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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판결문에 MB 언급한 정준영, 강일원 판단 그대로 따랐다

중앙일보 2021.01.19 14:00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우상조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우상조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를 양형에 반영하지 않은 건 사실상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의 의견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판결문에서 드러났다. 강 전 재판관은 법원에서 정한 전문심리위원으로, 지난 1년 동안 준법위 활동 경과를 감시한 뒤 보고했다.
 

강일원 인용하고 김경수 반박했다

18일 이 부회장의 판결문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송영승 강상욱 부장판사)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활동이 양형에 반영할만큼의 실효성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준법위가 “새로운 유형의 위험을 정의하고 선제적 위험 예방 및 감시 활동을 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고 지적했는데, 이는 3명의 전문심리위원 중 강일원 전 재판관의 의견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법원 측): 이 사건에서 문제된 위법행위에 초점을 맞춰 감시하고 있다. 새로운 유형의 위험을 정의하고 이에 대비한 선제적 위험 예방 및 감시활동을 하는 데까지는 이르고 있지 않다.
 
 ◦김경수 변호사(삼성 측): 과거 문제가 있던 대외후원금 등에 대한 실효적 감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 일어난 위험부터 유형화해 엄격하게 관리하는 게 맞다. 위원회나 사무국 조직을 대폭 늘리는 건 효과적이지 않다.
 
 ◦홍순탁 회계사(특검 측): 위법행위를 예방ㆍ감시하기 위한 리스크 유형화 및 평가지표ㆍ점검항목 설정작업을 수행하지 않았다. 현재 기준으로는 실효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MBㆍ박근혜 거론하며 “비자금 대책 더 필요하다”

반면 재판부는 삼성 측 전문심리위원인 김경수 변호사의 의견은 판결문에서 직접적으로 반박했다. 김 변호사는 이번 사건에서 비자금 조성 창구로 지목된 후원금과 내부거래 등에 대한 감시가 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는 ‘현존하는 위험’에만 치우친 대책이라 평가했다.
 
현재 1000만원 이상의 대외후원금 지출에 대해 준법위 심의를 거치도록 되어 있는데, 이 정도로는 비자금 조성을 막기에 부족하다는 게 재판부의 의견이다. 특히 재판장인 정준영 부장판사가 2심을 맡았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횡령 사건 등을 판결문에 직접 거론, “정치권력에 대한 뇌물 제공은 허위 용역계약을 체결하는 등의 방식으로 외관을 가장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전두환ㆍ노태우ㆍ이명박ㆍ박근혜 등 다른 전직 대통령들도 언급하며 “비자금 조성 방법을 삼성 측이 스스로 분석해 대응방안을 마련해둘 필요가 있다”고 했다. 차명주식 등 기존에 문제되지 않았던 요소들도 먼저 나서서 관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계열사 대부분 감시할 수 있겠나”

지난해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서 열린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 입장하는 이 삼성전자 부회장. 연합뉴스

지난해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서 열린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 입장하는 이 삼성전자 부회장. 연합뉴스

‘계열사 실무 직원들 차원의 불법 행위를 감시하면 경영진 차원의 거대 불법 행위도 걸러낼 수 있다’는 김 변호사의 의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준법위가 20여개에 가까운 삼성 계열사들을 모두 감당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봤다. 현재는 준법위가 삼성전자ㆍ삼성물산 등 핵심 계열사 8개만 감시하는 데 그치는데, 외곽 계열사들도 얼마든지 불법 행위에 동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삼성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발행 사건에 연루됐던 삼성SDS는 비상장기업이었던 점, 박근혜 전 대통령 요구로 K스포츠재단 자금 지원에 동원된 건 삼성에스원과 제일기획이었던 점, 최근 분식회계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수사를 받은 점 등을 들었다.

 

“미전실 등 ‘삼성 심장’ 견제 못한다”

재판부는 삼성 내 위법이 이뤄졌던 핵심 중추로 ‘구조본(구조조정본부)’과 ‘미전실(미래전략실)’을 꼽았다. 그룹 내 기획ㆍ인사 등을 담당해 ‘삼성의 심장’으로 불렸지만 차명 계좌와 비자금 조성 등 의혹에 연루됐던 조직이다. 구조본은 2008년 삼성 특검 사건으로 해체됐고, 미전실은 2017년 국정농단 사건 이후 해체됐다. 재판부는 “(준법위는) 위와 같이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조직을 통해 위법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에 대한 대응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복에 깃털 꽂은 것 같은 판결” 비판도

한 현직 판사는 “준법감시위를 기업범죄의 양형 요소로 반영하는 건 미국에서는 도입한 지 30년이 됐지만 우리나라는 처음이어서 법원이 보수적으로 적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재판부가 준법감시위를 만능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며 “20여개에 달하는 계열사들을 통째로 감시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기업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리스크를 100% 예방하는 기업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비판했다.
 
한 특검 관계자는 “한복에 깃털을 꽂은 것처럼 애매모호한 판결”이라며 “작량감경으로 줄 수 있는 가장 최소 형량인 2년 6월형을 주고 또 법정구속한 걸 보면 재판부 머릿속이 복잡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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