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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look] “기술만능주의 끝”…최초·최고 버리고 다시 사람으로

중앙일보 2021.01.18 00:04 경제 3면 지면보기
미국 통신회사 버라이즌은 물류기업·드론기업과 손잡고 드론 배송에 나설 예정이다. [사진 각 사]

미국 통신회사 버라이즌은 물류기업·드론기업과 손잡고 드론 배송에 나설 예정이다. [사진 각 사]

얼마 전 천선란 작가의 장편소설 『천 개의 파랑』을 인상 깊게 읽었다. 지난해 한국과학문학상을 받았다고 해서 책을 잡았는데 끝장까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인공지능(AI) 로봇 기수(騎手) ‘코리’가 등장하는 이야기인데, 평범한 SF소설 같지 않은 온기가 느껴졌다.
 

허석준 KT연구소장이 본 CES2021
고객 마음잡기 위한 분투 돋보여
통신사 버라이즌, 드론 배송 개시
농기구 회사, AI·로봇·자율차 접목
영역 파괴, ESG 경영 확대 트렌드

“기술엔 양심 없어” 인간의 통제 화두
코로나로 바뀐 삶 해법은 ‘DX 혁신’

지난 14일(현지시간) 폐막한 ‘소비자가전쇼(CES) 2021’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세계 최대의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 2021에서는 전 세계 1900여 업체가 참여해 신기술·신제품 향연을 벌였다. ‘CES(Consumer Electronics Show)’는 타이틀의 첫 글자부터 ‘고객’을 지향한다. 하지만 최근 5~6년간 ‘세계 최초(world’s first)’ ‘세계 최고(world’s best)’로 포장된 화려한 기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런 가운데 정작 고객은 소외된 듯 보였다.
  
보쉬의 웨어러블 센서 ‘AIoT’ 선보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올해 CES는 1967년 개막 후 사상 처음으로 비대면(온라인)으로 진행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다시 우리 일상과 고객으로 돌아왔다. 기술 만능주의에서 ‘사람’으로 회귀했다고 표현하는 게 좋을 듯하다.
 
물론 코로나19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엿보고 ‘홈코노미’ 같은 생활밀착형 기술이 대두한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하는 글로벌 기업의 분투가 돋보였다. 이런 노력은 고객 이익을 위해 다양한 이종(異種) 산업 간 손을 잡는 ‘영역 파괴’, 그리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확대’라는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농기구 회사 존디어는 AI와 자율주행 기술을 접목한 로봇 수확기를 선보였다. [사진 각 사]

농기구 회사 존디어는 AI와 자율주행 기술을 접목한 로봇 수확기를 선보였다. [사진 각 사]

독일의 자동차부품회사인 보쉬는 인터넷 연결 없이 자체 학습하는 웨어러블(입을 수 있는) AI 센서를 선보였다. 사물인터넷(IoT)과 결합하는 형태라 ‘AIoT’라고 이름 붙였다. 앞으로 피트니스나 의료 분야에서 다양한 AIoT 서비스를 선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전통적인 농기구 회사 존디어(John Deere)도 AI와 머신비전, 자율주행 등을 이용해  탱크에 저장된 곡물을 모니터링하는 로봇 수확기 ‘X시리즈’를 내놨다.
 
이종 산업 간 협력도 부각됐다. 미국 통신사 버라이즌의 한스 베스트버그 최고경영자(CEO)는 “물류기업 UPS, 드론기업스카이워드와 협력해 드론 배송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LG전자도 캐나다 자동차부품업체 마그나와 제휴해 전기차 파워트레인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기술에는 양심이 없다”라는 브래드 스미스 마이크로소프트 사장의 기조연설도 인상적이었다. 스미스 사장은 “기술이 어떻게 쓰이든 그것은 사람의 책임”이라고 덧붙였다. 인간의 양심에 근거한 기술 통제를 화두로 꺼냈다.
 
자동차 부품회사 보쉬는 인터넷 연결 없이 자체 학습이 가능한 AI 센서를 개발했다. [사진 보쉬]

자동차 부품회사 보쉬는 인터넷 연결 없이 자체 학습이 가능한 AI 센서를 개발했다. [사진 보쉬]

그러면서 ‘안면인식 기술’을 사례로 들기도 했다. “(이 기술을 통해) 실종된 아이를 찾을 수도 있고, 노트북 잠금을 해줄 수도 있지만, (경찰에 제공되면) 인권을 침해할 우려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의 공유’를 통해 위험을 예방하자고 제안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가운데, 기술 진보가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고 법적·윤리적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메리 베라 제너럴모터스 회장 역시 “2030년까지 전기차 30종을 출시하겠다”는 미래 전기차 전략만 선언한 게 아니다. 그는 무사고(Zero Crashes), 무탄소배출(Zero Emissions), 무교통체증(Zero Congestions)이라는 ‘3 제로’ 실현을 하겠다고 밝혀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동수단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세계 4위 자동차회사의 CEO가 책임 있는 언급을 했다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행보로 읽힌다.
  
고객의 일상 바꾸는 디지털 전환 돼야
 
올해 CES 2021에서 주목받은 제품·서비스 중 대부분은 5세대(5G) 통신과 IoT를 기반 인프라로 삼고 있다. 이 같은 기반 기술은 항상 한발 앞서 개발됐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컴퓨터와 컴퓨터, 사물과 사람, 사물과 사물의 단순 연결에서 상호협력의 도구로 진화해 왔다. 최근 통신사가 선보이는 AI 서비스가 그 대표 사례이다. AI 서비스는 이제 ‘맞춤형’으로 진화했고, 여기에 감성까지 더해지고 있다. KT도 기존의 통신(‘텔코’) 영역을 넘어 디지털 회사(‘디지코’)로 전환하고 있다.
 
코로나19팬데믹 속에서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CES마저 디지털 공간으로 옮겨갔다. 소통의 한계, 리얼리티 부족과 같은 한계점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코로나19로 달라진 가정과 일터 등 고객의 일상을 재조명하고 기업의 사업 방향을 근본부터 재설계해 보는 계기가 됐다는 점이다. 해법은 ‘디지털 전환(DX)’이다. DX(Digital Transformation)는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디지털 기술이 생활에 스며들게 해 생활을 풍요롭게 혁신하는 것을 뜻한다. 영역을 넘나드는 협력, 고객을 향한 기술 개발을 통해 가정과 일터, 도시 등 ‘일상’에서 빛을 내는 디지털 전환이 돼야 한다.
  
허석준 KT경제경영연구소장
허석준 KT경제경영연구소장

허석준 KT경제경영연구소장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공학 박사로 1993년 KT에 입사해 연구개발본부·기획조정실 책임연구원, 동반성장센터장, 마케팅전략담당 등을 지냈다. 지난해 12월부터 KT경제경영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허석준 KT경제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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