오차이가 한국 김치와는 여러 측면에서 다른데도 말이다. 김치의 한자 이름이 있었더라면 이번에 무수히 쏟아져 나온 중국 언론의 김치 왜곡 기사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의 김치산업을 살펴보면 국내 김치 소비량은 2010년 이래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반면 김치 수입은 많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 수입되는 물량 비중이 날로 커지고 있다.
 
이번 논쟁은 우리에게 뼈아프다. 다만 우리가 김치의 한자 이름을 정해 산업 현장과 중국 현지에 정착시키고 김치의 ISO 표준화에 박차를 가해 김치 산업 발전의 계기로 삼으면 보약이 될 것이다.
 
박종철 순천대 명예교수·전 한국김치협회 회장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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