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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수렴청정한 양어머니, 그 보은으로 자경전 지은 고종

중앙일보 2021.01.17 13:00

[더,오래] 이향우의 궁궐 가는 길(34)

경복궁 자경전. 자경전은 고종의 양어머니인 신정왕후(神貞王后) 조씨를 위해 지은 대비전이다. [사진 영이(Seoul, Korea) on Wikimedia Commons]

경복궁 자경전. 자경전은 고종의 양어머니인 신정왕후(神貞王后) 조씨를 위해 지은 대비전이다. [사진 영이(Seoul, Korea) on Wikimedia Commons]

정조의 효심 자경전

교태전 아미산을 지나 건순문(建順門)을 나서면 자미당(紫薇堂)터 동쪽으로 자경전이 보인다. 자경전은 고종 4년(1867)에 지어졌으나 그 후 여러 차례의 화재로 다시 지었는데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고종 25년(1888)에 재건된 건물이다. 
 
자경전은 고종의 양어머니인 신정왕후(神貞王后) 조씨를 위해 지은 대비전이다. 자경(慈慶)이란 이름은 정조가 즉위하면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지은 창경궁에 있던 자경전에서 비롯됐는데, 자애로운 어머니에게 경사가 임하기를 바라는 의미를 갖는다.

 
정조는 창경궁을 창건한 성종 못지않게 부모에 대한 효심이 지극했다. 정조는 즉위한 직후 창경궁 영춘헌 일곽과 양화당 북쪽 언덕에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자경전을 지었다. 자애로우신 어머니, 자전(慈殿)께서 오래 사시기를 기원한 집으로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당 경모궁이 바라보이는 이곳에 자경전을 지어드렸던 것이다. 자경전은 건너편의 경모궁과 서로 마주 보며 남편 잃은 지어미의 슬픔을 위로해드리려는 아들의 배려로 지은 집이다. 

 
동궐도. 조선 후기 동궐도에 보이는 창덕궁 대조전 뒤뜰의 집상전(集祥殿)은 처음에는 현종이 모후 인선왕후를 가까이 모시기 위해 집상당을 수리한 뒤 전으로 격상시켜 지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동궐도. 조선 후기 동궐도에 보이는 창덕궁 대조전 뒤뜰의 집상전(集祥殿)은 처음에는 현종이 모후 인선왕후를 가까이 모시기 위해 집상당을 수리한 뒤 전으로 격상시켜 지었다. [사진 Wikimedia Commons]

 
대왕대비의 처소를 동쪽에 두는 것은 중국의 고사에서 비롯한다. 한나라 황제의 어머니인 태후가 미양궁 동쪽 장락궁에 살았는데 태후의 거처를 동조라는 별칭으로 불렀고 태후도 그렇게 불렀다. 조선시대에도 왕대비나 대왕대비를 동조라 부르고 거처를 궁궐의 동쪽에 두었다.

 
왕비는 남편인 국왕이 승하하면 대비로 승격되고 처소를 새 왕비에게 내어주고 대비전으로 물러나 거처를 옮긴다. 조선시대에는 내전 영역에 왕과 왕후의 침전뿐 아니라 대비전과 세자의 공간이 구분돼 있었다. 조선 초 세조가 승하한 후 정희왕후(貞熹王后)는 조선왕실에서 처음으로 대비가 되었다. 현재의 창덕궁 수강재(壽康齋)는 원래 창경궁에 속하던 영역으로 석복헌 동쪽에 있는 집이다. 집 이름 ‘수강’은 오래 살고 건강하다는 의미로 본래부터 왕위를 물려주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상왕이나 대비가 사용하던 공간이었다. 조선 초기에 있던 수강궁은 태종이 세종에게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나 머물던 곳이다. 단종이 세조에게 선위하고 수강궁에서 머물다 영월로 귀양을 갔으며 세조도 수강궁에서 머물다가 승하했기 때문에 예종이 이곳에서 즉위했다. 정희왕후는 세조가 말년에 머물던 수강궁에 함께 있다가 세조가 승하한 뒤에도 그대로 수강궁에 머물렀으며 정희왕후의 거처는 예종의 승하 시까지 수강궁에 지속되었다.

 
그리고 성종 대에 들어 정희왕후뿐 만 아니라 덕종비 소혜왕후(昭惠王后), 예종 계비 안순왕후(安順王后) 등 세 분의 대비전을 위해 꽤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성종은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이 끝나고 할머니, 어머니, 작은어머니를 위한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창경궁을 건립하게 되었다. 창경궁은 조선 후대에 동궐의 생활공간으로 확장돼 사용되었지만 애초에는 대비를 모시기 위해 지은 궁궐이었다.

 
조선 후기 동궐도에 보이는 창덕궁 대조전 뒤뜰의 집상전(集祥殿)은 처음에는 현종이 모후 인선왕후를 가까이 모시기 위해 집상당을 수리한 뒤 전으로 격상시켜 지었다. 그러나 대비인 인선왕후를 모시기에는 규모가 좁았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경덕궁(경희궁)의 집희전(集禧殿)을 옮겨 새로 지었다. 이후 숙종의 어머니 명성왕후 김씨도 집상전에서 머물렀으며 영정조 대의 대비전은 창덕궁 서편에 경복전과 수정전이 있었는데 정수왕후는 수정전에서 승하했다. 수강재는 순조 때 효명세자가 대리청정할 당시 별당으로 사용했으며 헌종 14년(1848)에 순원왕후의 육순을 맞아 대왕대비의 거처로 고쳐 지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수강재는 헌종의 할머니인 대왕대비 순원왕후 김씨의 처소로 사용되었다. 순원왕후는 효명세자의 어머니로 순조의 뒤를 이어 여덟 살의 어린 손자가 왕위에 오르자 7년간 수렴청정을 했다. 그리고 고종 대에 경복궁이 중건되자 창경궁에 있던 자경전의 이름을 빌려 신정왕후를 위한 자경전을 경복궁의 동쪽에 대비전으로 지은 것이다.

 
원래 경복궁 자경전은 여름전각 청연루(淸讌樓)와 협경당(協慶堂), 뒤쪽의 복안당(福安堂)이 복도로 연결된 구조를 가진 꽤 큰집이다. 지금은 자경전 앞마당이 탁 트여 있지만 예전에는 자경전과 협경당 사이 청연루 어간쯤에 취병(翠屛)이나 나무판자로 된 가리개를 둘러 마당을 구분한 듯하다. 취병이란 대나무로 틀을 짜 나무 덩굴을 틀어 올려 공간을 구획했던 생나무 울타리이다. 자경전으로 들어가는 문은 어머니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만세문(萬歲門)이다.

 

풍양조씨의 정계 진출 연 신정왕후

드라마 '닥터 진'에서 배우 정혜선이 연기한 신정왕후. 신정왕후는 철종 8년(1857) 시어머니 순원왕후가 승하하면서 대왕대비로 존숭되었다. [사진 MBC]

드라마 '닥터 진'에서 배우 정혜선이 연기한 신정왕후. 신정왕후는 철종 8년(1857) 시어머니 순원왕후가 승하하면서 대왕대비로 존숭되었다. [사진 MBC]

 
자경전의 주인 신정왕후 조씨는 순조 19년(1819), 12세에 순조의 맏아들 효명세자의 세자빈으로 간택되었다. 순조 27년 원손(헌종)을 낳고 남편 효명세자가 순조의 명을 받아 대리청정한 지 3년 만에 갑자기 22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는 바람에 세자빈 조씨의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그리고 아들 헌종이 순조의 뒤를 이어 여덟 살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효명세자가 익종(翼宗)으로 추숭되었고 신정왕후는 왕비의 반열에 올라 자연스럽게 왕대비로 존숭되었다. 아들 헌종이 즉위했지만 신정왕후에게는 아무런 정치적 권한이 없었고 대왕대비 순원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신정왕후의 지위가 높아지고 풍양 조씨의 정계 진출도 점차 두드러졌다. 헌종 7년(1841)부터 헌종이 친정을 펼치면서 조만영은 어영대장·훈련대장 등을 지내며 동생 조인영, 조카 조병현 등과 함께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이어 조인영은 영의정에 오르고 풍양 조씨 일파가 군권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헌종 15년(1849), 헌종이 후사 없이 23살의 나이로 승하하자 대왕대비 순원왕후는 강화도에 살던 전계군(全溪君)의 아들 철종을 불러들여 보위를 잇게 하고, 다시 수렴청정에 나섰다. 순원왕후는 이어서 인척인 김문근의 딸을 왕후(철인왕후)로 간택하여 안동 김씨의 60년 세도정치의 장을 열었고 본격적으로 풍양 조씨를 탄압했다. 철종이 즉위한 해에 조득영의 아들 조병현이 재물을 탐하고 임금을 멸시했다는 이유로 사사되기까지 했다. 남편에 이은 아들의 죽음. 설상가상으로 친정까지 몰락 위기에 빠져들자 신정왕후는 몸을 낮추고 숨죽이고 살아야 했다.

 
신정왕후는 철종 8년(1857) 시어머니 순원왕후가 승하하면서 대왕대비로 존숭되었다. 그리고 6년 후(1863년)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이재황에게 익성군(翼成君)의 작호를 내리고 영의정으로 하여금 궁궐로 맞아오게 했다. 흥선군과 함께 입궐한 이재황은 대왕대비의 교서에 따라 그녀의 양자가 되어 관례를 치른 다음 12월 13일 보위에 올랐다. 신정왕후는 12세의 고종이 즉위하자 4년간 수렴청정을 하였고 고종의 생부인 흥선대원군과 협력하고 종친의 위상을 강화해 정국을 운영했다. 또한 대원군에 명해 경복궁을 중건하고 왕실의 권위를 강화해 국가의 기강을 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왕권 강화를 추구했다. 고종은 양어머니 신정왕후에 대한 보은의 의미로 자경전을 지어드렸다.
 
조각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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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우 이향우 조각가 필진

[이향우의 궁궐 가는 길] 교사로 명예퇴직 후 조각가로 작품을 제작하면서 우리 역사와 전통문화를 배우고 알리는 궁궐 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다. 궁궐에서의 오랜 활동을 바탕으로 조각가의 심미안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궁궐의 아름다움을 직접 그리고 글을 썼다. 우리 궁궐의 정다운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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