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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의 아트&디자인] 김창열·물방울·미술관

중앙일보 2021.01.19 00:19 종합 26면 지면보기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별 하나에 추억(追憶)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詩)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윤동주(1917~1945)의 ‘별 헤는 밤’이란 시입니다. 많은 사람은 숱한 점들이 알알이 박힌 김환기(1913~1974)의 작품을 보면 이 시구가 절로 떠오른다고 합니다. 윤동주에게 별이 그러했듯이 김환기의 점은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도구였으니까요.  
 
지난 5일 작고한 ‘물방울 화가’ 김창열(1929~2021)에게 별은 물방울이었습니다. 초기 시절에 쓴 작가노트엔 기억의 방울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나옵니다. “(물방울 그리기는) 내가 자란 문화로의 회귀(…)”이며 “때로는 아이들 물장난하듯, 때로는 꽃다운 나이에 죽어간 내 많은 친구의 혼을 달래는 살풀이”였다고요. 물방울은 그가 평생 도달하고 싶어했던 평온의 경지이자 충만한 무의 세계였습니다.
 
그런데 투명 물방울 회화의 뒷얘기에 꼭 등장하는 ‘의외의’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마구간입니다. 1972년 작가는 파리에서 18㎞ 떨어진 교외에서 마구간을 빌려 작업을 했는데요, 이때 재활용하기 위해 물을 뿌려둔 캔버스에 맺힌 물방울을 보고 전율을 했다지요. 물방울과의 첫 만남은 “항상 생존이 문제”였던 시절, 기적처럼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김창열, 회귀, 1991, 캔버스에 한지, 먹, 아크릴 릭, 130.3x162.2㎝. [사진 갤러리현대]

김창열, 회귀, 1991, 캔버스에 한지, 먹, 아크릴 릭, 130.3x162.2㎝. [사진 갤러리현대]

1973년 첫 전시에서부터 격찬을 받았다지만, 물방울 그리기에 반세기 가량 매달린 일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었을까요. 나중에 한 인터뷰에서 그는 “물방울을 없애버리고 싶은 욕망이 수없이 솟아오른다. 물방울이 내 운명처럼 돼버렸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또 2013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선 “물방울이 무슨 의미가 있나. 무색무취한 게 아무런 뜻이 없다”고 했고, “화가들은 착각이 심해서 어떤 때는 물방울을 그리면서 영혼과 닿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도 했습니다.
 
마구간의 아침으로부터 40년이 흐른 2014년, 김창열 화백은 시대별 주요 작품을 직접 골라 220점을 제주도에 기증했습니다. 평안남도 맹산 출신인 그는 6·25 때 1년 6개월간 머문 제주를 제2의 고향으로 여겼고, 자신의 물방울들이 바다와 바람과 돌이 있는 제주에 머물기를 바랐습니다. 그 결실이 2016년 개관한 제주도립 김창열미술관이고요.
 
서울 종로구는 올해 중 김 화백의 작업실이 있던 평창동 자택을 종로구립 미술관으로 조성하는 작업에 착수합니다. 이는 공공을 위한 문화유산을 만들겠다며 종로구와 유족이 일찌감치 뜻을 모으고 준비해왔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김 화백은 생전에 “어떤 화가로 기억되고 싶냐”는 물음에 “너절하지 않은 화가로 남고 싶다”고 답했습니다. 자신이 평생을 바친 물방울들의 자리까지 차분하게 준비하고 떠난 화가, 그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함께 기억하고 싶습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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