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푸틴 정적’ 나발니, 귀국하자마자 체포 “난 두렵지 않다”

중앙일보 2021.01.19 00:02 종합 14면 지면보기
독극물 테러로 독일에서 치료 받다 지난 17일 귀국길에 오른 러시아 야권 정치인 알렉세이 나발니(오른쪽)와 부인 율리아. [AP=뉴시스]

독극물 테러로 독일에서 치료 받다 지난 17일 귀국길에 오른 러시아 야권 정치인 알렉세이 나발니(오른쪽)와 부인 율리아. [AP=뉴시스]

지난해 8월 20일 독극물 테러를 당한 뒤 독일에서 치료를 받던 러시아 야권 정치인 알렉세이 나발니(44)가 17일(현지시간) 5개월 만에 귀국했으나 모스크바 공항에서 곧바로 체포됐다. 나발니는 이날 독일 베를린에서 러시아 포베다 항공의 여객기에 탑승했으며 출국 전 “귀국하게 돼 매우 기쁘다”는 소감을 밝혔다.
 

독극물 테러 5개월 만에 러시아로
독재정권 비판해온 야권 지도자
바이든 차기 행정부 “즉각 석방을”

공개된 영상에 따르면 그는 모스크바 외곽 세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 도착해 승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기내를 나섰다. 입국 심사대 도착 전 짧은 인터뷰에서 “내가 옳다는 것을 알기에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며 “나를 겨냥한 형사 사건은 모두 조작됐다는 것을 안다”는 말을 남겼다.
 
나발니는 2014년에 받은 집형유예 판결 관련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국심사대에서 연방 요원들에게 체포됐다. 그는 부인 율리아 나발나야를 껴안고 입을 맞춘 뒤 호송됐으며, 집행유예 취소 소송이 예정된 이달 말까지 구치소에 수감될 것으로 보인다.
 
나발니의 구금 소식에 서방 각국은 석방을 요구하고 나섰다. 특히 미국의 조 바이든 차기 행정부의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으로 내정된 제이크 설리번은 즉각 석방을 요구하며 “나발니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은 단순한 인권 침해가 아니라 그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러시아 국민에 대한 모욕”이라고 주장했다. 유럽에서도 비판 성명이 연달아 나왔다. 유럽연합(EU) 정상회의의 샤를 미셸 의장은 “프랑스 외무부도 동맹국과 함께 상황을 주시한다”고 밝혔다.
 
나발니의 귀국 과정은 해외 매체와 소셜미디어(SNS)·유튜브로 중계됐다. 러시아 온라인 독립 TV 채널인 도쉬치는 입국 라이브 동영상이 600만 뷰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나발니를 태운 여객기가 애초 도착 예정이었던 모스크바 서남쪽 브누코보 공항에 그를 보기 위해 몰린 인파. 여객기는 도착 직전 항로를 바꿔 이들을 따돌렸다. [AFP=연합뉴스]

나발니를 태운 여객기가 애초 도착 예정이었던 모스크바 서남쪽 브누코보 공항에 그를 보기 위해 몰린 인파. 여객기는 도착 직전 항로를 바꿔 이들을 따돌렸다. [AFP=연합뉴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나발니가 탄 여객기는 애초 포베다 항공이 주로 쓰는 모스크바 서남쪽 브누코보 공항에 내릴 예정이었지만 도착 직전 항로를 바꿔 모스크바 서북쪽 세레메티예보 공항에 착륙했다.  
 
NYT는 "나발니의 체포는 예상했던 대로지만 이날의 극적인 장면은 러시아 국민의 불만이 팽배해지고 크렘린의 불안도 따라서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변호사 출신인 나발니는 그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부패한 독재 정권의 수장’으로 묘사하는 등 강도 높게 비판해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그런 그를 ‘푸틴이 가장 두려워하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나발니는 지난해 8월 20일 시베리아 톰스크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는 여객기 안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비행기가 톰스크에서 800㎞쯤 떨어진 옴스크에 비상 착륙한 뒤 현지 병원에서 치료 받다가 독일 베를린으로 이송됐다.
 
그는 의식을 잃은 지 18일 만에 베를린의 샤리테 병원에서 깨어났다. 독일 당국은 그의 몸에서 옛소련이 개발한 노비촉 계열의 독극물을 검출했다고 밝혔다. 푸틴은 지난해 12월 기자회견에서 나발니를 언급하지 않으면서 "끝내려고 했으면 끝냈을 것”이라며 연루설을 부인했다.
 
나발니는 지난해 의식을 회복한 뒤 독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에서 두려움 없이 정치 활동을 이어가겠다”면서 "내가 돌아가지 않음으로써 푸틴에게 ‘선물’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