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장하석의 과학과 인간] 진보와 보수를 겸비하는 과학의 지혜

중앙일보 2021.01.18 00:27 종합 26면 지면보기

정치가 배워야 할 교훈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

근래 정치권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감은 땅에 떨어진 듯하다. 그와 대조적으로 과학에 대해서는 기본적 신뢰가 유지되고 있다. 요즘 현대과학의 원산지인 서양에서는 과학 불신 풍조도 일고 있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 과학자들이 코로나바이러스가 어떻다고 얘기하면 대충 그 말들을 믿으며, 거기에 대항하는 백신을 개발해냈다고 하면 다들 맞고 싶어하고, 우리 정부가 그 물량을 일찍 많이 확보하지 못한 것을 질책한다.
 

양자역학·상대성이론 나왔지만
물리학도들, 고전역학부터 배워
보수 진보 겸비하는 지혜 배우려면
오만에 빠지지 않는 겸허함 필요

우리가 이토록 과학지식을 존중한다면, 과학이 어떻게 해서 그런 훌륭한 지식을 산출해 내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 그 과학적 방식이 어떤 점에서 정치권의 행태와 다른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다른 나라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한국에서는 정치를 진보 대 보수의 양분법으로 많이 생각하며, 거기에 따라 상호 적대적인 틀을 짠다. 그것을 또 좌익 대 우익이라는 양분법과 겹쳐가며 더욱 격심하게 싸움을 한다. 보수와 진보는 사실 과학에서도 중요한 문제가 된다. 개개인의 과학자가 새로운 과학이론이나 관측결과를 받아들이는 데에 대하여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인 경향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과학자 사회에선 진보 대 보수로 갈라져서 비생산적인 투쟁을 하지는 않는다. 사실 과학의 지혜는 보수와 진보를 겸비하는 데 있다.
 
그 지혜를 배우려면, 보수와 진보가 당연히 상반되는 것이라는 기본적 개념부터 깨야 한다. 필자는 정치인도 아니고 정치학자도 아니지만 상식적으로 풀어 본다면 보수는 현존하는 좋은 것을 계속 유지하자는 것이고, 진보는 현재 좋지 않은 부분들을 개선하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보와 보수가 근본적으로 상충되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많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적으로 수호하는 것을 보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극명한 예로 현재 미국에서 자칭 보수진영 인사들이 트럼프 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세계적으로 찬양받았던 미국의 200년 넘는 민주주의 전통을 함부로 무너뜨리려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것은 진정한 보수와는 정반대되는 짓이다. 바이든의 당선 인준을 거부하는 폭도들이 국회의사당에 쳐들어가 난동을 부리는 것을 보고 그 충격으로 공화당 내에서도 진정한 보수진영과 트럼프를 숭배하는 진영의 구분이 어느 정도 드러나는 듯하다. 또 그런 사태를 규탄하면서 많은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인사들이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다만 서로 다른 인간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물론 갈등이 생긴다. 그러나 그것은 보수나 진보를 교조적으로 주장한다고 해서 해소되지 않는다. 다들 진보를 외친다고 해도 실제 원하는 진보의 방향은 각각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노동자를 위하는 것이 가장 진보적이라 하고, 어떤 사람들은 성 소수자를 보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갈등을 해소해 주는 것이 수준 높은 정치활동이다. 서로 설득하고 절충하고 양보하며 필요할 때는 타협도 한다. 어떤 경우는 그저 서로 간섭하지 않고 각자 충실히 살기로 하고 싸움을 그친다.
 
장하석 과학과 인간 그래픽=신용호

장하석 과학과 인간 그래픽=신용호

얼핏 보면 과학은 항상 진보적인 것으로 보인다. 과학자들은 끝없이 새로운 지식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지치지 않고 계속 새로운 관찰과 실험을 하며,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항상 들먹이는 노벨상을 포함하여 과학계에서 가장 높은 평가는 뭔가 아주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 사람들에게 주어진다. 그러나 매일매일 하는 과학자들의 행태를 보면 상당히 보수적인 경향도 심하다. 정통파 이론이나 방법론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종교에서 이단을 제재하는 것 못지않게 심한 배척을 받는다. 과학을 좀 공부해 본 사람들은 잘 알듯이, 과학 교육은 자유로운 탐구보다는 어떤 틀에 맞추어 들어가는 강훈련 과정이다. 학업을 마치고 진짜 연구를 할 때도 제멋대로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며, 물려받은 기초이론과 방법론을 엄격히 따르면서 탐구한다. ‘패러다임’이란 말을 유행시킨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은 이렇게 강력히 제한된 과학의 형태를 ‘정상 과학’이라 불렀다. 과학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때 그렇다는 말이고, 패러다임이란 어떤 과학 분야에서 정통으로 간주되는 지식의 내용과 연구 방식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렇게 패러다임이 주는 아주 빡빡한 틀 안에서 새로운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 보통 하는 과학이다.
 
물론 과학자들은 그런 틀을 깨버리는 큰 창의성을 가끔 발휘하기도 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는 일을 쿤은 ‘과학 혁명’이라 말하였다. 그것은 과학이 진정한 진보성향을 발휘하는 순간이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점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왔을 때 옛날 패러다임은 완전히 폐기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쿤이 좀 지나치게 단순화시켜서 이야기했던 부분이며, 과학의 역사를 잘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20세기 초에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이 나오면서 뉴턴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고전역학은 틀린 것으로 폐기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물리학을 배우는 모든 학생들은 고전역학부터 배운다. 그것이 틀린 이론이라면 왜 지금까지도 가르칠까? 옛날에 고전역학을 써서 잘해냈던 종류의 일들은 아직도 그것으로 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화성에 우주선을 보낸다든지 하는 일은 양자역학으로 할 수 없다. 또 현대 물리학 이론들을 잘 뜯어보면, 질량이나 전하 등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고전역학에서 유래한 여러 개념들이 여기저기 아직도 박혀 있다.
 
어떤 특정한 현상들을 잘 설명하는 최신 이론이 나왔다고 해서 다른 이론들은 다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지한 일이다. 일반상대성 이론을 뒷받침하는 관측결과는 최근까지 단 세가지 뿐이었었다는 유명한 역사가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물리학자들은 이것을 전 우주에 적용되어야만 하는 이론으로 떠받들었다.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실제로 뉴턴의 중력이론을 섣불리 폐기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예는 또 많이 있다. 맥스웰의 전자기학 공식은 아직도 상용되고 있으며, 멘델레예프의 화학 주기율표도 마찬가지다. 19세기에 원자가 정말 존재하는지도 확실치 않았을 때 알아냈던 유기화학의 분자구조식들도 아직 대부분 보존되어 있고 양자화학에서 정밀한 계산을 할 때도 그 기본적 분자구조를 전제하고 들어간다. 지금까지도 학생들에게 그 옛날 것을 꼭 가르치는 이유는 그런 이론들이 아직도 유용하고 의미있으며, 그 적용 범위 내에서는 불변하는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태계에 있는 여러 종류의 생물들을 아끼어 보존하듯이, 선조들이 확보해놓은 옛날식 과학지식도 좋은 부분은 정성스레 보존하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를 겸비할 수 있게 해 주는 기본적 태도는 겸허함이다. 우리가 뭘 그리 잘났다고 대를 이어 전해 내려온 귀중한 지식과 관습들을 쉽게 배척해서도 안되고,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이제 다 알았다는 오만에 빠져 새로운 것을 거부해서도 안된다. 그러니까 겸허함은 보수의 기반도 되고, 진보의 기반도 된다.
 
19세기말 서양의 많은 물리학자들은, 이제 물리학은 대강 다 끝났으며 앞으로의 진보는 그저 세세히 더욱 정밀한 결과를 얻는 일뿐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불과 몇 년 후에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탄생이라는 엄청난 혁명적 변화를 맞으면서 겸허함을 배웠다. 또 한편으로는 그 변화를 겪고 나서 보니 최신 이론만으로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으며 옛날식 지식도 대부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또 다른 겸허함을 배웠다. 지금도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설명하는 단 한 가지 이론을 찾아내겠다고 추구하는 과학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 길게 볼 때 그것은 과학의 유년기에 패기 있게 꾸었던 꿈이었다. 그 후 몇백년간의 경험을 통해서 과학자들은 각각 자기 영역에서 가능한 것을 최대한 개선하는데 만족하는 지혜를 배웠다.
 
현재 완벽한 체제는 없다고, 또 완벽한 것을 하루아침에 새로 만들어 낼 수도 없다고 인정하는 과학의 겸허함은 정치에서도 삶의 일반에서도 배워볼 만한 태도다.
 
◆장하석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과학사-과학철학과 석좌교수. 서울에서 고등학교 1학년까지 마친 후 미국에서 공부했고, 스탠퍼드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과학철학 일반과 물리학및 화학의 역사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며, 인문학과 자연과학간의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