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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때 "애 안 낳을게요" 선언…'모성 페널티' 두려운 2030女

중앙일보 2021.01.21 05:00 종합 14면 지면보기
지난해 10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코베 베이비페어에서 참가자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코베 베이비페어에서 참가자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8년 전 결혼한 A씨(39·여)는 아이가 없다. 4년 전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당시 10년 몸담았던 곳을 떠나 지금 회사로 이직했는데 여러 차례 고배 끝에 얻은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컸다. 30대 중반의 가임기 기혼자라는 점이 행여나 불리하게 작용할까 싶어 면접관 앞에서 ‘딩크’(아이 없는 맞벌이 부부)를 선언했다. A씨는 “‘계속 일할 수 있다’는 걸 확실히 보여주고 싶어 묻지 않았지만 먼저 어필했다”고 전했다. 
 

“여성에 희생 전제로 한 강제된 모성 요구”
“양육자 차별 실태 파악하고 페널티 줄여야”

28살에 결혼한 B씨(31·여)는 둘째를 고민하다가도 고개를 젓는다. 첫째 때 임신 사실이 알려진 후로 늘 ‘어차피 애 낳으면’이라는 말이 따라다녔다. B씨는 “‘너 우리 팀에 와봤자 어차피 애 낳으면 휴가 들어갈 거잖아’라며 기피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출산하면) 포기해야 할 게 많아지는데 그럴 자신이 없으면 안 낳는 게 맞다”고 말했다. 
 

“‘모성 페널티’, 출산 꺼리는 요인”

 
지난해 우리나라 출생아 수는 역대 최저치인 20만명대로 주저앉았다. 이들처럼 결혼했더라도 출산을 꺼리는 젊은층이 늘면서 예견된 일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이 올해부터 반영돼 앞으로 최소 2년간은 이런 저출산 쇼크가 더 악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저출산 흐름을 바꾸기 어려운 건 여전히 양육은 여성의 몫이고, 이런 여성을 대하는 기업 태도가 상당수 배타적이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하지선·김지선 인권복지연구소 연 연구위원은 최근 ‘청년 여성의 노동과 출산’ 보고서에서 “현 사회는 여성의 희생을 전제로 한 강제된 모성을 요구한다”라며 “직장인 여성에 전제된 모성은 ‘모성 페널티’로 연결돼 있다”고 지적했다. 모성 페널티는 엄마들이 일터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각종 불이익을 말한다. 
임신근로자 모성보호제도 활용 실태.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임신근로자 모성보호제도 활용 실태.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연구팀이 직장 경력 2~17년 차의 28~40세 기혼자 20명(4명 빼고 무자녀)을 인터뷰한 결과 모성 페널티는 출산을 꺼리게 하는 주요인으로 파악됐다. 
 

업무서 배제되고 승진 누락되고

 
직장생활 12년 차 37살 C씨는 “(출산 후에도) 더 많은 역할을 하고 싶은데 은근슬쩍 ‘주말에 일하기 힘들잖아’ ‘밤늦게까지 회의하기 힘들잖아’라고 얘기하는 걸 보면 애 낳을 마음이 사라진다”고 전했다. 그는 “인정받고 싶은데 근무에서 배제되면 자괴감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에서 디자인 기획 일을 하는 D씨(33)는 “선임 연차에 아기를 낳은 분들은 진급이 2년 밀리더라”며 “8년간 상위 고과를 2번 이상 받아야 하는데 육아 휴직 기간에는 좋은 고과를 받을 수 없으니 승진에서 누락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코베 베이비페어에서 참가자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코베 베이비페어에서 참가자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보고서는 “임신 사실이 알려지고 난 후부터 모성은 직장에서 ‘부담’이 된다”며 “보호한다기보다 일하는 데 결함이 생긴 존재를 대하는 태도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육아 휴직자에 “이기적” 시선도 

 
육아 휴직 등의 모성보호 제도가 여전히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을 하소연하는 이들도 있었다. E씨(36)는 90%가 여성인 중견 기업에 다니는데도 출산휴가 90일만 쓰고 육아 휴직 없이 복귀했다. 휴직해도 회사 요구에 따라 일찍 복귀해야 했다는 경험자 얘기를 들어서다. E씨는 “임신·출산이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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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임신 당시 태아검진시간을 쓰기 위해 인사팀에 문의했는데 관리자조차 제도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며 “부서장에게까지 결재를 올려 허락을 받아야 하는 시스템도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태아검진시간은 근무 시간 중 태아검진을 위해 병원에 갈 수 있도록 법에서 보장한 것이다. 그러나 기업이 허용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다. 고용노동부의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5117개 기업 조사)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태아검진시간 제도를 도입한 곳은 10곳 중 7곳(65.1%)꼴이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F씨(35)는 “(육아 휴직자를) ‘자기 것만 챙겨가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 (그 때문에 아이를) 안 가지려 하는 것도 있다”고 말했다. C씨는 “내가 당장 제도를 누리지 않더라도 나도 언젠가 쓸 수 있으니 (제도 등을) 지지하는 편이었는데 같은 여성이어도 결혼을 안 한 분은 이해 못 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지난해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코베 베이비페어에서 참가자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코베 베이비페어에서 참가자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병가 쓰듯 육아 휴직 가는 분위기 돼야”

보고서는 “모성을 근거로 인정받을 기회들로부터 배제되고 경력이 단절되는 등 불이익을 감수하고 있다”며 “모성보호제도를 사용하면서 동료들로부터 누를 끼치는 사람으로 처우 된다”고 분석했다. 또 “결국 이런 상황에서 20~30대 여성이 출산에 대해 취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은 출산의 거부·지연을 통해 삶의 통제권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영미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모성 페널티의 본질은 결국 돌보는 사람에 대한 페널티”라며 “여성은 돌봄 부담을 질 것으로 가정하면서 능력이 낮을 것이라 예단하고, 돌보는 남성은 남자답지 못하다고 보는 양면적 양상으로 나타난다”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해외에선 양육자에 대한 차별을 강력하게 규제한다”며 “남녀를 떠나 양육자에 대한 페널티를 줄이도록 기업이 바뀌어야 저출산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는 모성 페널티를 최대한 해소하고자 부부가 동시에 육아 휴직을 쓰면 최대 600만원을 주고, 기업이 공시하는 경영정보에 채용 성비·임직원 중 여성 비율·성별 임금 격차 등을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박진경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사무처장은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에게도 ’일자리‘는 삶의 필수조건이 되는 만큼 육아 휴직 확산, 성평등한 일터 조성 등 노동시장 여건을 대대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동 현장에서 실제 페널티가 어느 수준인 건지 현실을 파악할 데이터부터 조사해야 한다”며 “아프면 병가 쓰듯 공직 영역의 남성들부터 나서 아이 낳는 사람 모두가 육아 휴직을 다녀온다는 전제하에 기업의 제도와 조직을 바꿔야 한다. 국가도 기업들이 부담을 덜도록 전면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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