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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화약고지만, 그래도 대세는 다국적 걸그룹

중앙일보 2021.01.18 11:50
 
한국과 일본 멤버로 구성된 7인조 걸그룹 체리블렛. 채린, 유주, 메이, 지원, 보라, 레미, 해윤 (윗줄 왼쪽부터) [사진 FNC엔터테인먼트]

한국과 일본 멤버로 구성된 7인조 걸그룹 체리블렛. 채린, 유주, 메이, 지원, 보라, 레미, 해윤 (윗줄 왼쪽부터) [사진 FNC엔터테인먼트]

컴백 무대를 이틀 앞둔 18일, 걸그룹 체리블렛의 일정은 촘촘하게 짜여있었다. 20일 첫번째 미니 앨범 ‘체리 러시(Cherry Rush)’를 내놓는 이들은 온라인 쇼케이스에서 입을 의상 피팅부터 시작해 안무 레슨, 런스루 연습 등으로 하루종일 바빴다. 체리블렛은 한·일 소녀로 구성된 7인조 걸그룹이다. 2019년 데뷔해 3년차에 접어들었다.일본인 멤버 메이와 레미는 "춤을 배우면서 어릴 때부터 K팝을 좋아하게 됐다. 일본에서도  K팝 아이돌 그룹의 콘서트를 갔을 정도"라며 "처음 한국에 왔을 땐 한국말도 서툴고 혹독한 일정에 힘들었지만 이제는 적응했다"고 말했다.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가수의 꿈에 도전하게 된 이유를 묻자 "전 세계에서 활동할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한일 7인조 걸그룹 '체리블렛' 20일 컴백
한중일 걸그룹 오디션 '걸스 플래닛 999'
걸그룹, 다국적 구성으로 해외시장 노려

 
체리블렛 일본인 멤버 레미  [사진 FNC엔터테인먼트]

체리블렛 일본인 멤버 레미 [사진 FNC엔터테인먼트]

체리블렛 일본인 멤버 메이 [사진 FNC엔터테인먼트]

체리블렛 일본인 멤버 메이 [사진 FNC엔터테인먼트]

K팝 걸그룹의 다국적화는 이제 더는 낯선 조합이 아니다. 트와이스, 블랙핑크, (여자)아이들 등 K팝을 대표하는 주요 걸그룹은 대부분 다국적 멤버로 채워져 있다. 이른바 K팝 2.0 모델(한국+해외국적 가수로 팀을 구성)의 전성기다. 음악전문채널 Mnet은 최근 ‘걸스 플래닛 999’ 프로젝트를 시작하겠다며 공개 오디션 모집에 들어갔다. 한국, 일본, 중국 3국의 여성 아이돌 지망생을 대상으로 서바이벌 오디션을 벌여 다국적 걸그룹을 결성하겠다는 시도다. 
 
보이그룹도 슈퍼주니어, NCT, 엑소, 세븐틴 등 다국적 그룹이 있다. 하지만 이중 다수가 SM엔터테인먼트 소속이거나 지역활동 유닛 등으로 제한적으로 시도됐다. 또는 한국 멤버를 중심으로 결성되고 외국인 멤버 소수가 덧입혀지는 정도다. 반면 걸그룹은 외국인 멤버가 팀의 전면에 나서기도 하고, 멤버 비중의 절반가량을 외국인이 맡을 정도로 대담한 시도를 보이기도 한다. 
 
블랙핑크 [사진 YG엔터테인먼트]

블랙핑크 [사진 YG엔터테인먼트]

 
시작도 걸그룹이 먼저였다. 선구자는 1998년 한·중·일 3개국 출신 5인조 걸그룹 써클이다. 데뷔 당시 시선을 끌었지만, 멤버 탈퇴와 흥행 부진으로 2년 만에 해체됐다. 가요계 관계자는 "지금처럼 유튜브가 활성화되지 않고 오프라인 문화가 발달하다 보니 한국에서의 활약이 일본으로 전달되지 않는 등 다국적 멤버 구성의 시너지 효과가 없었다"고 말했다.  
 
걸그룹 써클이 1999년 3월 19일 프레스센터에서 유엔 홍보대사로 위촉되고 있다. [중앙포토]

걸그룹 써클이 1999년 3월 19일 프레스센터에서 유엔 홍보대사로 위촉되고 있다. [중앙포토]

걸그룹에서 다국적 조합이 활성화 된 가장 큰 이유는 시장성이다.
한국에서 걸그룹의 팬덤이 보이그룹보다 약하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는 지난해 음반판매량만 봐도 명확하다. 가온차트가 집계한 2020년 음반 판매량에 따르면 1위부터 10위까지 걸그룹은 블랙핑크(THE ALBUM·5위) 뿐이다. 그 다음 순위는 트와이스(More & More)로 12위였다. 즉, 한국 시장만 겨냥해서는 걸그룹은 '대박'을 터뜨리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2020년 한국 음반 판매순위. 붉은색이 걸그룹이다. [자료 가온차트]

2020년 한국 음반 판매순위. 붉은색이 걸그룹이다. [자료 가온차트]

써클 실패 이후 걸그룹에 다국적 구성의 불을 붙인 것은 트와이스다.
한국인 5명, 일본인 3명, 대만인 1명으로 구성된 트와이스는 한국과 일본에서 신드롬을 일으키며 명실공히 양국 최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이후 블랙핑크(한국·태국), (여자)아이들(한국·대만·중국·태국), 우주소녀(한국·중국), 아이즈원(한국·일본), 체리블렛(한국·일본), 로켓펀치(한국·일본) 등 다국적 걸그룹이 줄줄이 나왔다.
 
트와이스 '모어 앤드 모어' 앨범 재킷 [사진 JYP엔터테인먼트]

트와이스 '모어 앤드 모어' 앨범 재킷 [사진 JYP엔터테인먼트]

(여자)아이들 [뉴스1]

(여자)아이들 [뉴스1]

이중 아이즈원은 일본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며 다국적 조합의 가능성을 일깨웠다. 아이즈원은 한국의 각종 음악프로그램뿐 아니라 일본 오리콘차트에서도 수차례 정상을 차지했다. 또 지난해 2월 낸 정규 1집 '블룸아이즈'(35만6313장)와 6월에 낸 미니 3집 '오네릭 다이어리'(38만9334장)은 역대 걸그룹 초동 판매량 2·3위의 기록을 세웠다. '프로듀스' 조작 파동과 역대 최악이라는 한·일 관계에도 연이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거둔 성공인 만큼 그 의미가 적지 않다는 평가가 나왔다. 
 
Mnet에서 '프로듀스48' 이후 꺼낸 걸그룹 오디션 프로그램이 재차 다국적 조합을 들고 나왔다는 점도 이를 반증한다. 김진우 가온차트 수석위원은 "아이즈원 사례처럼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 흥행을 노릴 수 있는 성공 사례가 이미 있기 때문에, 여기에 중국을 하나 더 추가했다는 측면에서 나름 안정적인 성공 모델인 것 같다"며 "한·중·일 3국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만큼 시청자 수는 국내보다 몇배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2020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MAMA)에서 아이즈원 [사진 CJ ENM]

2020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MAMA)에서 아이즈원 [사진 CJ ENM]

악화된 한일 관계에도 불구하고 다국적 구성에서 일본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 역시 시장성을 감안한 구성이다. 한국과 비교하면 일본은 걸그룹 팬덤이 강력하다는 평가다. 다만 최근 들어 동남아 시장을 겨냥한 태국 출신도 늘어나는 추세다. 블랙핑크의 리사, (여자)아이들의 민니가 대표적이며 CLC의 손, Z-GIRLS의 벨도 태국인이다. 또 최근엔 걸그룹 오디션 프로그램 '식스틴'과 '아이돌학교'에 출연했던 태국 출신 나띠가 솔로 데뷔를 하기도 했다. 
 
2020년 일본 싱글음반 판매량. 붉은색이 걸그룹이다. [자료 오리콘차트]

2020년 일본 싱글음반 판매량. 붉은색이 걸그룹이다. [자료 오리콘차트]

강희정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는 "태국은 한류 호감도도 높은데다 일찍부터 개방해 자유주의 성향도 강하고, 일본 문화의 영향으로 아이돌 문화에도 익숙한 편"이라며 "무엇보다 이슬람교 국가인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와 달리 여성의 연예 활동이 자유롭다"고 설명했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여성에 대한 규제가 엄격한 편이다. 인도네시아는 2018년 블랙핑크가 출연하는 광고를 '안무가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방송 금지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다만 '화약고'라고도 불리는 동아시아의 다양한 갈등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최근 중국의 BTS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등 민족주의적 변수는 여전히 위험요소라는 점을 보여줬다. 다만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는 "트와이스나 아이즈원의 성공을 보면 젊은층을 중심으로 정치-문화의 분리하는 움직임이 있다. 무엇보다 강력한 팬덤이 형성되면서 극복해나가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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