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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시시각각] 입양 가정엔 죄가 없다

중앙일보 2021.01.20 00:43 종합 30면 지면보기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귀를 의심했다. 그제 신년 기자회견 중 아동 학대 방지 대책을 묻는 말에 대통령은 ‘입양 취소’ ‘아이 교체’를 언급했다. “입양 부모의 마음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일정 기간 안에는 입양을 다시 취소한다든지, 또는 여전히 입양하고자 하는 마음은 강하지만 아이하고 맞지 않는다고 할 경우에 입양 아동을 바꾼다든지….” 종일 여론이 들끓었다. “입양이 맘에 안 들면 반품하는 온라인 쇼핑인가.” “강아지도 쉽게 파양 못 한다.”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의 발언으로 믿기질 않는다.”
 

아동 학대 방지 대책으로 파양 언급
대통령 실언으로 넘기기엔 상처 커
입양문화 더 많은 격려 필요하다

청와대는 “입양 활성화를 위해 입양제도를 보완하자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현재 입양 확정 전 양부모 동의하에 관례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사전위탁보호제도 등을 보완하자는 취지”라며 “프랑스·영국·스웨덴에서는 법으로 사전위탁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아이의 행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사전위탁제도 법제화’의 필요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말실수라는 건데, 아무리 읽어봐도 사전위탁제도를 제대로 알고 하는 말 같지가 않다. 백번 양보해도 이건 입양 부모를 위한 제도 보완이지, 입양아를 위한 보완이 아니다. 아동 학대의 대책 질문에 입양 부모를 위한 제도 보완이라니 핀트가 빗나가도 한참 빗나갔다. ‘파양’은 친부모에 이어 양부모와도 분리되는 트라우마다. 안 그래도 아동 학대로 숨진 16개월 여아 ‘정인이 사건’이 입양 가족의 문제처럼 부각되는 바람에 수많은 입양 가족이 상처를 입은 상황이다.
 
실제로 아동 학대 가해자의 절대다수는 친부모다. 2019년 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아동 학대 가해자의 72.3%가 친부모, 입양 부모는 0.3%였다. 친부모가 아이를 때리면 “친부모가 어떻게”라면서도 계부모나 양부모가 그러면 “계부모여서” “양부모여서”로 가족 형태 탓을 하는 게 우리다.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에라도 남의 눈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계부모나 양부모에 비해 친부모가 폭력 행사에 느슨해질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계부모냐, 양부모냐, 친부모냐가 아니라 폭력적인 양육자다. ‘사랑의 매’란 이름으로 둔갑한 폭력이다. “내 자식이니까 내 마음대로”라는 강한 친권 의식이다.
 
과거에 비해 당당한 공개 입양이 느는 추세지만 아직도 ‘정상 가족’과 혈통에 대한 집착, ‘불쌍한 아이’라는 편견이 있다. 입양 부모는 이번 사건처럼 악마 아니면 천사다. 가급적 친부모에 대한 기억이 없는 3세 이하, 대를 잇는 부담이 없는 건강한 여아를 선호하는 경향도 여전하다. 당연히 장애 아동의 국내 입양은 어렵다. 해외 입양은 비판하면서도 국내 입양은 활성화되지 않는 모순도 있다. 2019년 전체 입양 704명 중 해외 입양은 317명, 45%였다. 무분별한 입양 규제는 필요하지만 그럴수록 신분 노출 등을 꺼린 미혼모들이 입양 대신 아동을 유기하거나(베이비 박스), 시설 아동만 늘어나는 딜레마도 있다. 입양 숙려·허가제가 도입된 2012년 총 1880건의 입양 수는 2016년 880건으로 줄었다. 그만큼 원가정으로 돌아갔다면 다행이지만, 시설로 간 아이들도 같이 늘었다고 보는 게 맞다.
 
정치권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입양 심사, 사후관리 강화 논의에 여념이 없지만 입양 가족들은 냉소적이다. “입양 부모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니 누가 입양을 하겠느냐.” “입양 가정에서 아동 학대가 발생하니 입양 부모를 관리하자고 한다면 아동 학대가 제일 많은 친부모도 관리하라.” “자꾸 양부모라고 하지 말라. 생부모가 아닐 뿐 친부모다.”
 
저출산 시대에 태어난 단 한 명의 생명도 소중하게 키우는 게 국가가 할 일이고, 이를 자처한 입양 가족은 격려해도 모자랄 판 아닌가. ‘살인마’ 입양 부모를 단죄하는 손쉬운 해법으로 쳇바퀴 도는 아동 학대의 고리를 끊을 수 없는 일이고 말이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아동 학대지 입양이 아니다. 대통령의 발언은 디테일도, 인권 감수성도 부족했다. 청와대는 해명이 아니라 사과를 해야 옳았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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